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니 샌더스와 힐러리 클린턴

힐러리 클린턴 미국 전 국무장관이 2016년 대선 경선 당시 민주당 내 최대 경쟁자였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을 맹공격했다. 샌더스 의원의 “여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다”는 발언이 정치권 성차별 논란으로 확산되며 미 진보 진영을 흔들고 있는 모습이다. 올해 대선을 앞두고 샌더스로 대표되는 민주당 내 급진파에 대한 중도파의 견제로 읽히는 측면도 있다.

클린턴 전 장관은 21일(현지시간) 할리우드리포터가 공개한 인터뷰 기사에서 샌더스 의원이 경선 라이벌인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에게 ‘여성 승리 불가’ 발언을 했다는 논란에 대해 ‘반복돼온 패턴’이라고 평가했다. 샌더스 의원의 여성 혐오성 발언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라는 취지다. 그는 “그런 발언이 이번이 처음이었다면 괜찮다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샌더스는 2016년 경선 때 내게도 자격이 없다고 했었다”며 “나는 샌더스보다 더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일을 해냈지만 나에 대한 그의 공격은 그 정도 수준이었다”고 비난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이번 문제가 샌더스 개인 차원에 그치는 문제가 아니라며 그의 캠프와 열성 지지자들을 싸잡아 공격했다. 그는 여성 혐오 문화는 샌더스를 둘러싸고 있는 세력들의 특징이라며 “그들은 경쟁 후보들을 끈질기게 공격한다. 특히 여성 후보에 대해 그렇다”고 주장했다. 샌더스 진영 전체를 성 감수성이 낮은 집단으로 규정한 것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클린턴 발언의 숨은 의미는 분명하다. 샌더스가 성차별주의자라는 것이다”며 “샌더스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을 한 통속으로 묶으려는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클린턴 전 장관은 워런 의원에 대한 지원 사격도 잊지 않았다. 그는 “언론과 대중은 모든 주자들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해야 한다”며 “특히 샌더스캠프가 워런 의원을 인신 공격하며 뒤쫓고 있는 시점에선 더욱 그렇다”고 말했다. 샌더스 진영이 워런을 엘리트주의자로 폄훼하는 선거 캠페인을 해왔다는 의혹에 대한 지적이다.

2008년 대선 당시 버락 오바마 캠프에서 수석전략가로 일하며 오바마의 당선을 도운 데이비드 엑설로드는 뉴욕타임스(NYT)와의 인터뷰에서 클린턴의 발언에 대해 “2016년 경선 당시 일들과 관련해 여전히 샌더스에게 감정적 앙금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샌더스를 멈추게 하기 위해 필사적인 노력”이라고 평가했다.

민주당 후보 중 가장 급진적이라고 평가받는 샌더스의 공약으로는 트럼프를 꺾을 수 없다고 판단한 민주당 중도파가 견제에 나섰다는 평가도 나온다. 앞서 클린턴 전 장관은 올초 공개 예정인 자전적 다큐멘터리 ‘힐러리’에서 “아무도 샌더스를 좋아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와 일하길 원치 않는다”는 평가를 내놓은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이날 평가가 여전히 유효한 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이어 “(샌더스의 말은) 그저 모두 헛소리이며 사람들이 빨려 들어간다는 게 너무 안타깝다”며 샌더스의 급진적 공약들을 맹비난했다. 최근 중도층 공략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오바마 전 대통령도 샌더스 의원이 민주당 경선에서 앞서나갈 경우 그의 급진적 공약에 대해 반대 목소리를 내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논란의 당사자인 샌더스 의원은 기자들과 만나 “자 논란을 끝내자. 제 아내는 저를 좋아한다”고 응수했다. 이어 “클린턴은 자기 입장을 얘기할 수 있다. 하지만 내가 지금 해야 할 일은 트럼프 대통령 탄핵 심판에 집중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기득권 타파를 주장하는 샌더스 진영으로선 민주당 기득권층의 상징인 클린턴이 명백한 대립 구도를 만들어주는 것을 내심 반기고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형민 기자 gilel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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