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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필리버스터 발표에 오열한 민식이 엄마 “사과해라”

오마이뉴스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자유한국당이 29일 오후 2시 국회 본회의 상정이 예정됐던 199건의 안건 전부에 대해 필리버스터((filibuster·무제한 토론을 통한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를 신청해 논란이 일고 있다. 한국당은 공직선거법 개정안, 고위공직자 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법안, 검‧경 수사권 조정법안 등 패스트트랙(신속안건처리) 법안 상정을 막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

그러나 199건의 안건 중 유치원 3법을 비롯해 도로교통법 개정안인 이른바 ‘민식이법’ 등이 민생법안이 포함되면서 대중들을 공분시켰다. 민식이 부모를 비롯한 어린이 교통사고 피해자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리며 오열했다. 이들은 기자회견을 열고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한국당은 국회 본회의를 앞두고 의원총회를 열어 남은 정기국회 내내 무제한 토론을 이어가기로 결정했고 발표했다. 한국당은 각각의 안건에 대해 의원 1인당 4시간씩 토론을 진행시키기로 했다. 한국당 소속 의원 108명이 법안 1건 당 432시간을 진행할 수 있으며 199건에 대해서는 8시간 이상의 토론이 가능하다. 정기국회 종료일이 12월 10일인 점을 감안하면 한국당이 필리버스터를 고수할 경우 올해 정기국회는 안건 처리를 하지 못한 채 막을 내리게 된다.

나 원내대표는 의원총회 직후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오늘 본회의에 상정된 모든 법안에 대해 필리버스터를 신청했다”며 “이번 정기국회가 끝날 때까지 이 필리버스터는 계속될 수 있고, 저희는 그렇게 할 것”이라고 밝혔다. 나 원내대표는 패스트트랙에 오른 공수처법 등 검찰개혁 법안과 연동형 비례대표가 적용된 선거 개정안 등을 거론하며 “사상 초유의 허전 무력화 폭거에 어렵게 쌓아올린 자유민주주와 의회민주주의가 사정없이 유린당하고 있다”며 “불법 사보임, 안건조정위 무력화 등 계속되는 불법과 다수의 횡포에 이제 한국당은 평화롭고 합법적인 저항의 대장정을 시작하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당은 민생법안을 볼모로 끌어들였다는 비판을 감수하면서까지 필리버스터 강행을 선언한 것이다. 이를 의식한 듯 나 원내대표는 “저희는 수많은 민생 법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다. 민식이 어머님 아버님, 태호·유찬이 어머님, 아버님, 저희는 모두 이 법안을 통과시키고 싶다”며 “국회의장께 제안한다. 선거법을 상정하지 않는 조건이라면 저희가 필리버스터를 신청한 법안에 앞서서 우리 민식이법 등에 대해서 먼저 상정해서 통과시킬 것을 제안한다”고 했다. 나 원대대표는 또 “국회의장은 사회를 거부하지 말고 민식이 어머님, 아버님을 비롯한 아이들, 어머님들의 간곡한 호소에 호응해달라”고 촉구했다.

“무릎까지 꿇었는데…” 오열한 민식이 엄마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신청 소식을 접한 민식이 부모님을 비롯한 어린이 사고 피해 유가족들은 분통을 터뜨렸다. 지난 9월 충남 아산의 한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교통사고로 사망한 후 발의된 법안으로 이른바 ‘민식이법’이라고 불리는 도로교통법 개정안의 처리가 불투명해지자 민식이 엄마 박초희씨는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박씨는 “민식이가 왜 협상 조건이냐. 왜 우리를 이렇게 이용하냐. 무릎까지 꿇었는데…”라며 오열했다.

한겨레 TV 유튜브 영상 화면 캡처

나 원내대표가 호명한 해인이‧하준이‧태호‧민식이 부모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사과를 촉구했다. 민식이 엄마는 “신호등 없는 곳에 신호등 만들어달라는 게, 대로변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어 아이들이 위험에 처해있으니 카메라 달아달라는 게 왜 협상카드가 돼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며 “왜 떠나간 우리 아이들이 협상카드로 써야 하는지, 불러주고 싶어도 마음 아파 불러줄 수 없는 우리 아이들… 당신들이 그렇게 하라고 우리 아이들 이름 내 준 것 아니다. 우리 아이들 협상 카드로 쓰지 말라. 꼭 사과받을 거다”라며 눈물을 흘렸다.

