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텔에서 프로포폴 등 약물 과다 투약으로 30살 남성(A)이 숨진 일명 ‘부천 링거 사망 사건’과 관련, 피해 남성의 여자친구(B·31)가 결국 살인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A씨 유가족은 뒤늦게나마 억울함을 풀게 돼 다행이라면서도 경찰의 허술한 초동수사와 부실한 약물관리 등을 한탄했다.

부천 링거 사망 사건의 피해자 A씨. 유족은 A씨의 얼굴이 공개돼도 괜찮다고 했다. A씨 유족 제공

A씨 누나인 C씨는 27일 국민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B씨는 하나뿐인 제 남동생을 죽이고도 1년이 넘도록 자유로운 상태에서 술을 마시고 여행을 갔으며 영화를 봤고 이를 자랑하듯 페이스북에 사진을 올리는 행태를 반복했다”면서 “그동안 우리 가족은 동생의 억울한 죽음에 피를 토하는 고통을 겪어야만 했다”고 호소했다.

그는 경찰 초동수사를 비판했다. C씨는 “사건 현장에는 여러 가지 약물이 있었는데 형사들은 이를 보고 동반자살 시도로 추정했다”면서 “경찰은 또 제 동생의 마지막 유품을 분실했고, 정보를 수집한다며 동생 스마트폰을 증거로 가져갔지만 오히려 망가뜨려 진실이 밝혀지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게 됐다”고 주장했다.

부천 링거 사망 사건의 피해자 A씨 유족이 공개한 CCTV 영상. B씨가 약물이 든 가방을 차에서 꺼낸 뒤 모텔로 들어가고 있다. A씨 유족 제공

부실한 약물관리 실태도 문제점으로 거론했다. 간호조무사였던 B씨는 사건 발생 2년 전 근무하던 병원에서 프로포폴과 디클로페낙, 마취제, 진통제, 항생제, 주사기 등을 절취했고 이는 결과적으로 A씨를 숨지게 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됐다는 것이다.

앞서 인천지검 부천지청 여성·강력범죄전담부(이현정 부장검사)는 경찰이 위계승낙살인 등 혐의로 송치한 B씨의 죄명을 살인 등으로 변경해 구속 기소했다고 26일 밝혔다.

B씨는 지난해 10월 21일 오전 11시30분쯤 부천시 한 모텔에서 A씨에게 마취제 등을 투약해 숨지게 한 혐의다. A씨 오른쪽 팔에서 두 개의 주삿바늘 자국이 발견됐다. 부검 결과 A씨 몸 안에서 마취제인 프로포폴, 리도카인과 소염진통제인 디클로페낙이 치사량 검출됐다. 사인은 디클로페낙으로 인한 심장마비였다.

부천 링거 사망 사건의 피해자 A씨 유족이 공개한 CCTV 영상. B씨가 약물이 든 가방을 메고 복도를 걸어가고 있다. A씨 유족 제공

B씨도 검사 결과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밝혀졌지만 치료농도 이하였다.

경찰은 B씨가 A씨에게 치사량 이상의 약물을 투약하고 자신에게는 치료농도 이하의 약물을 투약한 것으로 보고 위계승낙살인죄 등을 적용해 불구속 입건했다. 위계승낙살인죄는 함께 극단적인 선택을 할 것처럼 속여서 상대방의 동의를 얻어 살해한 경우 적용된다.

검찰은 그러나 보완 수사를 통해 두 사람이 동시에 극단적인 선택을 시도했다고 볼 증거가 없다고 판단했다.

B씨는 검찰 수사 과정에서 “동반 자살을 시도했는데 남자친구만 숨졌다”며 살인 혐의를 부인했다. 검찰은 두 사람이 주고받은 문자메시지와 B씨의 인터넷 검색어 기록 등 각종 증거로 미뤄볼 때 B씨의 주장에는 신빙성이 없고 살인의 고의성이 있다고 봤다.

부천 링거 사망 사건의 피해자 A씨 유족이 공개한 CCTV 영상. B씨는 119와 112에 신고를 한 뒤 문을 열어두었고 이후 3명에게 실려 나왔다. A씨 유족 제공

C씨는 사건 이후 인터넷 커뮤니티와 청와대 청원사이트 등을 통해 동생은 자살할 이유가 없다는 주장을 펼쳐 왔다. A씨가 지난해 12월 송년회를 잡았고 올 3월 친구와 함께 사업을 계획했으며 올 4월에는 어머니의 환갑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는 것이다.

C씨에 따르면 B씨는 2017년 9월 A씨와 결혼을 생각하고 있다며 집으로 인사를 왔다. 이후 각종 집안 행사에 참석하며 가족처럼 지냈다. B씨는 경찰 조사에서 A씨가 금전적으로 힘들어해 자신을 죽여 달라고 말했고 너무나 사랑하는 사이여서 동반자살을 계획했다고 진술했다.

C씨는 “동생은 아버지 사업을 물려받으려고 1년 넘게 일을 배웠고 숨지기 3일 전 관련 자격증까지 취득한 상태”라면서 “금전적으로 힘들어 죽여 달라고 말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다”고 강조했다.

A씨 유족이 올린 청와대 청원글. 청와대 청원페이지 캡처

그는 사건 당일 모텔 등에서 촬영된 CCTV 영상을 공개하며 억울한 죽음이라고 설명했다.

영상을 보면 B씨는 모델 주차장에 도착한 뒤 먼저 내려 약물이 들어 있는 가방을 챙긴다. C씨는 A씨가 가방에 뭐가 들었는지 모른 채 모텔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B씨는 투숙한 이후 119에 7차례 전화를 걸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12에는 모텔과 호수를 적은 문자를 보낸 뒤 문을 열어 놓았다. 경찰이 출동해 이들을 발견했고 B씨는 치료 받을 필요가 없는 상태였지만 3명에게 실려 나왔다. C씨는 B씨가 3명에게 들려나올 정도였다면 신고도 제대로 하지 못했을 것이라며 B씨의 행동이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의혹을 제기해 왔다.

경찰은 초동수사가 허술했다는 지적에 반발했다.

사건을 맡았던 경찰 관계자는 “사건 현장에서 경찰이 해야할 원칙을 지켰고 정상적으로 사건을 처리했다”면서 “어떤 부분이 구체적으로 문제라는 건지 알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디지털포렌식을 위해 피해자 휴대전화를 가져간 건 맞지만 암호를 풀지 못해 그대로 유족에게 돌려드린 적이 있다”면서 “유족에게 휴대전화를 그대로 드렸으니 망가뜨렸다는 표현은 맞지 않다”고 덧붙였다.

경찰은 또 B씨가 불구속 상태가 된 것은 초동수사 탓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관계자는 “조사하는 과정에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았고 구속영장도 신청했다. 검찰이 그 영장을 청구했으나 법원이 기각한 것”이라면서 “수사권 조정이 안 된 상황에서 경찰은 최선을 다해 수사했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


더 보기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