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패스트트랙 정국을 거치면서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를 “다시 보게 됐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 ‘자유한국당과 협상이 되겠느냐’며 민주당 지지자들이 재촉할 때, 이 원내대표는 ‘답답하다’는 원성을 들으면서도 협상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렸다. ‘법안을 통과시킬 수 있을까’ 민주당에서도 고개를 갸웃하는 이가 나왔을 때, 이 원내대표는 선거법 개정안을 시작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검경 수사권 조정안까지 밀고 나갔다. 한국당은 ‘4+1 협의체’와 ‘쪼개기 국회’를 편법이라 몰아세웠지만 결국 민주당은 지난 13일 문재인정부의 핵심 개혁과제의 입법 절차를 마무리했다. 이를 계기로 ‘386세대의 맏형’이자 ‘리틀 김근태’로 불리던 이 원내대표의 리더십도 재평가받는 분위기다.

지난 17일 국회에서 만난 이 원내대표는 개혁 입법에 이어 총선 승리라는 과제를 놓고 고민하고 있었다. 그는 “다음 총선이 공정, 혁신, 미래라는 세 가치를 중심으로 치러지도록 제가 할 수 있는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5월 그의 원내대표 당선 일성은 “이해찬 대표를 모시고 강력한 통합을 이뤄 총선 승리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것이었다. 총선 승리를 위해 앞으로 당에 꼭 필요한 제 목소리를 내겠다는 뜻으로 들렸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국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이 원내대표는 총선 승리를 위해 해야 할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최종학 선임기자

-이번 총선의 시대적 의미는 무엇인가.

“앞서 세 차례의 총선, 대선, 지방선거 승리를 통해 권력 교체가 이뤄졌다. 이번 총선에서 민주당이 한 번 더 이긴다면, 권력 교체를 넘어 헤게모니(패권) 교체로 이어질 것이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선출된) 권력과 다르게 언론, 종교, 시장, 지식인 이런 부분에서 패권을 행사해온 세력이 있었다. 사회적인 패권의 재균형이 이뤄지면서 민주주의가 완성되고 새로운 사회로 가게 되리라 생각한다.”

-헤게모니 교체는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인가.

“예를 들면 보수 언론의 언론계 주도성, 그런 논지와 공방으로는 아젠다 세팅을 할 수 없고 안 먹힌다는 것이 알게 되지 않았나. 종교 부문에서는 지금 전광훈 목사가 광화문에서 (집회)하는데도 대다수 건전한 교회는 꼼짝하지 않는다. 극우화된 기독교와 온건한 기독교 간에 구분이 시작됐다. 그런 분들이 종교계를 대표할 수 없음이 확인될 것이다. 또 시장에서도 재벌의 일방적인 특혜를 기대하기 어려워지고 대기업들이 한일 경제전을 치르면서 우리 중소기업과 상생해야한다는 걸 자연스럽게 알게 됐다. 또 지식인들 사이에서 뉴라이트는 후퇴했다고 보여진다. 그런 과정을 통해 새로운 사회의 헤게모니 재편이 일어나면 민주주의의 새로운 차원으로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낙연 전 총리 왔다고 민주당이 새로워지나? 나도 꼰대로 보일 수 있는데…”

-총선에서 승리할 수 있을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있다.

“의원들과 만나 무얼 우려하는지 의견을 청취 중이다. 공정, 혁신, 미래라는 가치에 대해 ‘우리끼리 이렇게 보완한다’는 수준을 넘어서야 한다. 가령 이낙연 전 국무총리를 공동선대위원장으로 세우고, 지역별 대표선수를 앞세우는 것이 당의 입장에선 혁신이고 보완일지 몰라도 국민이 보기에도 충분히 새로워진 것으로 보일까. 심지어 이인영이 해도 국민 눈에는 ‘꼰대’로 보일 수 있지 않나. 선거를 현실적인 관성을 갖고 할지, 혁신의 가치를 갖고 할지 고민되는 지점이 있다. 공정이나 미래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중도층을 누가 잡느냐의 싸움이라는 지적이 많다.

