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법사금융(사채)을 이용하는 가정주부와 고령층이 급증했다. 경기 부진이 길어지는 상황에서 제도권 금융회사에서 대출을 받을 수 없자 사채로 떠밀리는 이들이 많아진 것이다. 가정주부와 고령층은 대표적인 금융취약계층이다. 연체율 상승 위험, 불법 채권추심 등과 맞물려 가계부채의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금융감독원은 9일 ‘제2차 불법사금융 시장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지난해 말 불법사금융 이용잔액은 7조1000억원으로 추산된다고 밝혔다. 2017년(6조8000억원)보다 4.4% 늘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전체 가계부채(1535조원)의 0.5% 수준이다. 금감원은 19세 이상~79세 이하 남녀 5000명을 심층면접 방식으로 표본조사했다.

불법사금융 이용자는 41만명으로 추정됐다. 전체 성인인구(4100만명)의 1.0%에 해당된다. 2017년 말(51만8000명)보다 7.9% 줄었다. 금감원은 감소 요인으로 장기연체 채무자의 신용회복 지원 등을 꼽았다.


그러나 특정계층의 불법사금융 이용이 눈에 띄게 늘었다. 가정주부의 비중은 2017년 말 12.7%에서 지난해 말 22.9%까지 뛰었다. 같은 기간 60대 이상 고령층 비중은 26.8%에서 41.1%로 치솟았다. 이들은 은행이나 저축은행 등에서 대출을 받기 쉽지 않은 금융취약계층, 이른바 ‘신파일러’(Thin Filer)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고령층은 은퇴 후에도 경제활동을 이어가야 하지만, 제도권 금융회사에 내밀 신용이나 담보가 부족한 경우가 적지 않다”면서 “경기 악화로 상황이 급박해지니 불법사금융 쪽으로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아졌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가정주부도 비슷한 상황이다. 가장이 실직하거나 자녀교육비 등으로 급전이 필요할 때 기존 금융권 진입이 어려워 불법사금융으로 내몰린다.

문제는 대출 상환의 건전성이다. 금감원 실태조사에 따르면 불법사금융에서 돈을 빌린 사람의 50.0%가 상환 방식으로 단기·만기 일시상환을 선택했다. 그런데도 ‘대출금 상환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한 비율이 44.0%에 이른다. 불법사금융의 평균 연이율은 26.1%다. 경기가 풀리고 가계 형편이 나아지 않는다면 대출금 상환 자체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여기에다 금융취약계층은 수입이 마땅찮은 경우가 많다. 불법 채권추심 피해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금감원에 따르면 불법사금융으로 빌린 돈의 용도는 가계생활자금(39.8%)이 가장 많았다. 이어 사업자금(34.4%), 다른 대출금 상환(13.4%) 등이었다. 직업별로 생산직(29.5%)이 가장 많았고 자영업(27.2%)과 가정주부가 뒤를 이었다. 소득별로 월 200만~300만원 소득자가 27.3%로 제일 큰 비중을 차지했다.


불법사금융 이용자 가운데 여성 비중은 2017년 말 37.5%에서 지난해 말 48.1%로 증가했다. 금감원 불법금융대응단 관계자는 “여성의 경제활동이 점점 증가하는 동시에 여성 1인 가구가 늘면서 남성과 같은 대출 행태를 닮아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은 향후 조사대상자를 더 확대하고, 불법사금융 이용자를 상대로 추적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다. 불법사금융이 근절될 수 있도록 형벌 강화 등 제도 보완과 단속도 적극 지원해 나갈 방참이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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