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프로 무대에서 도벽 중심의 육식을 일삼은 ‘너구리’. 2차례 정규시즌과 이벤트전인 리프트 라이벌즈, 그리고 세계 e스포츠인의 축제 ‘LoL 월드 챔피언십(롤드컵)’을 경험한 ‘너구리’는 올해 돋보이는 눈썰미로 새 상상력을 펼칠 준비를 하고 있다. 28일 담원 게이밍의 탑라이너 ‘너구리’ 장하권을 만나 그의 특별한 계획을 들어봤다.

-오랜 만의 인터뷰다. 요즘 근황은
“‘2019 LoL KeSPA컵’에서 조기 탈락한 이후 마음을 가다듬었다. 열심히 연습 중이다. KeSPA컵을 앞두고 우리 팀에 대한 팬들의 기대가 컸던 거로 안다. 우리가 너무 못해서 졌다. 당연히 해야 할 플레이를 하지 않았다. ‘무슨 생각으로 경기에 임했나’ 싶을 정도였다. 정신 차려야겠더라.”

-아프리카와 샌드박스의 대회 결승전은 봤나
“‘기인’ 김기인의 영향력이 눈에 띄더라. 꼭 킬을 따내지 않더라도 상대에게 점멸 사용을 강요해 주도권을 가져가고, 깔끔한 타이밍에 로밍을 갔다. 바텀 순간이동 같은 팀플레이도 호흡이 잘 맞았다. 김기인이 상황을 잘 만든 것도 있지만, 팀원 간 합이 돋보였다. 아프리카는 멤버가 많이 바뀌었는데도 팀워크가 좋아 놀라웠다.”

-LCK 무대에 오른 뒤 1년을 보냈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건 롤드컵이다. 시즌 시작 당시엔 우리 팀의 기복이 크다고 생각해 꿈도 안 꿨던 무대다. 플레이오프 진출이 현실적 목표였는데 운이 따라줘 롤드컵까지 나갔다. 커리어만 놓고 보면 성공적이었던 한 해다. 그렇지만 아쉬움도 크게 남았다. ‘더 많은 걸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롤드컵 8강 G2전 패배요인은 무엇이었나
“G2의 빠른 바텀 다이브 등 변칙적인 플레이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게 패인이다. 유럽에 가고 난 뒤 솔로 랭크에서 고승률을 기록해 자신감이 많이 붙은 상황이었다. 스크림에서도 꽤 괜찮은 성적을 냈다. 그 기량을 대회에서 보여줄 수 있었다면 좋았을 텐데 그러지 못했다.
우리 팀에는 선봉장 역할을 할 선수가 없다는 걸 체감했다. 우리는 게임 내에서 최종 결정을 내릴 때 모두의 의견을 모으는 편이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간에 누군가는 ‘이걸 하자’고 말해줄 수 있어야 했다. 요즘은 그런 부분을 발전시켜나가려고 하고 있다.”

지난해 롤드컵 당시 경기를 준비 중인 장하권. 라이엇 게임즈 제공

-G2와의 스크림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뒀다고 들었다
“확실히 우리 성적이 좋았던 거로 기억한다. 실전에선 우리가 두들겨 맞았지만. G2가 스크림에서 제 실력을 발휘하지 않은 건가 싶기도 하다. 스크림 데이터를 토대로 전략을 짠 건가 하는 생각도 해봤다. 결국엔 우리 대처가 미흡했다. G2의 변칙적인 다이브에 당하지 않았다면 좋았을 텐데.
G2는 자신들 차례가 오면 굉장히 과감하게 플레이하는 스타일이었다. 요즘엔 그런 게 멋있더라. 우리 목표도 그런 거다. G2하면 ‘무섭다’ ‘과감하다’하는 확실한 색깔이 있다. 우리도 스타일은 다르겠지만 담원하면 바로 떠오르는 색깔을 만들고 싶다.”

-이번 스프링 시즌은 10.2패치로 진행된다
“가장 큰 변화는 세트의 등장인데 신규 챔피언이니 한동안은 글로벌 밴이지 않을까. 현재 버전에서는 세트가 정말 강력하다. 아마 필밴 카드가 될 것이다. 대회가 열린 지 오래돼 메타 변화를 명확하게 읽기는 어렵다. 탑은 국밥처럼 든든한 챔피언들이 많이 나올 것 같다. 오른이나 모데카이저, 아트록스 등이 득세하지 않을까.”

-육식을 선호하는 너구리로선 달갑지 않겠다
“저는 공격적인 플레이를 선호하지만, 팀과의 호흡도 중요하게 생각한다. 저만 공격적이면 말 그대로 저만 죽는 거다. 이번 시즌에는 팀원과 호흡을 잘 맞추는 데 초점을 두려고 한다. 공격성은 유지하되 팀 상황이 여의치 않다면 가끔은 방패도 드는 유연한 탑라이너가 되고 싶다.”