“2020년 총선을 단순히 자유한국당을 심판할지, 문재인정부를 심판할지의 싸움으로만 가져갈 경우 과연 국민의 새로운 정치적 에너지를 폭발시킬 수 있을지 고민이다. 문 대통령을 사수해야 한다는 사람 30%, 그걸 죽어라 반대하는 사람 30%가 투표장에 나올 수 있지만, 그 중간의 40%는 어떻게 할 것인가. 총선이 공정, 혁신, 미래라는 가치 위주로 치러질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겠다.”

-중도층과 관련,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사태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조국 국면에서 국론이 분열된 건 사실이다. 대통령도 언급했듯 저 역시 집권당 원내대표로서 국민께 송구스럽다. 그 시점에 ‘선 임명 후 수습’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정국을 운영했다. 젊은 층의 실망 등 시중의 비판 여론을 몰라서 그랬던 건 아니다. 모든 국민의 공감을 얻는 건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견뎌내면서 검찰 개혁의 에너지를 가져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이해찬 당 대표와 의총장에서 상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이해찬 대표와의 호흡은.

“이해찬 대표와 이견 있었던 적이 거의 없다. 한 번 정도 있었나. 저는 조금 더 기다리면서 하자는 편이었고, 이 대표도 처음에는 이인영이 어떤 생각으로 그러지, 하다가 결과적으로 제가 하는 부분이 그래도 맞는 방향으로 일치하면서 지금까지 왔다. 총선 과정에서 제 역할 어디까지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누구를 배제하려는 마음만 없으면 함께 소통하면서 최선의 합의를 찾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386 용퇴론? 우리가 잘못하면 ‘나가라’ 하기 전에 먼저 떠날 것”

-386세대의 맏형으로서, 386 교체론에 대한 생각은.

“어떤 특정한 편향에서 ‘386세대가 한 게 뭐가 있냐, 내쫓아야 한다’는 해석과는 다르게 보고 있다. ‘나가라’ 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좀 잘해라’ 하는 시선도 있을 것이다. 우리 정치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문재인 대통령 때도 세대와 세대의 싸움이 아니라 세대 간 협력을 통해 국정을 운영해 왔다. 그렇게 선배들을 도와 왔고, 이제 비로소 우리가 직접 해보고 있다. 우리가 후배들에게 경쟁의 대상이지만 아직 후배 세대들과 협력하며 나아갈 대상으로 받아들여지면 더 좋겠다. 여기서 우리가 잘하면 후배들이 우리를 협력할 대상으로 볼 것이다. 내가 잘못하면, 나가라 하기 전에 내가 먼저 나갈 것이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 지난 17일 국회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종학 선임기자

-패스트트랙 충돌 과정은 본인에겐 어떤 시간이었나.

“전투의 시간에선 어찌 보면 성과도 있었지만, 민생 등 실제로 하고 싶은 건 시작도 못 했다. 지지자들에게 잘 싸웠다는 믿음을 줬고, 중간층에게는 어쨌든 뭔가를 매듭지었다는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후배들과 20·30세대에게 한국사회가 달라질 수 있는 변화, 미래를 위해 뭔가 잘했구나 하는 평가를 아직 받지 못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인터넷 고속망을 쫙 깔아서 후대의 먹거리를 만들어 준 것처럼 지금 전력을 다해서 디지털 경제로 과감하게 전환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다면 이인영과 과거에 있는 아이들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을 창조해나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줄 수 있었을텐데, 아직 그렇게 못하고 있다.”

-선거법과 관련 ‘4+1’ 협의체 안에서도, 또 한국당과의 협상도 쉽지 않았다. 매 고비마다 판단의 기준으로 삼은 것은 무엇인가.

