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수 구하라(28) 사망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인터넷에선 구하라를 폭행하고 성관계 영상을 촬영한 혐의를 받는 전 남자친구 최모(28)씨의 사건을 맡았던 재판부를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다. 구하라 성관계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하고 최씨의 불법촬영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재판부의 판단이 과연 옳으냐는 지적이다.

전 남자친구 최씨를 폭행한 혐의를 받았던 가수 구하라가 지난해 9월 18일 조사를 받기 위해 서울 강남경찰서에 출석하고 있다. 국민일보DB

26일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당시 재판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법 오덕식 부장판사(연수원 27기)의 신상정보가 쉴 새 없이 오르내렸다.

오 부장판사는 지난 8월29일 1심에서 최씨에게 징역 1년6개월, 집행유예 3년을 선고했다. 최씨는 상해와 협박, 강요, 재물손괴,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카메라 촬영) 등 5개 혐의로 기소됐는데 오 부장판사는 다른 혐의들은 모두 유죄로 판단했으나 불법촬영 혐의에 대해선 무죄로 판단했다.

오 부장판사는 무죄 이유로 “피해자가 촬영된 사진을 보고도 성관계 동영상과 함께 삭제하지 않았고 피해자 또한 피의자의 사진을 촬영했던 당시 정황 등을 볼 때 명시적으로 촬영에 동의했다고는 할 수 없으나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찍은 것으로 보이지 않아 공소사실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구하라가 성관계 영상을 스스로 삭제하는 과정에서 몸을 찍은 사진 6장은 지우지 않았으니 피해자의 의사에 반해 몰래 사진을 찍었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최씨는 지난해 9월 구하라와 다투면서 구하라를 폭행한 뒤 “성관계 동영상을 유포하겠다”고 협박한 혐의로 불구속 기소됐다. 최씨는 구하라에게 “연예인 인생 끝나게 해주겠다. 언론에 제보하겠다”고 말하고 연예매체에 제보 메일을 보냈다.

구하라를 상대로 협박·상해·강요 등을 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최모씨가 지난해 10월 24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법원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를 마친 후 법원을 나서고 있다. 뉴시스

최씨는 연예매체에 영상 등을 보내진 않았다. 다만 구하라에겐 두 사람이 등장하는 사적 영상을 전송했다. 구하라는 당시 한 매체와 인터뷰에서 “남자친구 휴대전화에서 영상을 발견했다. 분명히 지웠는데 무서웠다”면서 “(연예매체에) 제보했을까. 친구들과 공유했을까. 연예인 인생은? 여자로서의 삶은? 복잡했다”고 심경을 밝혔다.

최씨는 “구하라가 동영상을 먼저 찍자고 제안했고 촬영한 사람도 구하라”라고 반박했다. 이후 최씨의 변호인측은 또 “결별 이후 관계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영상을 하나의 추억으로 간직하기 위해 구하라에게 보냈다”고 해명했다. 검찰은 최씨에게 성폭력 처벌법상 카메라 촬영 혐의를 추가해 기소했다. 다만 최씨가 연예매체에 영상 등을 전송하지 않은 것을 확인하고 성폭력 처벌법상 영상 유포 혐의는 없다고 판단했다.

1심 재판부는 판결에 앞서 검찰에게 성관계 영상을 증거로 제출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 구하라 변호인측은 그러나 “성관계 영상인 것은 분명하다. 아무리 비공개라도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다시 재생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 이 역시 2차 가해”라며 맞섰다. 영상의 내용이 본질이 아니라 최씨가 영상으로 구하라를 협박한 것이 핵심이라는 주장이었다.

구하라의 일반 빈소가 마련된 서울 강남 성모병원 장례식장 영정. 사진공동취재단

이 같은 사실이 다시 회자되면서 기사를 검색하며 오 부장판사의 과거 판결을 거론하는 네티즌도 많았다. 네티즌들은 ‘구하라 전 남친 집행유예 선고한 판사의 과거’ 등의 제목의 글을 올리며 오 부장판사가 성범죄 가해자에겐 지나치게 관대한 반면 사기 등 피의자에게는 비교적 엄한 판결을 내렸다고 비판하고 있다.

실제 ▲고 장자연씨 강제추행 혐의 전직 기자 무죄 선고 ▲최고급 웨딩홀 여성 하객 치마 속 수십차례 촬영한 사진 기사 집행유예 선고 ▲10대 청소년에게 음란물 유포 혐의 20대 대학생 벌금 200만원 선고 ▲성매매 영업 업주에게 집행유예 선고 ▲아동·청소년 등장 음란물 유포범에 집행유예 선고 ▲대형마트 소형 캠코더로 여성 신체 몰래 촬영한 30대에 집행유예 선고 등이 거론되고 있다.

공지영 페이스북 캡처

소설가 공지영씨는 이를 두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을 통해 “판사는 그 동영상을 왜 봤을까. 얼마나 창피한지 결정하려고? 판사가 신인가”라면서 “오덕식 판사가 판결문에 구체적인 성관계 장소와 횟수까지 넣었다고 한다. 어이가 없다”고 지적했다.

구하라 사망을 계기로 ‘가해자 중심적인 성범죄의 양형 기준을 재정비해주세요’라는 청와대 국민청원이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15일 시작된 청원에는 26일 오전 10시 현재 22만8800명을 기록, 답변 요건인 청원인 20만명을 돌파했다.

청와대 국민청원 캡처

청원인은 “과거 강간미수에 가까운 성추행을 당했는데 가해자는 어떠한 합의나 사과, 반성도 없이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면서 “우리나라 성범죄 처벌은 아직도 가해자 중심적이다. 양형기준의 재정비를 바란다”고 호소했다.

구하라는 사망했지만 최씨에 대한 항소심은 계속된다. 구하라는 이미 지난 수차례 경찰과 검찰, 법정에서 피해자 증언을 남겼기 때문이다. 구하라의 법률대리인측은 1심 판결 이후 “법원이 공소사실에 대해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한 것은 적정한 양형이라고 볼 수 없다”며 “항소심에서는 피고인 최씨에 대해 그 죗값에 합당한 처벌이 선고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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