“이미 억울하게 죽은 아이들을 두 번 죽였다”고 한 민식이 아빠도 “선거법과 아이들 법안을 바꾸자는 것 아니냐. 그게 협상 카드가 되냐. 그게 사람으로서 할 짓이냐”고 비판했다. 임신 5개월이라는 태호 엄마도 “이런 나라에서 이 아이를 어떻게 키우라는 건지, 이 아이들이 이 땅을 밟고 살아갈 수 있을지”라며 울먹이며 “아이들 이름을 하나하나 거론한 것을 사과해달라”고 했다. 태호 아빠도 “이게 나라라는 게 너무 싫다”고 비난했다.

“아이들을 이용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를 꼭 듣고 싶다”고 한 해인이 아빠는 “지금 여기 있는 부모들이 우리 아이들 살려달라는 게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아이를 안전하게 키우게 해달라는 것 아니냐”고 지적했다. 해인이 엄마는 “매일 두세 시간씩 쪽잠 자면서 여기로 출근해 비굴하게 무릎까지 꿇으며 힘들게 왔다. 본인들 손자, 손녀라도 이렇게 했을 거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하준이 엄마는 “오늘 우리나라 정치의 민낯을 봤다”며 “나경원 원내대표는 우리 아이들의 목숨과 거래하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 분들이 이 국회에 보냈다는데 경악을 금치 못하겠다. 금수만도 못한 야만의 정치를 누가 하고 있냐”고 지적했다.

‘오해’라는 한국당…본회의 불발은 민주당 탓

한국당이 기자회견을 할 때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예산결산특위 회의장에서 의원총회를 진행 중이었다. 소식이 전해지자 이인영 민주당 원내대표가 국회의장실에서 문희상 의장과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와 1시간 동안 회동을 가졌지만 본회의 관련해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회동 직후 나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열고 “이른바 민식이법 주요 민생법안은 애초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대상 법안에 포함되지 않았다”며 “민생법안 먼저 처리하고 필리버스터 기회를 보장해달라는 것이 저희의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는 한국당의 필리버스터 요구로 민식이법 처리가 좌절됐다는 비판 여론이 나오자 해명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나 원내대표는 “우리는 모든 법안을 필리버스터 할 필요가 없다, 일부 철회하겠다고 주장한 사실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그런데도 민주당은 필리버스터를 철회하지 않으면 민생법안을 처리할 수 없다고 한다. 이런 적반하장이 어디 있는가”라고 말했다.

기자회견에 동석한 정양석 원내수석부대표도 “오해가 있다. 필리버스터 제출은 본회의 직전에 하게 돼 있고 당시 상정된 법안은 199건이었다”며 “(민식이법과 같이) 그 뒤에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법안은 필리버스터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주당은 ‘민생파괴! 국회파괴! 자유한국당 규탄대회’를 열며 한국당을 비판했다. 이해찬 대표도 “30년 정치했는데 이런 꼴은 처음 본다. 본회의에서 처리할 200여 건 모두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겠다는 이게 상식적으로 말이 되냐”며 지적했다.

이날 본회의는 한국당을 제외한 나머지 당들이 모두 본회의장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불발됐다. 본회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 출석해야 개의할 수 있다. 안건을 의결하려면 재적의원과 과반인 148명이 출석해야 한다. 민주당은 129석, 한국당은 108석으로 현재 어느 당도 단독으로 본회의를 진행할 수 없다.

한국당은 본회의 개의를 독촉했지만 문희상 국회의장은 의결정족수 미달을 이유로 개의하지 않았다. 나 원대대표는 결국 오후 9시 의원들에게 본회의장에서 이석해도 좋다고 했다. 이후 나 대표는 “필리버스터 투쟁은 민주당과 국회의장의 터무니 없는 방해로 이뤄지지 못했지만, 국회 내에서 할 수 있는 모든 합법적 투쟁은 이제 시작”이라고 말했다.

한편 필리버스터는 특정 안건에 대해 장시간 발언하면서 표결을 지연시키거나 막는 합법적 표결 저지수단이다. 2016년 2월 테러방지법을 놓고 당시 야당이던 더불어민주당이 필리버스터를 8일간 진행한 적이 있다. 현행 국회법(국회선진화법)상 필리버스터는 재적의원 3분의 1(현재 99명) 이상의 서명이 있으면 가능하다. 한국당이 108명 의석을 가졌기 때문에 이들이 모두 동참한다면 가능하다.

천금주 기자 juju79@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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