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 12시간 2달 일하고 ‘0원’…그게 연습페이랍니다”

화려한 무대 뒤 힘겨운 뮤지컬 앙상블… “연습은 무급, 무대 오르면 8만원”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전석 매진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이 공을 앙상블 팀에게 돌립니다”

무대를 마친 주연배우는 앙상블 배우들 덕에 공연을 잘 마무리했다고 감사 인사를 했다. 막이 내리고 배우들은 모두 같은 무대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한 무대에 섰던 주연배우와 앙상블. 그들의 통장에 찍힌 숫자는 달랐다. 주연과 앙상블(주·조연 뒤에서 함께 춤을 추고 노래를 부르는 배우)인데 다른 건 당연한 게 아닐까. 물론 다른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냥 다른 수준이 아니다. 유명 아이돌 출신 주연배우가 받은 1회 출연료는 8000만원. 앙상블은 8만원을 받았다. 딱 1000배 차이였다.

관객들이 공연장을 가장 많이 찾는 연말연시. 오랜만에 가족과 뮤지컬을 관람하기 위해 티켓 예매를 시도한 이들이라면 스타들이 즐비한 화려한 라인업에 한번, 10만원을 오가는 비싼 티켓값에 또 한번 놀랐을 거다. 더욱 놀라운 건 이런 화려한 무대 뒤에서 열정을 담보로 벌어지는 일이다. 바로 8000만원 대 8만원의 현실이다.

“최저임금이요? 반도 못 받아요”

2012년 데뷔한 전모(31)씨는 뮤지컬계에 회의감을 느끼고 2년 전 앙상블 생활을 접었다. 단 2시간 공연을 위해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연습량을 2달간 소화했다. 단체 연습이 없을 때는 아침 9시부터 12시까지 무용 연습, 오후 내내 노래 연습, 늦은 밤까지 연기 연습을 하며 주·조연 배우가 되기만을 꿈꿨다. 그러나 2달간의 연습이 끝나고 통장에 찍힌 금액은 ‘0원’이었다.

뮤지컬계는 일부 대형 제작사를 제외하고는 관행적으로 연습기간 동안 앙상블에게 임금을 지불하지 않는다. 노동시간이 아니라는 이유에서다. 전씨는 “앙상블 배우들은 고정 임금 없이 회당 8만원 정도 페이를 받는다”며 “공연기간보다 훨씬 긴 연습기간에 대한 임금 보장이 이뤄지지 않아 생계를 유지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문제는 연습기간이 필수라는 점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중형 작품 기준 연습기간은 평균 2~3달이 소요된다. 연습 시간은 보통 하루 12시간 정도. 연습이 부족하면 더 오래 하기도 한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함. 게티이미지뱅크

만약 ‘연습페이’가 있다면 (2019년 최저시급 8350원 기준) 주 5일 8시간 근무 기준 한달 160여만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앙상블이 실제로 받는 월급은 이에 한참 못 미친다. 두 달간 연습한 후 한 달 동안 30번 공연을 한다고 가정하면 세 달에 240만원을 받는다. 한 달 80만원. 최저시급의 반절 수준이다.

현재 대형 뮤지컬에 출연 중인 신모(26)씨와 3년간 굵직한 작품에 출연해온 배우 박모(28)씨의 사정도 다르지 않다. 이들은 앙상블 활동이 ‘열정페이’라고 입을 모았다. 신씨는 “제가 공연했던 제작사에서는 연습기간 중 교통비나 밥값을 제외하면 주는 돈이 없었다”며 “이마저도 원래 출연비에서 미리 몇 퍼센트를 떼서 선입금을 해주는 형식”이라고 밝혔다.

박씨는 “제 경우 회당 임금이 7만원으로 80회 정도 공연을 올려 560만원을 받았지만, 연습기간을 포함해 5달 동안 쓰려면 한 달에 약 100만원 정도를 받고 있는 셈”이라며 “이 정도면 평균이다. 입봉 당시 회당 4만원을 주는 곳도 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실제 한국뮤지컬연구회 조사 결과에 따르면, 뮤지컬 배우 응답자 407명 중 43.7%는 연습기간 중 임금을 받지 못했다. 정산된 임금이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경우도 많았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이런 사정 때문에 대부분의 배우들은 결혼식 축가, 노래 강사 등 단기 아르바이트를 통해 생계를 꾸려나가고 있다. 하지만 강도 높은 연습량과 불안정한 연습 시간 때문에 안정적인 부수입원을 구하기 힘든 현실이다. 신씨는 “나도 그렇고 또래 친구들도 알바나 다른 일과 함께 (앙상블을) 병행하고 싶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며 “하루에 거의 12시간 연습을 강행하는데 어떻게 다른 일을 할 수 있겠냐”고 하소연했다.