-요즘에도 연구 중인 아이템이나 룬이 있나
“최근에는 ‘마법의 신발’ 룬을 무조건 사용하고 있다. 늘 그렇지만 룬은 라인전을 보고 찍느냐, 후반 게임 보고 찍느냐다. 예전에 ‘도벽’ 룬이 있었을 땐 30판 중 20판은 생각 없이 도벽을 들면 됐는데. (웃음) 최근엔 블라디미르 룬을 연구 중이다.”

-도벽하면 너구리였다. 롤드컵에서 ‘더샤이’ 강승록 상대로 210원을 얻어낸 건 꽤 화제였다
“도벽 룬이 생각보다 빨리 없어졌다. 아쉽긴 하지만 워낙 불합리한 룬이었다. 무작위성도 강했다. 강승록 상대로 210원을 얻어낸 건 말 그대로 운이 좋았던 거다. 앞서 롤드컵에서 운이 좋았다고 말한 게 그런 이유 때문이다.”

-이전에 강승록을 롤 모델로 삼고 있다고 했는데
“요즘도 강승록의 개인방송을 재미있게 보고 있다. ‘킬각’ 계산 같은 순간적인 판단이 굉장히 날카롭더라. 거리조절도 굉장히 잘하고. 원거리 딜러를 했어도 잘했을 것 같다. 롤드컵에서 2번 만났는데 제가 많이 말렸다. 다시 만난다면 반드시 이겨야 할 상대다.”

-국내에서도 특별히 눈여겨보는 선수가 있나
“선수 개인보다는 아프리카 프릭스가 인상 깊었다. 팀이 한 몸처럼 잘 움직이더라. 탑라이너도 워낙 잘하고. 눈여겨보는 선수는 ‘도란’ 최현준이다. 선수가 힘이 세다는 느낌도 받았는데, 팀하고 잘 어우러져 상대하기가 까다로웠다. 개인적으로 팀과의 조화에 관심이 부쩍 늘었다.”

-담원은 지난겨울 동안 선수단을 개편하지 않은 유일한 팀이다
“선수들이 올해도 함께 간다는 건 긍정적으로 본다. 냉정하게 생각하면 스프링 시즌엔 이게 장점으로 발휘돼야 한다. 리빌딩을 거친 팀보다 잘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건 사실이다. 올해는 대회에서도 스크림처럼 과감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반면 코치진은 바뀌었다. 김정수 코치가 T1으로 가고, 이재민 코치가 담원으로 왔다
“두 분 다 뛰어나신 코치님이다. 김 코치님은 인 게임 콜 같은 것을 많이 가르쳐주셨다. 이 코치님은 스킬샷처럼 디테일한 것들을 얘기해주시는 편이다. 강태수 코치님은 선수들에게 형처럼 친근한 존재다. 새로 오신 양대인 코치님은 긍정 에너지가 넘친다. 아침에 먼저 일어나 조깅을 하시거나, 책을 읽으시는 게 인상적이었다.”


-마침 개막전에서 T1과 대결한다
“대진을 추첨으로 짜는 게 맞는지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웃음) 이겨서 이 코치님의 기를 살려드리고 싶다. 탑라이너로 ‘로치’ 김강희와 ‘칸나’ 김창동 중 누가 나오든 간에 제가 이겨야 한다. 제가 이기면 팀도 이길 것 같다.”

-올 시즌은 ‘스크림도르’가 없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전력이 팽팽하다고 하더라
“개인적으론 지금 유독 센 팀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팀과 맞붙어본 건 아니지만 드래곤X(DRX)가 정말 까다로웠다. 작년까지는 우리가 그리핀에게 유독 약하지 않았나. 그리핀 구성원들이 DRX로 갔는데 그들이 우리의 ‘카운터’인가 싶기도 하다. 나머지 팀들의 기량은 대등하다. 젠지는 확실히 개인 퍼포먼스가 좋다. ‘비디디’ 곽보성과 ‘룰러’ 박재혁이 정말 잘한다.”

-차기 시즌 활약을 기대하는 팀 동료를 하나 뽑는다면
“‘쇼메이커’ 허수는 이미 잘하고 있어 ‘기대’라는 단어에 걸맞지 않은 것 같다. 기대하는 선수는 ‘캐니언’ 김건부다. 이 선수는 메카닉이 굉장히 좋다. 리 신 하는 거 보면 ‘Q, 평, 티아맷, 평, R, Q’인지 뭔지 아무튼 이상한 거 잘한다. 호흡도 잘 맞는 선수이고, 판단력도 뛰어나다. 실제 성격도 곰 같아서 귀엽다.”

-올해 너구리의 목표는 무엇인가
“올해 목표는 크게 잡으려 한다. 스프링 시즌이든 서머 시즌이든 LCK를 우승하고, 롤드컵에 가고 싶다. 더불어 깔끔한 경기력을 선보이고 싶다. 실력 이상을 보여드릴 순 없겠지만, 적어도 연습한 것만큼은 보여드리고 싶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
윤민섭 기자 fla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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