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를 보호 또는 교양하기 위해 필요한 징계를 할 수 있다’고 규정한 민법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정부 논의가 지지부진한 것으로 나타났다. 징계권 범위에서 체벌을 제외하는 문제는 정부가 지난 5월 발표한 포용국가 아동정책의 핵심 과제다. 유엔 아동권리위원회는 이러한 징계권 조항이 부모의 자녀 체벌을 합리화한다며 삭제할 것을 한국 정부에 여러차례 권고한 바 있다.

19일 법무부와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징계권 개정 작업은 올해 제자리걸음을 하다가 결국 내년으로 넘어가게 됐다. 두 부처는 지난 4월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포용적 가족문화를 위한 법제개선 위원회’를 구성하고 징계권 한계 설정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했었다. 위원회는 그로부터 7개월이 지난 이달 14일에서야 민법 개정안을 회의에 처음 상정했다. 그마저도 시간이 부족해 입장을 정리하지 못하고 내년 1월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다문화가정의 양육 법제 개선안 등 논의할 과제가 많아 상정이 늦어졌다”며 “가능하면 내년 1월 결론을 내려고 하지만 이제까지 논의된 바가 없어 더 늦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징계권 조항은 1960년에 제정된 이래 한 번도 수정되지 않았다.

굿네이버스 등 아동보호단체들은 이날 서울 용산구에서 열린 세계아동학대 예방의 날 기념식에서 박능후 보건복지부 장관에게 ‘친권자 징계권을 삭제해달라’고 요청한 시민 3만여명의 서명을 전달했다.

시민단체들은 개정 작업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고완석 굿네이버스 아동권리옹호팀장은 “징계권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60년대 사상의 상징적인 존재”라며 “이 조항이 살아있는 한 양육의 수단으로서 자녀를 때려도 된다는 인식은 개선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지난해 아동보호기관에 접수된 아동학대 2만4604건 중 가해자의 76.9%가 부모였다.


친권자 징계권은 자녀를 학대한 부모의 벌을 가볍게 하는 수단으로도 악용된다. 2016년 세 살, 다섯 살 딸을 상습적으로 폭행해 혼수상태로 이르게 한 20대 모친은 1심에서 징역 6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1년이 감형됐다. 당시 재판부는 “당초 훈육 의도와는 달리 과격하게 때리게 됐다는 점을 감안했다”고 감형 이유를 설명했다.

자녀를 학대한 부모가 쉽게 가정으로 돌아가다 보니 사후 감시 기능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다. 이는 곧 재학대로 이어질 위험이 높다. 아동보호기구 월드비전에 제보한 교사 김모(34)씨는 “신고의무자로서 가족 폭력이 의심돼 경찰에 신고하더라도 친권자 징계권을 이유로 곧바로 가정에 복귀하는 경우가 태반”이라며 “이후 부모들이 신고자가 누군지 파악해 학교에 항의하는 난처한 상황이 벌어져 신고하기가 점차 어려워진다”고 토로했다.

다만 친권자 징계권 조항 삭제는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는 반론도 있다. 법무부 관계자는 “‘친권자 징계권’에는 체벌권이 포함돼있지 않다”며 “조항을 삭제하면 부모의 교육활동 상당수가 범죄로 치부되는 부작용이 발생한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단법인 두루 김진 아동 인권전문 변호사는 “징계권이 삭제돼도 부모에 대한 처벌조항이 추가되는 게 아니다”며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과도하다”고 했다. 이어 “아동을 징계할 수 있는 ‘권리’가 부모에게 있다는 잘못된 인식을 개선하기 위해 개정 작업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안규영 기자 kyu@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