“연동형 비례제도에 캡 씌우는 문제, 석패율 제도, 3% 진입장벽 등 마지막 세 가지 쟁점을 다룰 때도 이해관계로만 판단하지 않았다. 이해관계가 4라면 가치에 6을 뒀다. 연동형 캡과 관련, 20석을 고민했던 건 그래야 한국당이 위성 정당을 만들 명분도 없고, 만들더라도 어느 정도 방어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걸 정의당은 우리가 이해관계 때문에 그런다고 몰아세웠는데, 그건 정의당의 오판이다. 한국당의 위성 정당이 출현하면 제일 타격 받을 곳은 정의당이 될 것이다. 국민들이 당선될 사람과 표를 몰아줘야 할 정당 간에 지혜롭게 판단해주시리라 생각한다.”

-결국 민주당에서도 비례민주당을 만들 수밖에 없으리란 관측도 있다.

“우리가 하기 어렵다. 비례표를 사표화할 수 없으니 어느 시점에 어떤 선택을 해야할 지는 모르겠지만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갖는 취지, 즉 양당 중심의 극단적 대결 구도에서 유연하게 다당제 구도의 합의제 민주주의를 향해 가려 했던 것을 우리 스스로 부정하기는 쉽지 않다. 가치와 이익의 적절한 균형이라는 합리성을 잃어버리면 이기기도 어렵다. 우리 국민은 굉장히 현명하고 예리하다.”

“황교안 대표 통해 드러난 보수의 극우화, 한국 사회의 위험 요소”

-야당과 협상을 잘 못했다는 비판도 있다.

“시작할 때 나경원 전 원내대표와 합리적 보수와 유연한 진보가 공존을 통해 만들어내는 새로운 정치 문화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하지만 공안검사 출신의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보여준 경직성에 부딪혔다. 황 대표가 한 ‘무덤에 있어야 할 386 운동권 철학이 문재인정부의 당정청을 장악하고 있다’는 말에 자극받아 원내대표에 출마한 것도 있지만 보수가 극우화된 것에 대한 우려도 있었다. 정치 검찰이 출세를 위해 하는 것과 달리 황 대표의 경우 공안 특유의 맹신과 기독교 근본주의자들이 갖는 배타성이 결합돼 더 걱정이 됐다. 극우화된 보수는 민주주의의 위험요소가 될 수 있다.”

이인영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가운데)가 지난해 10월 23일 오신환 바른미래당 원내대표(왼쪽) , 나경원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오른쪽)와 국회 귀빈식당에서 만나 선거제 개혁안을 논의하는 모습. 연합뉴스

-비타협적이라는 그동안의 평가와 달리 그래도 끝까지 협상하려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물밑에서 여러 채널을 가동하고, 이해찬 대표도 정치협상회의에 나서면서 협상을 해보려 했다. 또 나경원 오신환 전 원내대표와 함께 미국에 3박4일 출장간 동안 대화를 해보려 했으나 황 대표가 삭발에 이어 단식까지 하면서 협상이 어려워졌다. 공직선거법 처리 과정에서 한국당을 제외하고 4+1로 가는 것에 대해 민주주의자로서 깊이 고민했다. 형식적으로는 못 이뤘지만 내용면에서는 80% 한국당과 합의를 이뤘다고 생각한다.
마지막 본회의 진행 과정에서 한국당이 의장석을 점거했지만, 민주당 의원들을 지난해 4월 패스트트랙 때와 같은 상황으로 내몰지 않겠다고 생각해 충돌을 피했다. 절차의 힘이었지, 물리력의 힘으로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결국 합의를 하지 못한 것은) 민주주의자로서의 제 삶에 상처가 됐으면 된 대로 제가 지고 가야 할 문제라 생각한다.”

-다음 정치 행보가 궁금하다.

“원내대표를 했으니 그 다음은 당 대표, 장관, 서울시장 등 이런 식의 관성적인 스펙을 따라 움직이는 욕망의 정치는 하지 않겠다. 정치 처음 시작할 때 마음속에 새겼던 몇 가지 금지조항 중 하나가 바로 욕망의 정치다.
총선이 끝난 뒤 우리 정치의 가치나 방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해보겠다. 미래를 대비해서 통일 대통령이 될 수 있을 후배를 키울지, 평화 시대에 빠른 도약을 이끄는 새로운 가치를 제시할지, 근본적으로 고민하겠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