장화 신은 관광객들, 매장에서 연신 물을 퍼내고 있는 직원들, 도로 위 가교를 걷는 사람들….

17일(현지시간) 오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 루치아역에 도착했을때 마주한 낯선 풍경들이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는 최근 홍수로 바다 수위가 높아져 도시 기능이 거의 마비된 상태였다. 강풍으로 바포레또(수상버스)마저 끊겨 곳곳에서 관광객들의 발이 묶였다.


기자가 베네치아 관광의 중심인 산 마르코 광장에 갔을때 광장은 이미 바닷물에 70㎝ 가량 잠긴 상태여서 경찰이 일반인들의 출입을 통제하고 있었다. 현지 방송도 이례적인 산 마르코 광장의 침수를 집중 보도하고 있었다.


골목마다 바닷물에 침수돼 어디가 바다인지, 도로인지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곤돌라가 정박해 있는 한 호텔 앞은 바다와 도로의 경계가 사라졌다.


보수중인 베네치아의 한 성당은 바닷물에 침수된 채 속수무책이었다. 샤넬, 프라다 등 명품 매장들도 직원들이 들이 찬 바닷물을 퍼내느라 여념이 없었고 많은 상점들이 일요일인데도 영업을 포기하고 아예 문을 닫은 상태였다.


바포레또(수상버스) 운행이 중단되면서 산 마르코 광장 인근 선착장에는 교통수단을 구하지 못한 관광객들이 불안한 모습으로 서성대고 있었다. 한국인 관광객 최정진씨(46·여)는 “기상 상태가 좋지 않고 도로 대부분이 바닷물에 잠겼다면 관광객들이 돌아다니지 않도록 안내했어야 하는데 베네치아 당국이 너무 무책임하다”며 “숙소가 있는 산타루치아 역으로 돌아갈 길이 막막하다”고 말했다. 그나마 운행되고 있는 수상택시는 잡기도 힘들 뿐더러 부르는게 값이다.

BBC 등 주요 외신은 이탈리아 정부가 지난 14일(현지 시각) 베네치아에 대한 국가비상사태 선포안을 승인했다고 보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베네치아의 만성적 침수피해를 막기 위한 구조적 대응책인 ‘모세 프로젝트’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밝혔다.

베네치아는 매년 바닷물 상승으로 반복되는 침수 피해를 막기 위해 1984년 ‘모세 프로젝트’를 마련했다. 취약 지역에 조수 유입을 차단하는 인공 장벽을 설치한다는 것으로, 2003년 착공해 2016년 완공을 목표로 했다. 하지만 자금난과 부패 스캔들 등으로 사업은 지연됐다.

도시 대부분이 물에 잠기면서 인적·물적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78세의 남성이 집에 들어온 바닷물을 퍼내려고 전기펌프기를 작동하려다 감전사했고, 비잔틴 양식을 기본으로 로마네스크와 르네상스 양식까지 갖춰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산마르코 대성당도 침수됐다. 산마르코 대성당이 침수된 것은 1200년 역사상 이번이 6번째다.

아드리아해에 면해 있는 베네치아는 매년 늦가을과 초겨울에 조수 수위가 오르고, 도시가 정기적으로 침수된다. 조수 수위가 100~120㎝를 오르내리는 것은 일반적이지만 이번에는 수일째 호우가 계속되고 시속 100㎞의 강한 바람을 동반한 열풍 때문에 조수가 급상승했다.

왜 이렇게 베네치아에 비정상적인 호우가 며칠째 계속된 것일까. 루이지 브루냐로 베네치아 시장은 “이번 홍수는 기후변화의 결과”라며 “베네치아의 미래가 위태롭다”고 말했다. 세르지오 코스타 이탈리아 환경부장관도 기후변화에 따른 강우·강풍 등 열대성 기후 현상의 증가를 이번 홍수의 원인으로 지목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지중해 인근에서 이런 일이 점점 잦아지고 있다”며 “지금 당장 지구 온난화의 방향을 바꾸지 않으면 온 세상을 파괴하고 말 것”이라고 경고했다.

베네치아=글·사진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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