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그오브레전드(LoL)’ 프로게임단 그리핀의 1군 선수도 ‘카나비’(게임상 닉네임) 서진혁(19)군과 동일한 내용의 ‘불공정 계약’을 맺었던 것으로 26일 확인됐다. 이 선수의 계약서와 서군 계약서를 비교하면, 다른 내용은 연봉 관련 조항뿐이다. 이 선수는 팀 안팎에서 이미 ‘에이스’ 평가를 받고 있다. 유망주로 분류되는 서군과는 무게감이 다르다. 다른 선수들도 동일한 조건으로 계약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핀의 모기업 ‘스틸에잇’은 국민일보가 서군의 불공정 계약 문제를 지적한 지 4일 만인 지난 25일 “사려 깊은 관계로 계약을 맺지 못했던 점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 며칠에 걸쳐 선수들과 불공정 조항을 삭제한 새로운 계약서로 (계약을) 갱신했다”고 전했다.

'리그오브레전드' 프로게임팀인 '그리핀'의 모기업 스틸에잇 [스틸에잇 홈페이지 캡처]

국민일보는 그리핀 소속 A선수가 지난해 맺은 매니지먼트 계약서를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로부터 입수해 내용을 살펴봤다. A선수의 계약서는 서군의 계약서와 비슷했다. 서군 계약서에 등장했던 불공정 조항들이 그대로 등장했다. 선수가 30일 이상 입원할 경우, 선수의 기량이 떨어질 경우 계약 해지가 가능한 조항이 A선수의 계약서에도 있었다. 연락이 두절될 경우 선수와의 계약을 해지한 뒤 ‘5000만원+그간 지급한 모든 돈’을 팀이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도 볼 수 있었다.

'카나비' 서진혁 군의 계약서(위)와 A선수의 계약서(아래)를 비교한 모습. 불공정 조항 내용이 A선수 계약서에도 동일하게 들어가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A선수 계약서가 서군의 것과 다른 점은 연봉과 수입 배분에 대한 부분이다. A선수의 연봉은 계약 당시 연습생 신분이었던 서군보다 훨씬 높다. 다만 A선수와 비슷한 실력의 다른 팀 선수들이 받는 연봉을 고려하면 A선수의 연봉은 ‘박한’ 수준이라는 평가다. A선수는 지난 10월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에 출전해 활약한 바 있다.

'카나비' 서진혁 군의 계약서(위)와 A선수의 계약서(아래)를 비교한 모습. 불공정 조항 내용이 A선수 계약서에도 동일하게 들어가 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A선수의 계약서 ‘별지’에는 불공정 소지가 있는 조항도 담겨있다. 별지에는 수입 배분 사항이 정리돼 있는데, 하단에 “계약이 종료되는 시점에 본 계약서 4조에 의한 매니지먼트 활동이 진행되고 있을 시, 별지1에 명기된 계약기간을 1년 연장하기로 한다”고 돼 있다. 본 계약서의 4조는 ‘팀의 매니지먼트 권한 및 의무 등’에 대한 제반 사항을 정리해 놓은 항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매니지먼트 활동이 진행될 시 계약이 1년 연장되는 지에 대해 명확한 설명은 따로 없었다. 법무법인 채율의 정다은 변호사는 “어떤 매니지먼트 활동인지 특정하지 않았으므로 팀이 이 조항을 악용할 수 있다”며 “훈련프로그램, 인터넷방송, 광고 출연 활동이 진행된다는 이유로 계약을 1년 연장할 수도 있지 않느냐”고 지적했다.

A선수의 계약서 별지 하단에 등장하는 '기타 협의 사항'. 불공정 소지가 있는 조항으로 보인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실 제공]

이 ‘불공정 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한 곳은 법무법인 비트다. 비트는 최근 국민일보에 “스틸에잇이 2017년 9월 사용 중인 선수단 계약서에 대해 보완 요청을 했다”며 “비트는 그 요청에 따라 대중문화예술인 표준전속계약서를 참고해, 선수단 계약서의 초안을 작성한 뒤 공유한 사실이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후 약 2년 2개월 동안 스틸에잇 및 그리핀 내부에서 필요에 따라 2017년 작성된 계약서 초안의 조항을 자체적으로 수정해 사용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덧붙였다. 국민일보는 그리핀 계약서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최근 논란이 된 불공정 계약 조항을 확인했는지 문의했으나 비트 측은 답하지 않았다.

서군에 이어 ‘에이스’인 A선수까지 불공정 계약을 맺은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 같은 일이 그리핀 소속 선수 대부분에게 일어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커지고 있다. 서군의 모친 이모씨는 지난 21일 국민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해 “다른 선수들 계약도 비슷한 줄 알았다. 그래서 도장을 찍었다”고 언급한 적이 있다. 업계 관계자는 “구단 측은 소속 선수를 ‘세상물정 모르는 어리숙한 아이들’이라고 보는 경향이 있다”며 “그런 관점이 팀 운영, 계약서에 그대로 녹아있다”고 지적했다. 한국법조인협회 e스포츠연구회 소속 윤현석 변호사는 “선수들이 대부분이 미성년자거나 사회생활이 없다. 흔히 얘기하는 ‘갑질’ 문화가 침투하기 매우 좋은 구조”라고 했다.

스틸에잇 홈페이지 캡처

그리핀의 모기업인 스틸에잇은 불공정 계약에 대한 국민일보 보도 4일 만에 “지난 며칠에 걸쳐 선수들과 불공정한 조항을 삭제한 새로운 계약서로 갱신했다”며 “불공정 계약서에 대해 그 심각성과 문제점을 충분히 인지하고 가슴 깊이 새기고 있다”고 밝혔다. 불공정한 계약을 한 선수들이 서진혁군 외에도 다수 존재한다고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스틸에잇은 이어 “사려 깊은 관계로 계약을 맺지 못했던 점에 대해 고개 숙여 사과드린다”며 “그동안 잘못된 관행으로 맺은 계약서를 모두 파기하겠다”고 전했다.

하태경 바른미래당 의원은 “스틸에잇이 사과를 했더라도 이미 저지른 과오에 대해서는 반드시 법적 책임을 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는 불공정 계약 문제에 대해 전수 조사를 하고 시정 명령을 내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동성 기자 theMoon@kmib.co.kr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정진영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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