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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번방 추적기②]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n번방에 잠입하다 ② “너였구나” 가해자 찾아낸 현직 교사

1회.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2회. “신검 받는 중ㅋ” 자기 덫에 걸린 놈
3회.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OOO 선생님 되시나요? 놀라지 말고 들어주세요”

성 착취 피해 사실을 알리는 것은 늘 고통스러웠다. 당신의 사진이 불법유포됐고, 남성 수천명이 그걸 보며 히죽거리고 있다는 말은 쉽게 떨어지지 않았다. 그래도 알려야 했다. 텔레그램 채팅방에 당신의 신상정보가 공개됐고, 범인은 당신의 지인일 거라고. 최대한 담담하게 이 말을 전하려고 애썼다.


지난해 10월은 ‘여교사방’이 활발하던 시기였다. 누군가 지인의 사진을 올리면 방장이 나체사진과 합성해 뿌렸고 이를 보고 너도 나도 희롱했다. 피해자를 주인공으로 모욕적인 소설을 쓰며 신나게 떠들어댔다. 신상공개는 당연했다. 일명 ‘지인능욕방’이다.

처음에는 단순 합성사진이니 충격이 덜할 거라고 생각했다. 다른 방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위가 낮을 거라는 기대(?)도 있었다. 방에 들어간 지 몇 분 만에 구역질이 났다. 불법촬영도 아니고 협박도 없었지만 유독 살 떨렸다. 희롱 대상이 생면부지 여성이 아닌 지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친구를, 동생을, 아내를 모욕하며 유독 더 흥분했다. 이 사람들이 정말 평범한 남편이고 아버지이고 아들인걸까. 웃고 먹고 살아가는 우리 이웃일까. 내가 알던 세상이 무너져내리는 기분이었다.

이 무렵 유독 심한 피해를 입은 현직 교사 A씨의 연락처를 확보했다. 방장이 직접 A씨의 사진을 대량으로 뿌리고 있었다. 여러 경로로 접촉을 시도했지만 연락이 닿지 않았다. 남은 정보는 학교뿐. 학교에 전화를 걸어도 될까? 소문이 나진 않을까? 동료 선생님이 범인이면 어쩌지? 범인이 전화를 받으면? 한참을 고민하다 번호를 눌렀다. 다행히 A씨와 통화가 됐다.

사태를 설명했다. 합성 사진 일부를 보내주며 원본을 어디에 올렸는지 확인했다. A씨는 의아해했다.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었는데 자신의 계정은 비공개이고 소수의 지인만 볼 수 있도록 열어뒀다는 것이다. 지인을 희롱하는 방이었느니 가해자가 지인인 것은 당연했다. 혹시 모르는 사람이 ‘팔로우’ 신청을 했는데 ‘수락’을 눌렀을 가능성은 없는지 확인해달라고 했지만 A씨는 단호하게 아니라고 했다. A씨의 팔로어는 소수였다.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인스타그램은 특정 팔로어에게만 사진을 공개하는 기능이 있다. 사진 공개 범위를 점점 좁혀 나가며 추적을 시작했다. 방에는 A씨의 고등학교 졸업사진까지 유포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동창이거나 동창을 통해 알게 된 남성을 용의자로 특정했다. 먼저 몇 명만 볼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재수정해 사진을 올렸다. 곧바로 지인능욕방에 유포됐다. 다시 팔로어 그룹을 나눈 뒤 특정 그룹에만 새로운 사진을 공개했다. 추적 나흘 째. 이제 두 명 남았다. 한 명만 볼 수 있도록 공개 범위를 설정해 사진 한 장을 올렸다. 곧 텔레그램 방 알람이 떴다. “너였구나.”

범인은 A씨와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함께 나온 동창이었다. 경찰은 그의 휴대전화에서 합성사진 수십장을 확인했다. 경찰은 1월 그를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위반(명예훼손과 음란물 유포)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잡을 수 있다…‘래빗’ 몰던 날

아동 성착취물만 취급하던 일명 ‘래빗’은 과시욕에 꼬리가 밟혔다. n번방에는 다소 늦게 진입했던 그는 남다른 활동 강도로 이례적으로 빠르게 방장 자리에 올랐다. 래빗은 주로 해외 사이트에서 얻은 아동 영상물을 공유했고 삽시간에 탄탄한 마니아층을 형성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그에 대해 알려진 정보는 지방 국립대를 다니는 20대 초반 남성이라는 것뿐이었다.

그가 운영하는 방은 개인 SNS나 다름없었다.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올리며 관전자들의 신임을 샀다. 오늘은 누굴 만났고, 무엇을 먹었으며, 어디를 다녀왔는지까지 사진으로 인증했다. 어느 날 래빗은 ‘신검(신체검사)를 받으러 왔다’는 글과 함께 사진 한 장을 올렸다. 신체검사장 가는 길로 추정되는 지하철 역 풍경을 촬영한 것이었다. 20대 초반이라고 했으니 군대에 갈 시기였다. 사진을 자세히 들여다보니 지하철 역 이름이 보였다. 일단 메모했다. 잡을 수 있을까.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조금만 더 단서가 나오면 래빗의 꼬리에 손이 닿을 것 같았다.

'래빗'이 운영하던 채팅방 모습. 오른쪽 사진이 결정적 단서가 된 지하철 역 풍경.

