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은 처음이라 다르다. ‘역대 최악’ 소리를 듣는 20대 국회지만, 그들도 처음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을 땐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쳤을 것이다. 그랬던 이들이 ‘배지’를 달더니 싹 달라졌다. 4·15 총선판에 뛰어든 ‘초보 정치인’들의 초심은 또 어떻게 변할까. ‘선거는 처음이라’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처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남의 선거만 뛰던 윤건영, 드디어 출전하다

‘대통령의 남자’로 불리는 윤건영 서울 구로을 민주당 예비후보. 그는 지난달 5일까지 대한민국 권력의 최상층부이자, 수많은 정보를 수집해 중대 결정을 내리는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에 있었다. ‘청와대에 머물까, 선거에 나설까. 내가 어디에 서 있는 게 맞을까.’ 마지막까지 고민하던 그는 촛불을 생각하며 마음을 굳혔다고 했다. ‘국회를 통해 촛불혁명을 완성하는 게 문재인정부가 성공하는 길이다.’ 대놓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아빠가 힘들까 봐 싫다”는 중3 딸과 아내만 말렸다. 6일 사표가 처리됐다. 2017년 5월 10일 문재인 대통령 당선 다음날부터 출근했던 청와대를 972일 만에 떠났다.

윤건영 예비후보가 지난 18일 서울 구로구 선거캠프에서 자신의 홍보입간판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김지훈 기자

지난달 31일 서울 구로구의 한 건물 6층에 선거 캠프를 열고, 선거운동을 시작했다. 새벽부터 종일 구로구 곳곳의 시장과 골목을 누빈다. 지난 18일 선거 캠프에서 만나 20여일 남짓 선거운동을 한 소감과 예상과 다른 점이 있냐고 물었다.
“공직자 모드에서 출마자 모드로 바꾸려니, 며칠간 어색했는데 곧바로 적응됐다. 처음엔 멋모르고 네일숍, 마사지숍에 들어갔는데 (손님들과 마주치니 서로 민망해서) 이제 그런 곳은 안 들어간다. (웃음) 예상과 다른 점은, 일단 육체적으로 몸이 잘 안 따라준다. 축구 경기를 할 때 보면 저걸 이렇게 드리블하면 넣을 것 같은데 두 발짝을 못 뛰잖나. 날밤을 새워서라도 열심히 하고 싶은데(웃음).”

청와대가 아니라 구로의 시장과 길바닥에서 들은 민심은 다르지 않을까.
“실제 민심의 내용은 청와대에서 봤을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 서민들 경제가 어려운 걸 청와대가 왜 모르겠나. 다만 글이나 (신문) 활자, SNS로 보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날 것 그대로를 받다 보니 체감되는 점이 확 다르다. 그런 점에서 정당이 (민심을 체감하는 게 청와대보다) 좀 더 빠를 수 있다.”

‘크레믈린’ 윤건영, 입이 열리다

문 대통령을 도와서 대선을 두 번이나 치렀지만, 자신의 국회의원 선거는 처음이다. 대선 후보를 수행하며 공보 업무를 담당할 때, 그는 ‘크레믈린’으로 불렸다. 말이 거의 없었고, 스킨십도 잘 하지 않아 붙은 별명이었다. 윤 예비후보는 “그때는 조심스러워서, 딱 정해진 답변만 할 수 있었다”고 했다.

참모로 수행할 때와 달리 이번 선거는 후보자로 대중 앞에 나서야 한다. 그는 과거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오그라드는 사진 포즈 요청에 순순히 응했다. 민감한 현안 관련 질문에도 주저함 없이 답을 내놨다. 아무리 물어도 속 시원한 소리 한마디 안 해주던, 참모 시절과는 확실히 달랐다. 청와대에선 늘 굳어있던 하얀 얼굴에 어느새 웃음기가 많이 배었다. 하지만 부드럽고 온화하던 그의 얼굴은 보수 대통합 이야기가 나오자 그새 굳었다. 특히 야당의 꼼수 비례당을 비판하는 대목에선 목소리 톤이 달라졌다.

“반성해야 하는데, 보수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숨어버리고 있다. 심지어 꼼수 비례당까지 만드는 건 정치를 희극화, 희화화시키는 거다.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이라는) 선거법 개정의 취지가 사라져버린 것 같다. 소수 야당, 표의 등가성 등에 대한 문제의식은 사라지고 꼼수만 남았다. 원칙이 꼼수한테 진다? 이래선 안 된다. 극단의 선택까지도 당에서 고려해야 한다. (비례민주당을 만들자는 것인가?) 보수가 꼼수 정당을 만들었는데, 진보는 가만히 앉아서 당할 건가. 민주당만의 문제가 아니라 범진보 진영이 정당의 형태든, 연대의 형태든 간에 모든 가능성을 다 열어놓고 생각해야 한다.”

그는 “원래 불협화음이 많고 갈등과 이견이 많은 게 여당인데, 공천 과정에서 이 정도로 해 오고 있는 건 지도부의 엄청난 공”이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도 “다만 국민이 볼 때 선거는 절박한 쪽이 이긴다. 국민은 매의 눈으로 어느 쪽이 절박한지 따져본다”며 “과연 우리 민주당이 절박하게 보이느냐는 것에 대해선 당이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했다.

