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오나 힐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유럽·아시아 담당 선임국장.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스캔들’ 관련 하원 탄핵 청문회에서 증인이 트럼프 대통령을 두둔하는 공화당 의원들을 역으로 꾸짖는 보기 드문 장면이 연출됐다.

백악관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업무를 총괄했던 피오나 힐 전 국가안보회의(NSC) 유럽·아시아 담당 선임국장은 21일(현지시간) 하원 정보위원회가 주최한 공개 청문회에서 ‘러시아가 아닌 우크라이나가 2016년 미 대선에 개입했다’는 트럼프 진영의 음모론을 일축했다. 그는 “이 위원회에 있는 여러분 중 일부는 마치 러시아가 우리나라를 상대로 공작을 벌이지 않았다고 믿는 것만 같다”며 “이건 러시아 보안당국이 만들어내고 퍼뜨린 소설같은 이야기”라고 말했다. 트럼프 진영이 러시아가 만들어낸 신뢰할 수 없는 음모론을 정치적 의도를 지니고 앞장서 조장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힐 전 국장은 “불행한 진실은 러시아가 2016년 우리 민주주의 제도를 조직적으로 공격한 외국 세력이라는 점”이라며 “이는 초당파적 의회 보고서로 확인된 우리 정보기관의 공개 결론이며 여기엔 논쟁의 여지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공화당 의원들에게 “러시아의 이익만을 증진하는 정치적 허위사실을 이번 조사 과정에서 선전하지 말아 달라”고 꾸짖었다. 최근 공화당 일각에선 미 대선에 개입한 주체가 우크라이나라는 주장이 반복 제기됐다. 데빈 누네스 공화당 정보위 간사 등은 청문회 자리에서도 이 같은 주장을 꺼냈다.

힐 전 국장은 나아가 러시아 내년 미 대선도 개입하기 위해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보안당국은 ‘슈퍼팩’(민간 정치자금 단체)처럼 활동한다”며 “거액의 자금을 선거에 투입하는 슈퍼팩마냥 러시아도 미국에서 수백만 달러를 들여 거짓말을 무기화하기 위한 공작을 벌인다”고 말했다.

푸틴 대통령은 전날 모스크바에서 열린 투자전문회사 ‘VTB 캐피털’ 주최 포럼에 참석해 “정말 다행스럽게도 이제는 아무도 러시아가 미국 대선에 개입했다고 비난하지 않는다. 이제 그들은 우크라이나를 비난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선캠프와 러시아 간의 유착 의혹, 이른바 ‘러시아 스캔들’에 쏠렸던 시선이 대선 정국의 뇌관으로 떠오른 우크라이나 스캔들로 옮겨간 덕에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주장이 잠잠해졌다는 의미다. 워싱턴포스트는 “푸틴 대통령은 자신이 ‘우크라이나 스캔들’을 둘러싼 미국 하원의 정치적 공방을 즐기고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드러냈다”고 해석했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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