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앞에서 활짝 웃고 있는 민이씨. 오른쪽은 콘서트 현장에서 열창하는 민이씨 모습. 크라우드티켓 제공

“한 명도 안 와있으면 어쩌나 걱정되더라고요.”

무대 위에 오른 유튜버 ‘노래하는 민이’(민이·24)의 말에 10명 남짓한 관객이 웃음을 터뜨렸다. 민이씨도 함박웃음을 지으며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드린다”고 거듭 말했다. 민이씨는 뇌병변 장애를 앓고 있다. 동영상 플랫폼 유튜브에서 활동하는 1인 크리에이터이기도 하다. 미세먼지 공습 속 오랜만에 화창했던 14일 오후. 서울 마포구 ‘문화공간 너나들이’에 마련된 민이씨의 콘서트 현장을 찾았다.

단 3곡…민이씨의 작은 콘서트

대학생 자취방만한 크기의 공연장과 그 절반을 차지한 무대. 객석은 무대 앞에 놓인 의자 10여개가 전부였다. 그마저도 다섯 자리만 채워졌다. 민이씨는 마땅한 대기실이 없어 객석 뒤쪽에 앉아있었다. 흰색 셔츠에 검은색 니트와 바지로 멋을 낸 그의 얼굴은 긴장 때문인지 굳어있었다.

오후 2시20분쯤 기획을 맡은 ‘크라우드티켓’ 신효준 대표의 사회로 공연이 시작됐다. 청중은 어느새 10명으로 늘어있었다. 가족의 도움을 받아 무대로 올라온 민이씨가 “안녕하세요. 노래하는 민이입니다”라고 자신을 소개하자 객석에서 박수가 나왔다. 공연장에 모인 이들은 민이씨 채널의 구독자였다. 민이씨는 유튜브에 가요 커버 영상을 올린다. 채널 구독자는 개설 1년여 만에 약 17만명이 됐다.

왼쪽부터 '크라우드티켓' 신효준 대표, 민이씨. 크라우드티켓은 여러 1인 크리에이터의 팬미팅 등 행사를 기획, 진행하고 있다. 신 대표는 "관객수는 중요하지 않다"며 "구독자분들이 화면에서만 보던 민이씨를 실제로 만나 감동을 받고 용기를 얻게 되는 것이 이번 공연의 기획 목표였다"고 말했다.

“팬분들과 온라인에서만 소통하니까 제한이 있는 기분이었어요. 직접 만나서 소통하고 싶다는 생각에 이런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민이씨는 콘서트 개최 이유를 묻는 신 대표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이어 “공연장으로 오는 데 많이 떨렸다. 사실 ‘1명도 없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다”며 수줍게 미소를 지었다.

민이씨는 ‘가족사진(김진호)’ ‘시든 꽃에 물을 주듯(HYNN)’ ‘사랑에 연습이 있었다면(임재현)’ 등 3곡을 불렀다. 첫 곡으로 가족사진을 선택한 이유에 대해 “어느 날 TV에서 김진호님이 이 곡을 부르는 모습을 봤다”며 “가사가 제 이야기인 것만 같아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꽃 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어버렸던’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제가 늦둥이라서 부모님 연세가 많은데, 제 몸이 이렇다 보니 아프신 데도 제게 신경을 많이 쓰신다. 말 그대로 저를 꽃피우기 위해 거름이 되시는 거다. 이 부분에 공감이 됐다”고 설명했다.

가수 임재현의 '사랑에 연습이 있다면'을 부르는 민이씨.

민이씨는 노래하는 내내 땀을 흘렸다. 힘에 겨운 듯 다리를 사방으로 뻗었고, 꺾어진 팔목은 더욱 뒤틀어졌다. 1절이 끝나자 쓰러질 듯 고개를 숙였던 그는 숨이 거친데도 노래를 멈추지 않았다. 대신 마이크 위치를 조정하고 더 큰 목소리로 노래했다. 고음을 낼 때면 복부에 힘이 들어가 아프다고 한다. 한 곡만 끝내도 온몸이 땀에 젖을 정도다. 그런데도 어느 소절 하나 허투루 부르는 법이 없었다. “당신의 웃음꽃 피우길.” 가족사진의 마지막 소절을 뱉는 그의 목소리가 선명했다.

