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정역 5번 출구부터 신설동역 유령 승강장까지 하루 750만명이 이용하는 서울 지하철을 소재로 한 노래와 드라마, 영화가 제법 많다. 그 만큼 지하철은 시민의 일상과 떼어놓을 수 없는 친숙한 대중교통 수단이다.

‘합치면 정이 되는 합정인데 왜 우리는 갈라서야 하나~’. 개그맨 유재석이 지난해 한 방송 예능프로에 ‘가수 유산슬’로 데뷔해 합정역(2·6호선)을 소재로 다룬 노래 ‘합정역 5번 출구’를 발표하면서 큰 인기를 모았다. 지난 1974년 당시 만들어졌지만 노선 조정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 ‘신설동역 유령 승강장’은 가수 EXO, TWICE 뮤직비디오, 드라마 ‘아테네: 전쟁의 여신’ 등의 촬영지로 사용돼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처럼 단순한 교통수단을 넘어 문화·예술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는 서울 지하철의 모습을 14일 소개했다.

우선 대중가요 속 서울 지하철은 1990년 그룹 동물원이 ‘시청앞 지하철역에서’라는 노래에서 1·2호선 시청역을 제목으로 사용해 많은 사랑을 받은 바 있다.

최근엔 유산슬의 ‘합정역 5번 출구’가 대표적이다. 합정(合井)역 이름의 유래는 조선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이 일대 인근 처형터에서 망나니들이 칼춤을 추기 전 물을 뿜기 위한 우물을 만들었는데, 우물 바닥엔 한강에서 흘러들어온 조개껍데기가 많아 조개 우물이란 의미의 ‘합정(蛤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일제강점기 시절 ‘합(蛤)’ 자가 어렵다고 해 ‘합(合)’ 자로 바뀌어 지금에 이르렀다.

밴드 자우림의 노래 ‘일탈(1997년 발매)’에는 ‘신도림역 안에서 스트립쇼를~’이란 가사가 있다. 1·2호선 환승역으로 하루 이용인원이 40만 명에 달해 혼잡하기로 유명한 신도림역을 재치 있게 표현한 가사다. 가수 왁스의 노래 ‘지하철을 타고(2002년 발매)’에도 ‘지하철을 타고 약수역 금호역 다리 건너 압구정에 내려~’라는 가사가 나온다.

지하철 역명을 노래 제목이나 가사 등에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없을까? 지하철 역명은 ‘서울 지하철 역명 제·개정 기준 및 절차’에 따라 역 인근 지역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한 후 서울시 지명위원회를 거쳐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역명에 대한 별도의 상표권이나 저작권을 행사하는 경우가 없기에 현재로서는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다.

서울 지하철은 뮤직비디오·드라마 촬영지로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촬영지 중 대표적으로 잘 알려진 곳은 2호선 신설동역에 위치한 ‘유령 승강장’이다. 옛 지하철 역명판과 노란색 안전선이 그대로 남아 있어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면서 세월의 흔적도 엿볼 수 있어 공사는 이 승강장을 드라마·뮤직비디오 등 촬영지로서 재활용했다. 신설동역 유령 승강장은 과거 5호선 설계 시 운행 구간으로 계획된 공간이다. 1974년 1호선 건설 당시 미리 구조물을 지어놓았으나 이후 계획이 변경되면서 사용하지 않는 공간이 됐다. 신설동역 유령 승강장에서 촬영된 대표적인 뮤직비디오는 그룹 TWICE의 ‘CHEER UP(2016년)’, 비스트의 ‘리본(2016년)’, B.A.P의 ‘One Shot(2013년)’, EXO의 ‘LIGHTSABER(2015년)’ 등이다. 드라마는 KBS ‘아이리스(2009년)’, tvN ‘사이코메트리 그녀석(2019년)’ ‘싸우자 귀신아(2016년)’, SBS ‘아테나: 전쟁의 여신(2010년)’ 등 다양한 작품에서 등장한다.

