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계약금’에 속앓이 한 사연 들어 보니..
임대차보호법 개정 없이는 세입자 보호 힘들어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모(42)씨는 지난달 이사를 하며 수개월간 생각하지도 못했던 속앓이를 했다. 지난 6월 주택 소유주인 임대사업자가 전세금을 올려 달라고 요구한 게 발단이었다. 김씨 부부는 30㎡ 규모의 빌라에 살며 전세금을 더 올려주느니 큰 집으로 이사하자는 판단을 내렸다고 한다. 집주인에게 이사를 가겠다고 한 뒤 이사 갈 집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마음에 드는 아파트를 찾은 뒤에 문제가 터졌다. 아파트 주인과 계약을 하기 위해 필요한 계약금 때문에 분란이 생겼다. 통상 임대사업자들은 세입자가 집을 나가기 전에 신규 세입자를 찾는다. 그래야 떠나는 세입자에게 전세금을 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계약을 맺고 전세대금의 10%인 계약금을 받는다. 이 돈은 김씨처럼 떠나는 세입자가 새로운 집에 들어가며 계약할 수 있도록 선지급하는 게 부동산업계 관행이다. 1억7000만원인 빌라 전세금을 고려하면 김씨는 1700만원가량을 미리 받을 수 있었다. 이 돈으로 이사를 갈 집을 구하면 될 터였다.

그러나 집주인인 임대사업자는 이 돈을 주지 않았다. 법으로 규정돼 있는 게 아니라며 못 주겠다고 배짱을 부렸다.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구청을 찾아가 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구로구청 담당과에서는 “부동산 업계에서 하는 일이라 법적으로 정해진 규정은 없다”는 답만 되풀이했다.

김씨 부부는 결국 원하던 집을 계약하지 못했다. 이사 시기도 늦어지고 원하던 곳보다 1000만원 더 비싼 전세 2억7000만원의 아파트로 옮기게 됐다. 김씨는 “법적으로 줘야 하는 돈이 아닌데 왜 줘야 하냐는 임대사업자 말에 분통이 터졌었다”고 했다.

김씨 사례는 부동산 업계에서 이례적이지만, 세입자라면 누구에게나 발생할 수 있는 일이다. 주택 한두 채를 보유한 임대사업자들은 업계 관행을 잘 지키는 편이라고 한다. 다만 김씨가 살던 주택의 주인처럼 다주택 임대사업자는 사정이 좀 다르다. 자금 사정이 악화되면 ‘관례’ 대신 ‘현행법’을 들이댈 수 있다. 전세금 자체를 보호하는 제도는 있지만, 계약금 선지급과 관련된 법적 규정은 없다.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하려면 결국 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전세금 반환 보증보험’에 특약을 거는 방법도 있지만 보험금을 더 내야 해서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 국토교통부 관계자는 18일 “임대차보호법을 개정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며 “임대차보호법 소관이 법무부여서 법무부가 나서야 할 문제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세종=신준섭 기자 sman321@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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