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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소미아 ‘조건부 연기’를 ‘갱신’이라는 美… “한·미 신뢰 이미 손상”

美국무부, 조건부 연기를 ‘갱신(renew)’으로 표현
지소미아 연장으로 못 박겠다는 의도 내비쳐
“임시봉합됐으나 韓美 시각차 완전히 좁혀지진 않은 듯”


미국 국무부는 한국 정부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을 환영하고 나섰다. 미국에선 최악의 상황은 피했다고 안도하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김유근 국가안보실 1차장이 지난 22일 청와대에서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그러나 속내를 보면 개운치 않은 구석이 있다. 미국 국무부는 한국의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를 ‘갱신(renew)’이라고 표현했다. ‘조건부’가 아닌 ‘재연장’으로 못 박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미국 정부가 의도적으로 자기 입맛에 맞게 해석하면서 한국 정부가 지소미아 종료로 선회하지 않도록 압력을 가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지소미아 문제가 임시 봉합됐으나 한·미 간 갈등의 불씨까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라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로버트 매닝 애틀랜틱 카운슬 선임연구원은 23일(현지시간) 국민일보와의 이메일 인터뷰에서 “미 국무부의 입장은 한국 정부가 밝힌 내용과 일치하지 않고 부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여기에다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는 해결될 기미를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아시아 담당 보좌관을 지냈던 빅터 차와 국무부 부장관을 역임했던 리처드 아미티지는 워싱턴포스트(WP)에 공동 기고한 칼럼에서 “66년 동안 이어진 한·미 동맹이 깊은 곤경에 빠졌다”면서 “문재인정부의 막판 지소미아 종료 연기 결정은 현명했지만 한·미 신뢰 관계에 손상이 이미 가해졌다”고 주장했다.

美, ‘조건부’는 빼고 ‘갱신’으로 못 박아

한국 정부는 언제든지 지소미아를 종료시킬 수 있다는 전제 하에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렸다.

그러나 미 국무부의 입장은 달랐다. 미 국무부는 22일 국민일보의 질의에 “미국은 지소미아를 갱신(renew)한다는 한국의 결정을 환영한다”고 밝혔다. 또 “이 결정은 같은 생각을 가진 동맹이 양자 분쟁을 헤쳐 나갈 수 있다는 긍정적 메시지”라고 높게 평가했다.

미 국무부의 입장에서 한국이 강조한 ‘조건부’에 대한 설명은 없었다. 지소미아 재연장으로 기정사실화하겠다는 의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5일 청와대에서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부 장관과 면담을 갖기 전 악수를 나누고 있다. 미국은 에스퍼 장관과 마크 밀리 합참의장 등 미 군사당국의 수뇌부들을 서울에 급파하며 우리 정부의 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막기 위해 총력전을 펼쳤다. 연합뉴스

미 국무부는 또 한·일 양국에 조언과 압박도 가했다. 국무부는 “한·일이 역사적 사안들에 지속성 있는 해결책을 이끌어내기 위한 진지한 논의를 이어갈 것을 권고한다”면서 “미국은 국방·안보 사안들은 한·일 관계의 다른 영역과 계속 분리돼 있어야 한다고 강력히 믿는다”고 강조했다. 한·일의 역사적 문제를 국방·안보 이슈로 끌어들이지 말라는 주문인 셈이다.

국무부는 그러면서 “우리는 공동의 이익에 대한 인식을 가지고 한·일과 양자·3자 안보협력을 계속 추구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임시봉합했지만 韓美 시각차 완전히 좁혀지진 않은듯”

한국 정부의 조건부 연기 결정으로 최악의 위기 상황은 넘겼다는 것이 일반적 평가다.

특히 미국 의회에서는 한국 정부의 결정을 환영하는 메시지가 쏟아졌다. 이번 주 추수감사절을 앞두고 미 의회가 휴회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부의 결정을 반기는 찬사들이 이어졌다. 미 의원들은 “지소미아 조건부 연기가 한·미 동맹에 도움이 되고 동북아시아 한·미·일 삼각 공조를 강화시킬 것”이라고 호평했다.

그러나 찜찜한 구석은 여전하다. 매닝 선임연구원은 “미 국무부가 한국 정부의 조건부 연기를 갱신이라고 표현한 것은 어느 정도 미국 정부의 희망적 사고가 깔려 있다”고 분석했다. 그러면서 “한국 정부는 시간을 벌기 위한 의도로 조건부 연기 결정을 내렸지만 한·미 간 시각차가 완전히 좁혀진 것 같지는 않다”고 밝혔다.

스콧 스나이더 미 외교협회 선임연구원은 “한·미가 서로 유리한 쪽으로 상황을 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지소미아 연기를 둘러싼 인식 차가 한·미 관계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강조했다.

WP는 한국이 미국의 압박에 지소미아 종료를 미뤘다고 보도했다. 대니얼 스나이더 스탠퍼드대 교수는 뉴욕타임스에 “한·일 사이에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직 없으며 여전히 양국 정부의 정치력과 리더십이 요구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트럼프, 방위비 협상 실패 구실로 주한미군 감축할 수도”

부시 행정부에서 근무했던 빅터 차와 아미티지는 WP에 기고한 칼럼에서 조용히 중국 쪽으로 기우려는 한국 정부와 동맹을 거래 개념에서 접근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관계를 위기로 몰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한국은 가치있는 합의(지소미아)를 지렛대로 사용해 미국을 한·일 간 경제·역사 분쟁에 개입하도록 만든 것은 동맹 남용 행위”라고 비판했다. 이어 “정보 협력을 중단하겠다는 위협은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발사에 대응하는 한·미·일의 능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한국의 안보이익이 미국·일본의 안보이익과 잠재적으로 분리돼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이들은 또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위협을 과소평가하면서, 대신 침체한 한국 경제를 부양시키기 위해 남북 경제협력 프로젝트에 주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한국에 방위비 분담금 대폭 증액을 요구하면서 한·미 관계의 마찰이 가중됐다”고 비판했다. 미국 협상팀이 지난 19일 한·미 방위비 협상장을 박차고 나왔던 사실을 거론하면서 “동맹 간 균열을 공개적으로 보여준 드문 사례”라고 강조했다.

이들은 “방위비를 5배 더 내라는 미국의 요구는 문재인 정부로선 정치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으며 한국은 세계 최대 미군 기지인 경기도 캠프 험프리스 건설비용 110억 달러(약 12조 9000억원)의 90%를 부담했다”고 설명했다.

이들은 “중국이 악화되는 한·미 관계의 중요한 변수로 등장하고 있다”면서 “한국은 중국의 ‘사드 보복’에도 불구하고 중국이 제안한 다자무역협정에 동참하기를 원하고, 중국 견제를 위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은 지지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방위비 협상 실패를 구실로 주한미군 감축이나 철수를 결정할 수 있다”면서 “이는 미국 외교정책의 재앙이 될 것이고 미국이 강대국 위상을 중국에 넘겨주는 시작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워싱턴=하윤해 특파원 justic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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