‘위로’ ‘용기’…이들이 민이씨 영상 찾는 이유

콘서트는 민이씨의 공연 외에도 관객이 직접 묻는 Q&A 코너 등으로 채워졌다. 첫 질문은 “유튜브를 시작할 때 두려움은 없었나”였다. 민이씨는 “인터넷 방송은 제 얼굴이 공개되고 신상이 어느 정도 노출되기 때문에 두려움이 있었다”며 “저는 비장애인 분들과 달라서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고 털어놨다. 또 “‘무시당하면 어쩌지’ ‘장애인이라고 놀리는 사람은 없을까’ 등의 두려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휠체어를 타고 온 정주영(14)양은 영상 촬영 시 어떤 장비를 쓰는지 물었다. 언니와 함께 공연장을 찾은 주영양은 민이씨처럼 뇌병변을 앓고 있다. 그는 언니의 추천으로 민이씨의 영상을 봤다가 팬이 됐다고 했다. 자신 역시 음악이나 미술 관련 영상을 유튜브에 올리고 싶지만 용기가 부족하다며 “(민이씨는) 정말 대단한 것 같다”고 말했다.

민이씨와 대화 나누는 주영양. 충북 청주에서 온 주영양은 "민이씨 용기가 대단하다. 저라면 못할 것 같은 데 정말 멋있다"며 연신 감탄했다.

이날 콘서트는 관객과의 일대일 대화로 마무리됐다. 구독자들은 차례대로 꽃다발, 먹거리 등 준비해온 선물을 민이씨에게 건넸다. 대학생 윤채림(20)씨는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민이씨 관련 글을 본 뒤 팬이 됐다”면서 “최근 개인적으로 힘든 일이 있었는데 민이씨의 노래가 큰 위로가 됐다”고 말했다. 아내, 딸과 함께 온 중년 남성은 “딸이 민이씨 공연을 보고 싶다고 해서 강원도 춘천에서 왔다. 오늘 와서 보니 정말 좋다”고 소감을 전했다.

유튜브 수익 ‘0’…그래도 노래

민이씨의 첫 유튜브 채널은 ‘노래하는 민이’가 아닌 ‘노래하는 경민’이었다. 지난해 1월쯤 개설했다가 3개월 만에 삭제했다. 악성 댓글 때문이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민이씨의 영상이 공유된 것도 삭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조롱하는 듯한 수많은 글이 민이씨를 괴롭혔다고 한다.

유튜브를 그만두니 살길이 막막했다. 사무직으로 취업해야겠다는 생각에 여러 회사의 면접을 봤다. 엑셀·한글 관련은 물론이고 인사·회계 정보관리사(ERP), 문서실무사 등 각종 자격증도 갖췄던 터라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민이씨를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민이씨는 “면접장에 들어서면 제 몸부터 훑는 시선들이 느껴졌다”고 말했다.

결국 올해 1월 유튜브로 돌아갔다. ‘살아남으려면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질문에 대한 답은 ‘노래’ 밖에 없었다. 다행히 뜻밖의 행운이 찾아왔다. 가수 임재현의 곡을 커버했는데 작곡가에게 연락이 왔다. 페이스북에 올리고 싶다는 내용이었다. 조회수가 폭발했고, 민이씨는 순식간에 유명인사가 됐다.

민이씨의 유튜브 채널 '노래하는 민이'. 올해 1월 개설한 뒤 50여개의 유명 가요 커버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는 17만명이다. 유튜브 캡처

민이씨는 “악성 댓글보다 응원해주는 글이 더 많지만 그래도 속상하다. 신경 쓰지 않으려 해도 악성 댓글만 읽게 된다”며 “무시하는 게 어렵더라. 보는 순간 상처를 받게 된다”고 말했다. 이어 “새 계정을 열 때 ‘이걸 견뎌야 내가 성장할 수 있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도 넘은 댓글들을 보면 화가 난다”고 덧붙였다.

민이씨는 영상 촬영, 편집 등을 홀로 하지만 노래만큼은 노래방 반주에 맞춰 한다. 불편한 몸 때문에 악기 연주나 편곡 등은 아직 어려워서다. 그래서 영상 조회수로 발생하는 수입은 ‘0’이다. 유튜브 규정상 창작 콘텐츠가 아닌 단순 커버 영상은 저작권 문제로 인해 조회수가 수익으로 이어지지 못하게 돼 있다. 민이씨는 구독자들이 라이브 방송에서 보내주는 후원금 등으로 생계를 꾸리고 있다.

그런데도 그가 노래하는 이유는 뚜렷했다. “노래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거예요. 다른 사람에게 제 감정을 전달할 수 있는 도구이기도 하고,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창구라고 생각합니다. 전에는 가수라는 직업을 꿈도 못 꿨는데 이제는 몇몇 팬분의 응원에 힘입어 기회가 된다면 앨범도 내보고 싶어요.”

글·사진=박은주 기자 wn1247@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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