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 반정부 시위대가 21일(현지시간) 수도 바그다드에서 경찰과 출동하는 과정에서 주요 고속도로에 불을 질렀다. AP연합뉴스

미·이란 갈등으로 잠시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이라크 반(反)정부 시위가 다시 격화하고 있다. 최근 이틀 동안에만 시위 과정에서 최소 10명이 숨졌다. 시위대는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 등 외세의 영향에서 독립되고 부패 없는 정부를 요구하며 시위를 이어갈 조짐이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21일(현지시간) 이라크고등인권위원회가 전날부터 발생한 반정부 시위로 최소 10명이 숨지고 159명이 부상을 입었다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위원회는 이라크 정부와 시민사회가 공동으로 구성했다. 사망자는 수도 바그다드를 비롯, 디얄라, 바스라, 카르발라 등 이라크 남부 시아파 거주지역에서 발생했으며, 경찰관 2명도 포함됐다.

시위대는 주요 도로와 공공기관을 봉쇄·점거했고, 군경은 시위대 해산에 나섰다. 당국이 최루탄과 고무탄을 발사하하자 시위대는 돌을 던지며 맞섰다. 다만 군경의 실탄 발사는 확인되지 않았다. 이라크 총리실은 “평화로운 의사 표현과 폭력 시위는 다르다”며 “학교를 막고 공공시설 점유를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라크 반정부 시위는 지난해 10월 경제난과 열악한 공공서비스, 정부의 부정부패 및 무능을 규탄하면서 촉발됐다. 시위 장기화로 아델 압둘 마흐디 총리가 지난해 12월 사퇴서를 의회에 제출했지만 의회 역시 기능이 마비돼 후임자를 구하지 못했다.

반정부 시위는 미국이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가셈 솔레이마니 전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표적사살하면서 소강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친이란 이라크 시아파 민병대의 보복 표적이 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하지만 정치권이 새 총리를 아직까지 임명하지 못하는 등 불안정한 정국이 이어지면서 지난 17일부터 시위가 거세지고 있다.

이라크가 미국과 이란의 대리전이 벌어진 전장이 되면서, 시위대는 외세의 영향으로부터 독립된 정부를 요구하고 있다. 또 정치 지도층의 부패 청산과 개혁을 촉구하고 있다. 시위대는 이를 위해 이라크 남부 지역의 주요 무역로를 봉쇄하고, 의약품 등 일부 필수품만 통과할 수 있도록 했다.

바스라의 한 의사이자 운동가인 알라 알 라카비는 FT에 기득권 정치인들을 지탱하고 있는 사업을 방해하기 위해 수도로 이어지는 유일한 항구를 봉쇄했다고 말했다. 그는 “항구가 봉쇄되면 부패한 이들에게 경제적 이익이 줄어들 것”이라며 “거물 무역상은 정부에 시위대의 요구를 들어주라고 압력을 가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FT는 시위가 이전보다 조직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전했다. 한 전문가는 “시위대에 지도자는 없지만 조정자가 있다”고 말했다. 이라크 운동가 무슈릭 알 후라이지는 지난 4개월간 시위가 오래된 운동가 네트워크와 연계된 조직위원회로 발전했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계획은 조직력을 높이고 압박을 계속 가하는 것”이라며 “그들(당국)은 활동가들을 살해하거나 일부 활동가를 매수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응집해야 한다”고 말했다.

알지자라는 이라크 국영방송을 인용, 바르함 살리흐 대통령이 이번 주 새로운 총리를 임명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순조로운 정권 이양은 어려울 것으로 내다봤다.

한편 반미 시아파 민병대가 오는 24일 ‘백만 대행진’에 지지자들을 동원하겠다고 공언함에 따라 더 많은 소요사태가 일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권중혁 기자 gre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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