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가향 액상형 전자담배 판매를 전면 금지하는 내용의 규제안에 마지막 서명만을 남겨둔 상태에서 돌연 결정을 번복한 것으로 드러났다. 자국에서 전자담배가 원인으로 추정되는 폐질환으로 숨진 환자가 40명에 육박했지만 전자담배 업계 종사자들의 표심 이반을 우려해 판매 금지 결정을 접은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18일(현지시간) 익명을 요구한 트럼프 대통령 측 관계자를 인용해 “대통령은 지난 4일 (전자담배 판매 금지) 기자회견을 하루 앞두고 규제안에 최종 서명하는 일을 갑자기 중단했다”고 보도했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주지사선거 유세 지원을 위해 비행기를 타고 켄터키주 렉싱턴으로 이동하던 중 서명 거부 의사를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이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은 판매 중지 조치가 전자담배 업계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는 주장에 겁을 먹고 결정을 번복했다”고 설명했다.

전자담배 판매 금지는 당초 트럼프 대통령의 아내 멜라니아 여사와 딸 이방카 백악관 선임고문이 강력히 밀어붙였던 정책으로 알려졌다. 트럼프 자신도 이 정책을 지지했고 지난 9월에는 담배향을 제외한 모든 향 나는 전자담배의 판매를 막겠다는 뜻을 직접 밝히기도 했다. 하지만 전자담배 옹호자들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해 “판매 금지 조치는 수천개의 전자담배 상점을 망하게 하고 관련 일자리를 없앨 것”이라고 주장하며 공격적인 정책 반대 캠페인을 벌이자 트럼프 대통령은 크게 당황했다. 일자리 축소가 ‘경제 대통령’으로서의 이미지 구축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2020년 트럼프 재선 캠프를 총괄하는 브레드 파스케일 선대본부장이 비공식 자리에서 “판매 금지 정책은 경합주(스윙 스테이트) 선거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결국 마음을 바꾸었다. 전자담배 상점 주인들과 소비자들의 분노가 자신의 재선 전망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말에 공중보건과 관련된 중요 정책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철회한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한 고위 관료는 “대통령은 해당 이슈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다. 그저 멜라니아와 이방카를 위해 판매 금지 정책을 추진했던 것”이라고 말했다.

미 언론들은 지난 8일 트럼프 행정부가 가향 전자담배 구매 가능 연령을 현행 만 18세에서 21세로 상향 조정할 방침이라고 보도했다. 판매 전면 금지 입장에서 한참 후퇴한 셈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이와 관련 트럼프 대통령의 입장 변화에는 담배업계와 규제에 반대하는 보수 성향 단체의 로비도 영향을 미쳤다고 전했다. AFP통신도 “트럼프 대통령이 가향 전자담배를 아예 퇴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업계의 로비 속에 후퇴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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