열정페이가 부당하다고 불만을 제기할 수도 없었다. 워낙 업계가 좁아 자칫하면 내부고발자로 찍혀 불이익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앙상블 3년 차인 최모(28)씨는 “연습페이를 주지 않거나 불합리한 임금 구조 등 앙상블을 하며 부당하다고 느끼는 부분들도 많지만 직접 나서서 문제를 제기하기 힘든 분위기”라며 “뮤지컬 시장이 워낙 좁다 보니 문제를 공론화할 경우 지금 하는 작품에서 잘리거나 이후에 작품이 아예 안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고 털어놨다.

티켓파워에 무릎 꿇는 뮤지컬 업계

그렇다면 왜 앙상블들은 최저시급에도 미치지 못하는 임금을 받게 된 것일까. 9년째 뮤지컬 제작사에서 일하고 있다는 김모씨는 그 원인에 대해 “티켓파워를 가진 배우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제작 구조 때문”이라고 밝혔다.

뮤지컬의 제작비는 철저하게 티켓값으로만 구성된다. 정부 지원금은 대부분 공모전 형식으로 지급되기 때문에 상업극은 정부 지원을 기대하기 힘들다. 그렇다고 영화처럼 PPL을 끼워 넣어 기업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여지도 적다. 그 때문에 뮤지컬 제작비는 순수하게 티켓을 팔아 얻은 수익금으로 채워야 한다.

문제는 뮤지컬 티켓의 주 구매층이 특정 배우의 팬덤이라는 점이다. 김씨는 “요즘은 뮤지컬보다도 배우 자체를 보고 싶어서 오는 사람들이 훨씬 많다. 한 배우가 움직일 수 있는 팬덤이 1000명이라 하면 1000장의 티켓 판매가 고스란히 보장된다”며 “주연배우 개런티가 계속 올라가다 보니 상대적으로 앙상블 페이가 낮아지게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결국 뮤지컬의 성패는 스타 배우의 섭외에 달려있고, 스타 배우에게 지급되는 개런티가 많을수록 앙상블에게 돌아가는 임금은 줄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뮤지컬 대본. 앙상블 배역이 '사람들'로 쓰여 있다.

여기에 최근 제작사 간 할인 경쟁이 공공연히 벌어지면서 뮤지컬계 자금줄은 더 마르고 있는 실정이다. 김씨는 “티켓값이 비싸지 않느냐. 할인 이벤트를 하지 않으면 팬덤을 제외하고 일반 사람들이 잘 보러오지 않는다. 중극장 대관료만 해도 7000만원이고 큰 곳은 2억원 가까이 하는데 제작사도 힘든 실정”이라고 호소했다. 뮤지컬 음악 감독인 김모씨 역시 “솔직히 저도 그렇고 스태프들 모두 최저임금도 못 받고 일한다”며 “공연 끝나고 부자가 되는 건 한두 명의 스타 배우뿐”이라고 말했다.

임금 격차 줄이려면 작품성 높이고 지원 확대해야

조용신 뮤지컬 평론가는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시장에 흔들리지 않는 작품성 위주의 뮤지컬을 만들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요즘 뮤지컬이) 티켓파워를 의식하다 보니 지나치게 주연배우 위주로만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며 “그 구조를 벗어나 작품성 위주의 극을 제작하려 노력하다보면 극중에서 조연배우나 앙상블의 캐릭터도 점점 비중 있게 다뤄질 것이고 자연스레 임금 격차도 해결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적극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원종원 평론가는 “임금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제작환경 개선이 필수”라며 “보다 효과적인 지원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공모전 상금 형식의 소극적 지원을 넘어 부가가치세 감세 혜택을 주는 등 적극적 개입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원 평론가는 “실제로 뉴욕에서는 많은 뮤지컬 공연들이 부가세 혜택을 받고 있다. 도시 브랜드 이미지 개선과 고용효과를 인정받았기 때문”이라며 “한국에서는 아직 이런 논의가 이뤄지지 않아 아쉽다”고 말했다. 이어 “적극적인 지원으로 제작비 운영 폭이 커져야 앙상블에게 제대로 된 연습페이를 주는 등 정당한 보수를 지급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해당 사진은 기사와 무관. 게티이미지뱅크

앙상블 A씨는 다음 달 있을 뮤지컬 무대에 설 예정이다. 연습 시작은 오전 10시. 밤 10시까지 12시간 동안 춤과 노래를 연습해야 한다. 이번 달은 연습 기간이라 생활비가 없어 배를 주릴지도 모른다. 포기하지 않는 이유를 물었다.

“앙상블로 얻는 수입이 넉넉하지는 않아요. 그렇지만 제 꿈이잖아요. 뮤지컬이 너무 재미있어 이 길을 포기할 순 없지만 제 열정까지 최저가 아니란 걸 알아줬으면 좋겠어요.”

이홍근·소설희·김지은·박실·김영철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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