얼마 후 래빗은 ‘아 X급 떴음’이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흔히 나오지 않는 결과였다. 이 정도면 특정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기쁨에 초조함이 더해졌다. 이 정보를 들고 경찰을 찾아갈까. 하지만 참기로 했다. 그가 거짓 정보를 흘릴 가능성을 염두에 둬야했다. 딱 한조각의 정보를 더 기다리기로 했다. 래빗은 곧 또 다른 정보를 내놨다.

‘0월에 재검 받을 듯’

그가 이 메시지를 보내자마자 경찰에 달려갔다. 경찰은 해당 날짜, 해당 지역 내 신검 일정을 파악했다. X급을 받은 전력이 있는 재검 대상자를 분류했다. 래빗의 재검 당일, 경찰은 급습했고 그를 체포했다. 마침내 n번방을 휘젓던 래빗을 잡았다.

우리가 용기를 내면 그들은 떤다

지인능욕방에 잠복해 취재하던 도중 후배의 사진이 올라온 걸 목격했다. 사이버 성범죄가 얼마나 공포스러운 건지 온세포로 깨달은 순간이었다. 남의 일이 아니구나. 불안함에 뒤척이다 날이 샜다. 합성사진이 돌아다닌다는 것만 문제가 아니었다. n번방에서는 이름과 직장, 사는 곳과 휴대전화 번호가 모두 공유됐다. 온라인을 벗어나 현실에서도 범죄 대상이 되는 건 시간문제였다.

능욕방에 잠복하고 있다가 합성 사진이 올라올 때마다 피해 여성의 SNS 아이디로 메시지를 보냈다. 기자 신분을 밝히고 피해 사실을 설명하면 대다수는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는 듯 몇 번이고 되물었다. “제 사진이 어떻게 사용됐다고요?” “제가 확실해요?” “당신도 한 패 아니에요?” “기자라는 걸 어떻게 믿죠?”

상황을 받아들이고 나면 피해자 대부분은 문제의 사진들을 “직접 보겠다”고 했다.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링크를 보내주면 한참 동안 대화창 위에 정적이 흘렀다. 다시 어렵게 대화가 이어지면, 첫번째 조치로 SNS에서 사진을 모두 지우고 비공개로 전환할 것을 권유했다. 그들은 몇 번이고 감사인사를 했다. 많은 경우 여기까지가 끝이다. 드물게 경찰에 신고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대부분은 가해자를 잡는 것보다 자신의 피해 사실을 누군가 알게 될까봐 그걸 더욱 두려워했다.

하지만 용기를 내면 길은 있다. 동창인 가해자를 잡아낸 교사 A씨처럼 피해자가 숨지 않으면, 가해자는 코너에 몰리고 겁에 질린다. 그들은 겁쟁이다. 신고를 하고, 수사를 지켜보며 깨달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는 피해자들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피해자들은 자신을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거나 모든 잘못을 자신의 탓으로 돌린다. 하지만 도와줄 센터와 활동가는 많다. 부디 신고하고 꼭 지원을 받기를 바란다. 상담소에 피해 사실을 알려도 기록을 남기거나 특정 기관에 실시간 보고가 되는 시스템이 아니다. 언제든 열려있으니 어느 상담소라도 찾길 바란다.”

텔레그램 그놈들, 결국엔 잡힌다

그들은 안 잡힐 거라고 믿었다. 그처럼 잔인하고 대담하게 행동한 이유는 딱 하나, 절대 못 잡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하지만 텔레그램은 치외법권이 아니다. 그곳에 숨어도 나쁜 놈들은 잡힌다. 수사에는 속도가 붙었다. 경찰은 현재 ‘텔레그램 추적 기술적 수사 지원 태스크포스’를 구성해 수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텔레그램 성착취 사건을 처음 접수하고 수사에 착수한 강원경찰청 관계자는 “최선을 다해 추적해 모두 검거하겠다”며 “여러 경로로 증거를 모아 가해자 범위를 좁히며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곧 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미 검거된 이들도 있다. 지난달 초 기준 모두 66명이 텔레그램을 통해 불법촬영물을 유포하거나 구매한 혐의로 검거됐다. 텔레그램 특정방의 운영자와 공범 16명, 아동성착취물 유통·소지 사범 50명 등이다. 지난해 11월에도 텔레그램에서 불법촬영물을 유통·판매해 2000여만원을 챙긴 30대가 실형을 선고받는 등 잇따라 처벌을 받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디지털성범죄심의소위원회도 힘을 보탰다. 위원회는 문제가 된 텔레그램방 133개를 차단조치했다.

물론 이들이 적절한 수위의 처벌을 받고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다. 텔레그램 성착취 공동대책위원회는 “법원은 모두가 납득할 수 있는 엄중한 처벌을 내려야 한다. 초범이라는 이유로, 반성을 하고 있다는 이유로 기소유예식의 처분을 내려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고, 윤김지영 건국대학교 연구교수는 “텔레그램 사건은 음란물 유포죄가 아니라 반드시 성폭력으로 처벌해야 가해 행위에 부합하는 처벌과 피해자 보호가 체계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피해 사례는 2차 가해를 우려해 독자가 n번방의 잔인성을 판단할 수 있는 수준으로 최소한도로 표현했다. 잠복취재를 유지하기 위해 기사는 익명 보도한다.

1회. 텔레그램에 강간노예들이 있다
번외편. 노예는 이렇게 만들어진다
3회. ‘약한’ 남성일수록 성착취에 집착한다
4회. “우린 포르노 아니다” 함께 싸우는 여성들

특별취재팀(with 추적단 불꽃) onlinenew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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