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만 폴란스키 감독. AFP=연합뉴스


다수 성범죄 전력이 있는 프랑스 원로 영화감독 로만 폴란스키(86)의 최신작 ‘장교와 스파이’가 ‘프랑스의 오스카’로 불리는 세자르 영화상에서 최다 부문 수상 후보로 지명되면서 영화인들의 반발이 거세지자 세자르상 의원진이 총사퇴를 결의했다.

세자르상을 주관하는 프랑스영화예술아카데미 영화진흥위원회(APC) 소속 21명 위원진이 13일(현지시간) “지난해 영화를 제작한 모든 이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안정을 되찾고 영화제를 축하하기 위해 만장일치로 사임을 결정했다”고 밝혔다는 소식을 AFP통신이 보도했다. 이들은 이번 결정을 통해 완전한 쇄신이 가능해질 것이라면서도 새 의원진을 선출하기 위한 총회는 세자르상 시상식 이후에 열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위원진의 이례적인 총사퇴 결정은 전날 200여명의 배우와 제작자, 감독 등 영화계 인사들이 영화예술아카데미를 상대로 근본적 개혁을 요구하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면서 이뤄졌다. 영화계 인사들은 영화예술아카데미의 기능이 온전하지 못하며, 이들의 후보 선정과 관련한 해명도 이해하기 어렵다고 비판했다. 조직 규정 또한 오래도록 바뀌지 않았으며, 약 5000명의 회원이 상부의 결정에 대한 투표권이나 발언권도 얻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앞서 폴란스키 감독은 장교와 스파이로 오는 28일 열릴 제45회 세자르상에서 작품상 감독상 각색상 등 12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됐다. 19세기 프랑스군의 유대계 장교 알프레드 드레퓌스가 독일 스파이라는 누명을 쓰고 투옥된 ‘드레퓌스 사건’을 다룬 역사물이다. 폴란스키 감독은 1977년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13세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를 인정했지만, 범죄인정 조건부 감형 협상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 않자 이듬해 미국을 떠나 지금도 도피 중이다. 스위스에서도 또 다른 성폭행 혐의로 피소됐다가 공소시효 만료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으며, 아카데미(오스카)상을 주관하는 미 영화예술과학아카데미(AMPAS)는 2018년 그를 영구제명했다.

여기에 이번 장교와 스파이 현지 개봉 직전 폴란스키 감독의 성범죄 의혹이 추가로 불거지면서 여성단체들을 중심으로 보이콧 운동이 일기도 했다. 사진작가 발랑틴 모니에가 지난해 11월 일간 르 파리지앵과의 인터뷰에서 “10세 때 폴란스키 감독에게 성폭행을 당했다”며 “프랑스 예술인과 지식인들이 무조건 폴란스키를 옹호해 왔다”고 폭로했다. 그럼에도 영화예술아카데미의 알랭 테르지앙 회장은 “후보 선정에 윤리적 선입견을 가져서는 안 된다”며 “이미 150만명의 프랑스 관객이 이 영화를 봤다. 그들에게 물어보라”고 말해 거센 비난 여론이 일었다. 마를렌 시아파 양성평등 담당 국무장관도 방송에서 “프랑스 영화계는 성폭력과 희생자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한편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세자르상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미국·감독 쿠엔틴 타란티노) ‘조커’(미국·토드 필립스) ‘페인 앤 글로리’(스페인·페드로 알모도바르) 등 쟁쟁한 경쟁작과 함께 외국어영화상 후보에 지명됐다. 기생충이 상을 받으면 지난해 일본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 이어 2년 연속으로 아시아 감독 작품이 프랑스 양대 영화제인 칸과 세자르에서 각각 최고상과 외국어영화상을 석권하게 된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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