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월 28일 문희상 국회의장과 면담한 뒤 여야 4당 대표와 코로나19 대책을 논의하기 위해 회담장으로 이동하고 있다. 국민일보DB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사태에서 감염병의 확산과 차단보다 마스크 부족이 더 문제시되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76만명이 감염된 2009년 신종 인플루엔자(신종 플루) 사태 때나 2015년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 때는 보기 어려웠던 모습이다. 해외에서도 마스크 부족 사태가 일어나고 있지만 5부제 형식의 배급 시스템과 재고 알림 어플리케이션(앱)까지 도입한 나라는 없다. 한국만의 독특한 ‘마스크 대란’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국민일보 이슈&탐사팀은 코로나19 사태에서 마스크 착용에 관한 정부 내 메시지가 얼마나 일치했는지 조사하기 위해 e-브리핑 사이트 기록물(동영상과 녹취록)을 분석했다. 분석 대상은 1월 20일부터 3월 9일까지 실시된 코로나19 브리핑 가운데 마스크가 언급된 93건(6656분 분량)이다. 분석 결과 방역 당국과 청와대 간, 정부 부처 간 메시지에 큰 차이가 있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마스크 착용에 관한 메시지도 달랐다.

정은경 중앙방역대책본부장(질병관리본부장)을 비롯한 방역 당국 관계자들은 브리핑에서 “기침 등 호흡기 증상이 있을 경우 마스크를 쓰라”는 말을 거의 매일 했다. 93건 브리핑 가운데 일반 국민의 마스크 착용에 관한 언급이 나온 경우는 55차례였다. 정 본부장 등은 이중 23차례 “호흡기 증상 시 마스크를 쓰라”고 반복했다. 첫 환자가 발생한 1월 20일부터 일관되게 “호흡기 증상자가 의료기관을 방문할 때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해 달라”고 말했다.


같은 기간 언론에 포착된 문재인 대통령의 사진을 분석한 결과 그는 1월 28일 국립중앙의료원 방문에서 마스크를 쓴 것을 시작으로 모두 9차례 행사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2월 6일 부산 일자리 상생 협약식 참석과 9일 충남 아산 온양온천 전통 시장 방문, 12일 서울 남대문시장 방문, 28일 국회의장 면담 및 여야 4당 대표 회담, 3월 3일 국무회의에서 마스크를 썼다.

문 대통령이 마스크를 썼을 당시 호흡기 증상이 있었는지 확인되지 않는다. 호흡기 증상이 있는게 아니었다면 보건 당국의 권고와 다른 행동을 한 셈이 된다. 문 대통령은 마스크 부족이 심각해진 지난 4일부터는 공식 행사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있다. 결과적으로 감염병 환자가 적었을 때는 마스크를 쓰고 환자가 늘었을 때는 마스크를 쓰지 않는 이율배반적 행동을 한 게 됐다.





보건 당국의 마스크 지침과 다른 행동을 한 것은 여·야 지도자도 마찬가지였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2월 25일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고위당정협의회를 비롯해 26일, 28일, 3월 1~3일, 8~10일 행사에서 마스크를 착용했다.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는 1월 29일 국회 서울 서초구청 방문 때 마스크를 착용한 이후 2월 9일과 13일, 21일, 24~28일, 3월 2~6일, 8~12일 19차례 마스크를 썼다.

국내 정치 지도자들과 달리 해외 주요 정상은 공식 일정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고 있다.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코로나19 대책회의를 거의 매일 하지만 마스크를 쓴 모습이 한 차례도 포착되지 않았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도 마스크를 착용한 모습을 외신 사진에서 찾기 어렵다. 최근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긴급 기자회견, 보건당국 방문 등 자리에서 마스크를 쓴 적이 없다.

문재인 대통령(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으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아베 신조 일본 대통령,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 연합뉴스

정부 내 두 번째 메시지 불일치는 질병관리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 사이에서 일어났다. 질본을 중심으로 한 중앙방역대책본부는 마스크 착용에 관해 비교적 일관된 입장을 유지한 반면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락가락한 입장으로 불안감을 가중시켰다.

식약처가 마스크 사용에 관한 권고 사항을 마련한 것은 지난 12일이다. 식약처는 대한의사협회와 함께 만든 권고 사항에서 “기침 같은 호흡기 증상이 있거나 의료기관을 방문하는 등의 경우 KF80 이상 보건용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다”면서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 공간에서는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하지만 식약처는 그보다 앞선 1월 29일 이의경 처장의 마스크 생산현장 방문을 홍보하는 보도자료에서 전혀 다른 이야기를 했다. 식약처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 예방을 위해서는 ‘KF94’ ‘KF99’ 등급의 마스크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증상이 없는 일반인도 높은 등급의 마스크를 착용하면 코로나19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뜻으로 해석됐다.

식약처는 지난 3일에는 “코로나19가 확산되고 마스크 공급량이 충분하지 않은 비상 상황에서의 한시적 조치”라고 전제를 달며 마스크 재사용과 면 마스크 사용을 권고했다. 이 역시 마스크를 재사용하지 말라는 과거 입장과 다른 것이었다.