‘유령 공간’은 2·6호선 신당역, 5호선 영등포시장역, 7호선 신풍역·논현역에도 있다. 타 노선과의 환승을 위해 미리 구조물을 건설했지만 이후 계획이 변경되면서 지금은 사용되지 않는 곳들이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들 공간 중 신당역과 신풍역을 신설동역처럼 다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 논현역은 원래 11호선과의 환승이 예정돼 있었다. 이후 계획이 변경돼 신분당선 연장구간(강남-신사)과의 환승 공간으로 활용될 예정이다. 영등포시장역은 10호선과의 환승이 예정돼 있던 곳이다. 현재는 지역 주민과 함께 문화 테마역으로 꾸며나가는 작업을 진행 중에 있다. 신당역과 신풍역도 10호선과의 환승이 예정돼 있던 곳이다. 두 역의 ‘유령 공간’은 안전 및 접근성 등을 고려해, 촬영지 등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 중이다.

지난해 지하철 내 촬영은 총 336건에 달했다. 가장 인기가 많은 촬영 장소는 6호선 녹사평역(21건)이었다. KBS 다큐멘터리 ‘용산공원, 그 미래를 묻다’, 우리은행WON 홍보영상 등이 촬영됐다. 서울시가 지난해 3월 녹사평역 내 공공미술과 자연의 빛, 식물이 어우러진 ‘공공예술정원’을 개장한 후 호평을 받으면서 많은 신청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서울교통공사는 설명했다. 이어 왕십리역(12건), 신설동역(10건)도 촬영 명소로 이름을 올렸다. 왕십리역은 지난해 지하철 경찰대를 주제로 다룬 tvN 드라마 ‘유령을 잡아라(2019년)’의 주 무대가 됐다.

지하철 안에서 촬영을 하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공사는 누리집(http://www.seoulmetro.co.kr) 내 ‘시민 참여-시설물 촬영’ 안내 페이지를 통해 촬영 절차를 안내하고 있다. 촬영 시 발생될 수 있는 지하철 이용객들의 불편을 줄이기 위해 공사는 승인되지 않은 지하철 내 촬영은 금지한다. 영화·드라마·광고 등 영리영상물의 경우 휴일을 제외한 촬영 희망일 7일 이전까지 서울영상위원회 누리집을 통해 신청할 수 있다. 공사가 지정한 별도 촬영 수수료를 납부해야 한다.

서울 지하철은 공연을 원하는 시민들에게도 항상 열려 있다. 공사는 역사 내 마련된 예술무대에서 예술가, 일반 시민들의 음악, 춤, 퍼포먼서 공연을 선보이고 있다. 공사는 매년 3월 신청을 통해 시민 중 예술인으로 인증 받은 공연팀을 ‘메트로 아티스트’로 선발한다. 이들은 1~8호선 역사 내에 마련된 예술무대에서 매월 시민 대상으로 음악, 춤, 퍼포먼스 등 공연을 선보일 수 있다. 일반 시민도 신청 절차를 거치면 예술무대를 이용할 수 있다. 예술무대가 설치된 역에 방문해 신청서를 접수하면 공사가 심사 후 승인 여부를 결정한다. 큰 소음이 발생하지 않고 시민들에게 불쾌감을 주지 않는 순수 공연이라면 가능하다. 예술무대는 2호선 선릉·사당역, 4호선 동대문문화역사공원역, 6호선 삼각지역·월드컵경기장역, 7호선 이수역·노원역 등 7곳에 설치돼 있다.

최정균 서울교통공사 사장직무대행은 “지하철은 이제 교통수단뿐만 아니라 일상에서 가장 가까이 문화와 예술을 누릴 수 있는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며 “서울 지하철은 올해도 서울시가 추진 중인 ‘문화예술철도’ 계획과 발맞춰 시민의 감성을 만족시킬 수 있는 새로운 공간으로 변모해 나갈 예정이다”고 말했다.

김재중 선임기자 j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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