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 20일 청와대 오찬에 참석한 뒤 곧바로 인터뷰에 응한 그는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일상적인 대화들을 나눴다. 코스 메뉴 중 하나로 파를 듬뿍 넣은 짜파구리가 나왔는데, 지금껏 먹어본 짜파구리 중 가장 맛있었다”고 전했다.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아카데미(오스카) 막판 레이스를 위해 미국에 도착한 건 지난 1월 2일. 가는 곳마다 반응이 예사롭지 않았다. 많은 현지 영화인들이 ‘기생충’ 팀을 찾아와 환호하고 악수를 청했다. 당시엔 ‘이게 뭐지?’ 얼떨떨했다. 그렇게 맞이한 시상식. 내내 손에 땀을 쥐며 앉아있었다. 이윽고 감독상까지 수상하는 순간, 생각했다. ‘아, 이제 작품상이구나.’

오스카 작품상을 거머쥔 최초의 유색인종 여성 제작자. 영화 ‘기생충’의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는 영광의 기억들을 생생히 돌이켰다. 20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작품상까지도 가능하겠구나 예상했지만 막상 호명되니 머릿속이 하얘지더라”면서 “칸 황금종려상 때도 그랬지만, 개인이 겪기에 너무 ‘센’ 경험을 했더니 아직도 정리가 잘 되지 않는다”고 웃었다.

작품상 수상 당시 곽 대표는 인상적인 소감을 남겼다. “지금 이 순간 굉장히 의미 있고 상징적이며 시의적절한 역사가 쓰였다”고. 이에 대해 그는 “모든 면에서 역사가 뒤집힌 게 아닌가. 넓게는 비영어 영화들, 좁게는 아시아를 비롯한 미국 이외의 지역에서 활동하는 영화인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리라 생각한다. 용기 있게 변화를 택한 아카데미 회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고 첨언했다.

6개월간 이어진 오스카 레이스는 만만치 않았다. 곽 대표는 “시차나 음식, 집을 떠나있는 고단함 등이 누적돼 체력적으로 무리가 왔다. 봉준호 감독과 송강호 배우는 컨디션 난조를 겪어 점점 혈색이 안 좋아지더라. 옆에서 보면 위태위태할 정도였다”면서 “그럼에도 팀 내 분위기는 점점 좋아졌다. 어딜 가나 ‘애정 뿜뿜’ 하는 눈빛들이 쏟아졌기 때문”이라고 회상했다.

제92회 아카데미(오스카) 시상식 당시 봉준호 감독, 배우 송강호 이선균 조여정 최우식 이정은 장혜진 박명훈 등과 함께 트로피를 들고 기념촬영을 한 영화 ‘기생충’ 제작사 바른손이앤에이의 곽신애 대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매일의 일을 기록하는 곽 대표의 다이어리에는 빼곡한 글씨와 함께 별 스티커들이 곳곳에 붙여있다. 수상 때마다 표시를 해놓은 것이다. 내부적으로 아카데미 주요 상 가능성을 거론하기 시작한 건 미국배우조합상(SAG) 앙상블상부터였다. 아카데미 투표권을 가장 많이 가진 조합이기 때문. 현지 관계자들은 난리가 났었단다. ‘오 마이 갓. 지금부터 완전히 다른 흐름이 시작된다.’

돌이켜보면 봉 감독과의 만남은 “호박이 넝쿨째 들어온 순간”이었다. 곽 대표는 “봉 감독이 ‘기생충’은 다른 작품들과 달리 후회 없이 찍었다고 말한 적이 있다. 그만큼 편하게 작업했다는 것이다. 제작자에겐 최고의 칭찬”이라고 뿌듯해했다. 봉 감독의 다음 작품도 함께할 계획이 있느냐는 질문에는 “할 듯 말 듯 서로 ‘썸’ 타고 있는 느낌이다. 하게 되리라 기대하고 있다”고 답했다.

봉 감독이 전날 기자회견에서 언급한 ‘메인 스트림과 독립영화의 경계’에 대한 고민은 곽 대표 또한 안고 있다. “저는 원래 독립영화와 상업영화의 경계에 있는, 자기 색깔이 선명한 감독들을 좋아해요. 그런 이들이 궁핍하지 않게 일할 수 있도록 서포트하고 싶습니다.” 곽 대표는 “업계에서 30년간 버텨온 화답을 한꺼번에 받은 것 같다. 앞으로도 하던 대로 해나갈 것”이라고 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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