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이 유럽연합(EU)을 탈퇴한 가운데 스위스에서 오는 5월 EU와 관계 재설정을 위한 국민투표가 열린다. ‘스위스판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라는 평가 속에서 국민투표 결과가 스위스 및 EU에 미칠 여파를 둘러싸고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스위스는 오는 5월 17일 EU 시민권자의 이민을 제한하는 헌법 개정안을 국민 투표에 부친다고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마침 이 날은 영국이 브렉시트를 단행한 날이다. 헌법 개정안에는 스위스 정부가 EU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적으로 EU 시민권자의 이민에 상한을 두고 할당제를 도입하는 내용이 담겼다. 만일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 스위스 정부는 지난 1999년 EU와 맺은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에 관한 협정을 끝내기 위해 향후 1년간 협상해야 한다.

스위스는 유럽 한복판에 있지만 EU 회원국이 아니다. 하지만 여러 양자 협정 및 조약을 통해 사실상 EU 회원국의 지위를 누리고 있다. 이번 개정안은 스위스의 제1당이자 우파 포퓰리스트 정당인 스위스국민당(SVP)이 국민 10만 명에게 서명을 받아 발의한 것이다. SVP는 이민을 통제하지 않으면 사회기반시설과 환경에 대한 압박이 강해지고 고용주가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저렴한 외국인 노동자를 고용하게 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에 대해 스위스 정부는 반대 입장을 취하고 있다. 카린 켈러-주터 스위스 법무장관은 11일 현지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번 개정안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면서 스위스와 EU의 관계에 심각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면서 “EU 시민권자의 자유로운 이동을 거부하는 것은 EU와 스위스 협정의 근간인 솅겐 조약 및 더블린 조약의 탈퇴를 의미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솅겐 조약은 가입국 내에서는 출입국 절차를 대폭 간소화하기로 한 조약이며, 더블린 조약은 유럽으로 들어오는 난민은 처음 발을 디딘 국가에서 망명 신청을 하도록 한 조약이다.

켈러-주터 장관은 “스위스는 EU와 농업부터 산업 표준까지 정치·경제적으로 120개의 양자 협정을 맺고 있는데, 만일 이민을 제한할 경우 이 협정들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면서 “나아가 이들 양자 협정마저 폐기되면 EU 시장에 크게 의존하는 스위스 수출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국민투표 순전히 도박이고 무책임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스위스에서는 지난 2014년에도 EU 시민권자의 이민에 상한을 두는 법안을 놓고 국민투표를 한 번 진행한 바 있다. 당시 EU는 노동의 자유로운 이동이라는 대원칙에 반한다며 반발했지만 국민투표 결과 찬성이 절반을 넘었다. 이에 고심하던 스위스 정부는 이미 상한제 대신 자국민에게 먼저 일자리를 보장한다는 절충안으로 타협했다. 하지만 이번에 비슷한 내용의 헌법 개정안이 다시 올라오면서 스위스 정부의 고민이 깊어질 것으로 보인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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