“대통령이랑 친하시죠” vs “청와대에 있지, 왜 나왔어”

그간 대통령 수행 등을 하며 자연스레 학습했던 덕인지, 사람을 만나 인사를 하고 명함을 나눠주는 모습이 자연스러워 보였다. 명함을 줄 때는 문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이 실린 면 대신 ‘믿는다 윤건영’이라는 캐치프레이즈와 독사진이 있는 면이 잘 보이도록 건넨다. 유권자들은 그를 잘 알아볼까.

윤건영 예비후보가 지난 18일 구로구의 한 상점에 들어가 상인에게 명함을 건네고 있다. 김지훈 기자

“언론에 나오고 했다며 알아보는 분들도 있고, 명함을 받아 이름을 본 뒤 ‘아, 당신이야’ 하는 분들도 있다. 첫 선거이다 보니 유권자에게 하얀 도화지와 같다.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보고 그런 장점은 있는데, 정치 신인이라 유리하지는 않다. 인지도도 떨어지고, 그 도화지를 어떻게 채울 거냐도 고민이다.”

그를 만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문 대통령을 자주 언급했다. “청와대에서 문 대통령이랑 (일을) 같이 했다면서? 동네에서 보니까 생각보다 친근감 있네. 안 그렇게 보였는데.” 구로시장의 한 간판업체 주인이 그에게 툭 던진 말이다. 부동산 중개업소에서 만난 구민은 “대통령과 친하시니까 부동산 문제를 좀 해결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40%대의 대통령 국정 운영 지지도가 말해주듯, 늘 호의적인 반응만 있진 않다.

“와서 선물 주시고 제 팬이라고 하는 분도 있지만, ‘청와대에 있지 왜 나왔어’ 하며 비꼬는 분도 있다. 극과 극 편차가 심하다. 특히 그 과정에서 세대 갈등을 뼈저리게 느낀다. 50대까지는 그래도 긍정적인 반응이 오는데, 60대 이상 노년층들은 정말 (나에 대한 시선이) 안 좋다. 그런 세대 갈등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

“문재인에게 배운 정치란,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

이날 그는 새벽 4시30분 남구로역 5번 출구, 도림로를 따라 늘어선 인력시장을 찾았다. 중국어가 유창한 자율방범대원들과 함께 다니며 일자리를 찾으러 나온 중국 동포들에게 중국어로 쓰인 코로나19 예방 전단지와 마스크를 나누어 줬다. 한 명 한 명에게 “읽어보시고 코로나 증상 있으면 신고해주세요”라며 고개를 숙였다. 이곳은 2012년 문 대통령이 대선 첫 일정을 시작했던 곳이다. 그는 “알고 있죠, 기억하고 있다”고 했다.

윤건영 예비후보가 지난 18일 새벽 서울 구로구 인력시장에서 코로나19 예방 전단지를 나눠주고있다. 윤건영 선거캠프 제공

그에게 문 대통령은 ‘영원한 대장’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했던 그는 두 명의 대통령으로부터 정치를 배웠다. 정치 입문자 입장에서 정치가 무엇인 것 같으냐고 묻자 그는 “질문이 거시기한데” 하며 멋쩍게 웃었다. 특유의 진지한 표정으로 답을 내놨다.

“정치는 잘 듣고 잘 대변해서 국민의 마음을 얻는 것이다. 다녀보니 정치혐오, 정치에 대한 비난이 심하다. 이 부분에 대해 스스로 반성도 많이 하고 있다. 문 대통령이 늘 하시는 말씀이 과거 관행을, 관습을, 판례를 깨라는 것이다. 세종시 관료들은 항상 과거 판례와 전례를 따지는데 세종시 문법을 깨야 한다. 반대로 여의도 문법은 늘 정치 공학을 따진다. 여의도 공학이 아니라 국민 눈높이에 맞춰 ‘국민 문법’을 따르면, 정치는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이날 그를 만난 구민 중 여럿이 “제발 좀 싸우지 마세요”라고 당부했다. 여야가 20대 국회 내내 진절머리나게 싸웠던 탓에 국민은 어느 때보다 상생과 타협의 정치를 바라는 상황이다. 방법이 있을까.

“큰 틀에서 보면 개헌, 그리고 정치 문화가 바뀌어야 한다. 선거를 앞두고는 무엇보다 국민이 심판을 해줘야 한다. 국민 보시기엔 모든 게 잘못된 거로 보이실 거다. 초록은 동색이라고 구별이 안 된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잘한, 최소한 더 잘못한 곳이 어딘지 가려주셔야 한다. 그걸 가리지 않고 정치권을 싸잡아 묶어버리면 그 고통은 대한민국 전체에게로 돌아간다. 그런 점에서 이번 선거에선 준엄한 심판이 필요하다.”

국회의원 당선이 되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을 물었다. 그는 “국회의원을 잘하기 위한 준비가 완벽하다고 보지 않기 때문에 의원으로 잘할 준비를 하겠다”며 “경제 민생과 관련해 답을 찾는 일을 당장 하고 싶다”고 말했다. 청와대를 떠난 ‘문재인의 복심’은 과연 국회에서 민생 관련 답 찾기를 시작할 수 있을까. 구로을 유권자의 선택에 달려있다.




김나래 박재현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nara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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