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부’에서 각종 법관 인사불이익 문건을 작성한 인사심의관 출신 법관이 “법정 증언할 내용이 공무상비밀에 해당한다”고 밝히면서 ‘법관 블랙리스트’ 의혹 규명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이번 사건에서 공무상비밀에 대한 법정 증언의 승낙 권한을 가진 법원행정처가 결단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19일 국민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검찰은 최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을 심리 중인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에 20일 예정된 노재호 서울남부지법 판사의 증인신문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제출했다. 노 판사가 지난 13일 재판부에 “형사소송법 147조에 따라 (자신의) 신문사항이 공무상비밀에 해당한다”며 증인신문이 어렵다고 신고하자 검찰은 다음 날인 14일 반박 입장을 냈다. 노 판사는 “오히려 법정에서 증언할 의사 있어 선제적으로 하게 된 조치”라는 입장이다.

노 판사는 2015년 2월~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실에서 인사 1·2심의관으로 근무했던 인물이다. 그는 이때 윗선 지시를 받고 법관 블랙리스트 문건으로 불리는 ‘물의야기 법관 인사조치 검토’와 ‘국제인권법연구회 대응방안’ 등의 보고서를 작성했다. 당시 사법행정 방침을 거스르는 법관 및 법관모임에 대한 인사 불이익 방안을 담은 문건들이다.


노 판사 주장의 골자는 문제의 문건들은 행정처에서 관리하는 공무상비밀이므로 행정처 승낙 없이는 관련 증언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자 검찰은 ‘국가에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증인신문의 승낙을 거부할 수 없다’는 형소법 조항을 제시했다. 국익을 해하는 것과 노 판사에 대한 증인신문 내용은 무관하다는 취지였다.

검찰은 특히 추명호 전 국가정보원 2차장의 ‘국정원 불법사찰’ 사건 공판에서 증언했던 국정원 직원들의 경우를 반박 사례로 들었다. 국정원 직원들은 법정 증언을 하려면 국정원직원법에 따라 국정원장 허가가 필요한데, 이때도 국가의 중대 이익을 해치는 경우 외에는 허가를 거부할 수 없다. 검찰 관계자는 “(국정원 직원들도) 허가를 받고 원활하게 증인신문이 이뤄졌다”며 “노 판사의 증언이 없으면 실체적 진실 발견에 큰 지장을 초래할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노 판사가 작성한 문건들이 다른 재판 과정에서 공개돼 더 이상 비밀로 볼 수 없다는 주장도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2부(부장판사 윤종섭)는 지난달 31일 이민걸 전 행정처 기조실장과 이규진 전 양형실장의 직권남용 혐의 재판에서 노 판사가 작성한 문건들을 실물화상기를 통해 확인한 바 있다.

행정처가 지난해 11~12월 세 차례 인사총괄심의관실에 대한 압수수색을 허용할 때 노 판사의 증인신문을 불허할 명분이 이미 사라졌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검찰은 ‘압수수색 시 직무상 비밀에 관한 것임을 신고하면 감독 관공서의 승낙 없이 압수하지 못한다.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해하는 경우 외에는 승낙을 거부할 수 없다’는 형소법 111조를 근거로 들었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행정처가 지금 와서 국가 중대 이익을 해할 수 있다며 증인신문을 불허한다면 상황은 달라진 게 없는데 판단만 바뀌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구자창 기자 critic@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