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정부의 '복면금지법' 시행에 반대하는 시위대가 지난 6일 영화 '브이 포 벤데타'에서 저항의 상징이 된 '가이 포크스' 가면을 쓰고 있다. EPA연합뉴스

홍콩 시위 사태가 격화하는 가운데 홍콩 고등법원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을 금지한 ‘복면금지법’에 위헌 결정을 내렸다.

한국의 대법원에 해당하는 홍콩 고등법원은 야당 의원 25명이 “복면금지법이 홍콩의 실질적인 헌법인 ‘기본법’에 위배된다”며 제기한 소송에서 18일 이들의 손을 들어줬다. 홍콩 정부는 지난 10월 초 캐리 람 행정장관 주재로 열린 특별행정회의에서 긴급법에 따라 공공장소에서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에 따라 지난달 5일부터 시행된 복면금지법은 공공 집회에서 마스크나 가면 착용을 금지할 뿐 아니라 집회 참여 여부와 상관없이 경찰관이 공공장소에서 시민에게 마스크를 벗을 것을 요구할 수 있도록 했다. 경찰관의 요구에 불응할 경우 최고 1년 징역형이나 2만5천 홍콩달러(약 370만원) 벌금을 받을 수 있다. 질병 치료 및 예방 목적, 종교적인 이유로 착용하는 것만 예외로 인정된다.

복면금지법 통과 당시 홍콩 야권과 시민단체는 즉각 반대 목소리를 제기했다. 야당 의원들은 “복면금지법 시행의 근거가 된 ‘긴급정황규례조례’(긴급법)는 의회인 입법회를 거치지 않고 홍콩 행정장관에게 무제한의 권력을 부여한다는 점에서 홍콩 기본법에 어긋난다”며 소송을 제기했다. 이어 “복면금지법이 공공질서에 해를 끼치지 않는 평화 집회 등에서까지 마스크 착용을 금지해 기본적인 자유를 제한한다”고 주장했다.

1922년 제정된 긴급법은 비상 상황이 발생하거나 공중의 안전이 위협받을 때 행정장관이 홍콩 의회인 입법회 승인 없이 광범위한 분야에서 공중의 이익에 부합하는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긴급법이 적용되면 행정장관은 체포, 구금, 추방, 압수수색, 교통·운수 통제, 재산 몰수, 검열, 출판·통신 금지 등에 있어 무소불위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상대권’을 부여받는다. 행정장관에게 부여되는 비상대권의 수준이 이처럼 막강하기 때문에 홍콩 역사에서 긴급법이 적용된 것은 1967년 7월 반영(反英)폭동 때 단 한 번뿐이다. 야권은 최근 긴급법 적용에 대해 “사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시위대의 분노를 촉발시켜 시위에 기름을 끼얹는 격이 될 수 있다”고 비판했다.

람 행정장관은 긴급법에 근거해 복면금지법을 전격적으로 발동했지만, 이번 고등법원의 위헌 결정으로 긴급법 적용이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강경해진 람 장관이 시위 진압을 위해 긴급법을 적용해 야간 통행 금지나 소셜미디어 제한, 심지어 계엄령 시행까지 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왔지만 이제 긴급법을 적용한 시위 진압은 사실상 힘들어졌다.

지난달 5일 복면금지법이 시행된 후 이를 위반해 경찰에 체포된 사람은 남성 247명, 여성 120명 등 총 367명에 달한다. 이들 중 24명은 현재 재판에 회부됐으며 소송이 진행 중이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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