세 번째 메시지 불일치는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사이에서 일어났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서울시 등 지자체가 마스크 관련 보건 당국과 다른 이야기를 하면서 국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요즘 서울의 버스와 지하철에서는 코로나19 ‘예방행동수칙’이란 제목의 포스터를 볼 수 있다. 서울시 재난안전대책본부가 만든 것인데 ‘마스크 착용’이 첫 번째로 강조된다. ‘공공장소나 대중교통 이용시 필수’라는 설명이 따르지만 호흡기 증상이 있을 때 착용하라는 내용은 없다. 방역 당국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하는 손 씻기와 기침 예절은 두 번째와 세 번째로 밀려나 있다.

서울시 예방행동수칙. 서울시

일부 공공기관도 마스크 착용을 무조건적 필수 사항으로 오해하고 있다. 산림청 산하 국립수목원은 지난 2일 홈페이지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확산을 예방하기 위해 관람 입장 시 마스크를 반드시 착용해주시기 바란다”는 글을 올렸다. ‘증상 없는 일반인은 야외에서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정부 권고와 전혀 다르게 공공기관이 행동하는 것이다.

권영진 대구시장은 지난달 20일 기자회견에서 “일상생활에서 마스크를 꼭 착용하고 가정 내에서도 가급적 착용을 부탁드린다”고 말했는데 이 역시 보건 당국의 권고를 넘어선 것이었다.

정부 기관 간, 정부와 지자체간 메시지가 일치하지 않는 현상이 이어지면서 마스크 착용에 관한 과잉 행동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신종플루 브리핑 “마스크는 남을 위한 것”
이슈&탐사팀은 2009년 신종 플루 사태와 2015년 메르스 사태의 정부 브리핑 기록물도 분석했다. 신종 플루 당시 37건(2009년 5월 2일~12월 24일, 951분 분량)과 메르스 당시 63건(2015년 5월 20일~10월 12일, 2590분 분량)이다. 신종플루와 메르스 사태에서 정부 관계자의 마스크 언급은 각각 11차례와 29차례였다. 감염 환자의 이송 과정에서 마스크 착용 여부가 언급된 것을 제외하면 일반 국민의 마스크 사용에 관한 언급은 5차례씩이었다.

과거 보건 당국은 지금과 비슷하게 노인과 임산부 등 고위험군이나 증상이 있는 사람이 마스크를 써야 한다고 안내했다. 다만 눈에 띄는 점은 “마스크 착용은 다른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달했다는 것이다.

전재희 당시 보건복지가족부 장관은 신종플루 세 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다음 날인 2009년 8월 28일 브리핑에서 “감기 증상이 있는 경우 외출 시 다른 분들에게 피해주지 않도록 꼭 마스크를 착용하라”고 말했다. 이종구 당시 질병관리본부장은 앞선 8월 20일 브리핑에서 “비말 감염을 중간에 끊기 위해서는 재채기가 나는 것을 마스크를 써서 가려야 한다”고 설명했다.

7번째 사망자가 발생한 9월 15일에도 권준욱 당시 질병관리본부 과장(현 국립보건연구원장)은 “호흡기 환자를 보는 의료진에 마스크 사용을 하라고 권고한다”고만 말했다. 일반인의 마스크 사용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메르스 사태 때도 ‘마스크는 타인을 위한 것’이라는 메시지가 분명했다. 최경환 당시 국무총리 직무대행은 사망자가 9명으로 증가한 2015년 6월 10일 대국민 당부 사항을 발표하며 “호흡기 증상이 있다면 다른 사람들을 위해 마스크를 사용해 달라”고 했다.

문형표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은 의료기관 내 감염을 막기 위해 일반인이 병원에서 마스크를 써야 하는지 묻는 취재진의 질문에 “전반적인 위생을 위해 장려하지만 굳이 메르스 때문에 추가적인 조치를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스크 입고 문의가 이어지자 약국이 '마스크 없음'을 안내하는 문구를 외부에 붙여놓은 모습. 국민일보DB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당국자들의 브리핑은 톤이 달랐다. ‘마스크가 타인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든가 ‘건강한 일반인은 착용하지 않아도 된다’는 메시지는 찾기 힘들다. 김강립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1총괄조정관(보건복지부 차관)은 1월 31일 브리핑에서 “국민 여러분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손 씻기, 마스크 착용을 철저히 이행해 달라”고 말했다. 2월 6일 브리핑에서는 “일반 국민은 굳이 KF94, KF99와 같은 보건용 마스크를 착용할 필요는 없다”고 했지만 사용 자체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한 것은 아니었다.

공적 마스크 5부제가 시행된 지난 9일 서울 강남구의 한 약국에 시민들이 마스크 구매를 위해 줄을 서 있다. 연합뉴스

정부 당국자들은 식약처가 2월 12일 마련한 ‘혼잡하지 않은 야외나 개별 공간에서는 마스크 착용이 필요하지 않다’는 권고 내용도 2월 말까지 강조하지 않았다. 일반인의 마스크 사용 자제 메시지가 나온 건 문재인 대통령이 마스크 대란에 관해 대국민 사과를 한 지난 3일이었다. 보건 당국은 그날 브리핑에서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의 질병예방통제센터(CDC)는 마스크 착용을 우선해서 권고하고 있지 않다”면서 “거리두기가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서영준 연세대 보건행정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사태 초반에 ‘모두 마스크를 써야 한다’는 과잉 예방차원의 잘못된 메시지가 전달되면서 마스크 대란이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며 “이제라도 바로잡았지만 이미 메시지 관리 실패로 정책 신뢰를 잃어버렸고 국민들의 공포도 커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