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기사와 무관한 자료 사진입니다. 오른쪽은 서강대에 합격한 학생이 공개한 아버지의 문자. 게티이미지뱅크, 인터넷 커뮤니티 캡처



대한민국에 사는 고등학생에게 ‘수능’이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일처럼 느껴집니다. 수험생 본인은 물론 그의 가족들도 그날에 맞춰 모든 스케줄을 정하곤 하죠. 이토록 중요한 날을 준비하던 중 생각지도 못한 어려움이 찾아왔다면, 얼마나 암담한 기분이 들까요.

아버지 사업 실패로 갑자기 힘들어진 남학생이 있었습니다. 다니던 고등학교도 그만둘 만큼 어려웠지만 학생은 처지를 비관하지 않고 묵묵히 공부했고, 원하던 대학에 합격했습니다. 틈틈이 알바하며 번 돈 1000만원을 아버지에게 빚 청산하라며 드리겠다는 결심한 학생의 사연에 많은 이들이 감동했습니다.

자신을 ‘흙흙수저’로 표현한 한 남학생은 11일 수능갤러리에 ‘지독했던 2년 인증한다’며 자신이 서강대에 합격하기까지의 과정을 짧은 글로 올렸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의 사업이 망했고, 억대의 빚이 아버지를 짓누르고 있다는 사실을 안 뒤 그는 가족에 보탬이 되고 싶어 학교를 그만뒀습니다. 그리고 독서실 총무로 일하면서 수능을 준비하고, 저녁부터 이른 새벽까지 편의점에서 일하며 돈을 모았습니다. 독서실에서 알게 된 학생에게 부탁해 인터넷 강의를 듣고, 청소년을 지원하는 지역센터 도움으로 수능 교재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홀로 입시를 준비했고, 논술 전형으로 서강대에 합격했습니다. 그는 등록금에 쓰려고 모은 1000만원 아버지에게 드릴 예정이라고 했습니다. 지역센터 장학생으로 선발돼 등록금을 지원받을 수 있게 됐기 때문이었죠. 어려움을 딛고 대학이라는 문턱을 넘어선 그에게 많은 이들이 응원을 보냈습니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앞으로 꽃길만 걷길 빈다”는 댓글이 180개쯤 달렸습니다.

그리고 이 학생이 다음날인 아버지에게 받은 문자를 공개한 뒤 더 많은 응원 댓글이 쏟아졌습니다. 아버지는 아들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시기에 제대로 지원해주지 못한 것을 미안해하며 1000만원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그러면서 컴컴한 동굴에서 실낱같은 작은 희망의 빛줄기를 따라 열심히 살아준 아들에게 아래와 같은 응원의 메시지를 남겼습니다.



‘아들아, 아빠가 OO이가 고등학교 1학년 때 했던 말 기억나니? 인생은 연극과 같단다. 어느 연극이 그렇듯 늘 중간에 조명이 어두워지는 순간들이 오지. 그리고 그 어두워지는 순간이 지나고 나면 새로운 장면으로 전환되곤 하잖아. 인생도 똑같단다. 인생에서도 무대 위에 조명이 어두워지는 순간들이 아무도 모르게 찾아온단다. 그 어둠 속에서 두려움과 긴장감이 나를 집어삼킬 것 같더라도 놓치지 않아야 하는 건 내 자신에 대한 믿음이란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을 부여잡은 채 그저 다음 장면을 위해 묵묵히 준비하면 될 뿐이란다. 아버지가 너를 낳고 고등학교에 보내기까지 조명이 꺼지는 순간이 셀 수 없이 많았단다. 하지만 그 순간에도 절대 놓치지 않았던 건 내 자신 그리고 OO이 아버지로서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었어. 비록 아버지의 과오로 OO를 경제적으로 지원해 주지 못해서 늘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하지만 이 아버지는 아버지란 연극의 무대 위에서 조명이 밝아지는 순간을 위해 묵묵히 인내하고 노력할 테니 OO이는 밝아진 무대 위에서 다시 한번 너만의 연극을 만들어가길 바란다. 그리고 네가 말한 천만원은 앞으로 전개된 OO이의 인생의 연극을 위해 쓰길 바란다. 고맙다. 네가 내 아들이기에 늘 자랑스럽다.’


[아직 살만한 세상]은 점점 각박해지는 세상에 희망과 믿음을 주는 이들의 이야기입니다. 힘들고 지칠 때 아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가는 ‘아살세’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어보세요. 따뜻한 세상을 꿈꾸는 독자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신은정 기자 se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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