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처음은 처음이라 다르다. ‘역대 최악’ 소리를 듣는 20대 국회지만, 그들도 처음 선거 운동에 뛰어들었을 땐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마음 하나로 똘똘 뭉쳤을 것이다. 그랬던 이들이 ‘배지’를 달더니 싹 달라졌다. 4·15 총선판에 뛰어든 ‘초보 정치인’들의 초심은 또 어떻게 변할까. ‘선거는 처음이라’ 고군분투하는 이들의 ‘처음’을 기록으로 남긴다.


사법농단 첫 무죄 판결, 정치를 결심하다
“저는 소위 잘 나가는 판사였습니다. 부정한 일에 협력하지 않겠다고 사직서를 제출했습니다.”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론관. ‘잘 나갔던’ 전직 판사 이탄희는 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 예비후보가 돼 연단에 섰다. 다소 긴장한 표정이었지만 출마 선언문을 읽는 목소리에는 떨림이 없었다. 영입인재로 소개됐던 50여일 전보다 단단해진 모습이었다. 기자들의 질의응답도 수월하게 넘어갔다. 첫 출마선언인데 떨리지 않았냐고 묻자 “긴장이 안됐다면 거짓말일 것”이라며 웃었다.

사법농단 내부고발자. 이 후보 뒤에 따라붙는 수식어다.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관리하라는 상부 지시에 반발해 사표를 쓰면서 인생이 파란만장해지기 시작했다. 사표 제출은 전직 대법원장 구속이라는 나비효과로 이어졌다. 11년의 판사 생활을 끝내고 인권변호사로 재야에서 조용히 사나 싶었더니 정치권이 붙잡았다. 긴 고민 끝에 더불어민주당 입당을 결정했다.

‘선거는 처음’인 이 후보의 하루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출마 선언을 한 다음날인 13일 오전 용인 기흥구에서 출근길 인사에 나선 이 후보를 만났다. 이 후보는 매일 오전 6시30분부터 2시간 동안의 출근길 인사로 하루를 연다. 마스크를 쓴 채 지나가는 차량과 사람들을 향해 90도로 허리 숙여 인사했다. 든든한 지원군 아내 오지원 변호사도 함께였다. 오 변호사는 매일 출근길 인사를 같이 한 뒤 직장에 출근한다고 했다.

오 변호사는 출마를 결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그렇게 불만만 제기할 거면 네가 직접 정치해라” “정치 안하면 스스로도 용서하기 어려울 거다” 등 소위 ‘뼈 때리는’ 말도 마다하지 않았다. 가족에게 출마를 선언한 날 오 변호사는 웃기만 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그냥 웃더라. 예상한대로 됐다는 반응이었다”고 했다.

결정타는 사법농단 1호 사건 무죄 판결이었다. “국회에서 주도해야 될 여러 사법개혁들이 전혀 진척이 없었다. 대법원장도 사법개혁에 대한 책임을 사실상 방기하고 있었기 때문에 재야에서 목소리를 내다가 한계를 느꼈다. 결정적인 계기는 사법농단 1호 사건이라 할 수 있는 유해용 전 수석재판연구관 사건에서 무죄 판결이 나는 것을 보고 결심을 굳히게 됐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 예비후보 이탄희 전 판사가 14일 용인시 기흥구의 한 공원에서 시민들과 만나 사진촬영을 하고 있다. 이탄희 캠프 제공.

입당 후 두 달…‘정치 초보’ 적응기
출근길 인사가 끝난 뒤에도 이 후보는 분주히 움직였다. 선거캠프로 건너가 민원인과의 미팅을 마치자마자 지역의 한 복합상가에 들러 소상공인들과 간담회를 갖는 등 쉴 틈 없는 일정이었다. 점심은 지역 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다녀간 식당에 들러 해결했다. 식당 주인은 확진자 방문으로 평균 100만원이던 일 매출이 13만원까지 떨어졌다고 호소했다. 인건비를 감당할 수 없어 직원도 여럿 정리했다고 한다. 이 후보는 “100만원에서 13만원이라니 충격적이다. 주신 밥 먹고 열심히 일하겠다”며 격려했다.

이제는 법정이 아닌 거리에서 사람들을 만난다. 입당 후 50여일 동안 코로나19로 흔들리는 소상공인의 생계를 피부로 느꼈다. 꽃집 장사를 하며 아이들까지 키워냈지만 매출 하락으로 월세 80만원을 못 내 가게를 비워야 할 상황에 몰린 꽃집 주인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청년 직원들을 어쩔 수 없이 해고해야 했던 갈빗집 사장도 인상에 남았다. 이 후보는 “4명 중 2명을 정리해야했는데, 사장이 미안한 마음에 거기서 파는 갈비를 직원들에게 구워주는 모습을 봤다. 양쪽의 마음이 다 느껴져 기억에 많이 남는다”고 했다.

법대 위에서 사람을 내려다보던 판사는 의뢰인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주는 변호사가 됐다가, 생생한 거리 민심과 직접 부딪치는 예비 정치인이 됐다. “판사는 결국 다른 사람을 심판하고 비평하는 입장이다. 변호사는 눈을 마주치고 같은 눈높이에서 사람을 만난다. 정치인으로서 사람들을 만나다보니 변호사로서의 경험이 매우 소중하게 느껴진다.” 그는 ‘마음을 같이 하는 정치’를 하고 싶다고 했다.

사람을 대하는 것이 어색하지는 않을까. “아직 어색한 건 어색하다. 하지만 내가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하려고 몰입하다보면 어색할 틈이 없다”고 했다. 사람 대하는 일보다 어색한 건 정치인의 문법이다. 그는 “정치인은 말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해 많은 걸 생략하는데 그게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경기 용인정 예비후보 이탄희 전 판사가 13일 용인시 기흥구 선거캠프에서 국민일보와 인터뷰를 나누고 있다.

사법농단 폭로자? 법복 정치인? 나는 ‘과업남’
숨 가쁜 오전 일정을 소화하고 겨우 선거캠프 사무실에 앉아 인터뷰를 나눴다. 국회에 들어와서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 어떤 국회의원이 되고 싶은지 물었다. 일각에서 나왔던 ‘법복 정치인’ 비판에 대한 항변도 들어봤다.

그는 “사법개혁의 필요성은 이미 많이 말했다”며 거듭 ‘과업’을 강조했다. 그래서인지 지지자들 사이에서 ‘과업남’이란 별명도 붙었다. 이 후보는 “직업윤리에 대한 자기만의 기준이 명확한 사람, 과업에 집중하는 정치인이 많았으면 좋겠다. 자기가 하는 일 자체에서 보람을 느끼고 정체성을 찾아야지 그렇지 못하면 결국 자신이 속해있는 조직의 구성원이라는 데서 정체성을 찾게 된다. 그러다보면 상부에서 직업윤리에 위반되는 일을 시켜도 쉽게 할 수 있다. 그게 과거의 국정농단 사태에서 목격했던 수많은 공직자들의 모습”이라고 지적했다.

이 후보 뿐 아니라 최기상·이수진 전 부장판사가 잇따라 민주당에 입당하자 ‘법복 정치인’ 논란이 일었다. “거듭 저에 대한 이야기를 할 수밖에 없다. 제가 판사일 때 한 일은 딱 두 가지다. 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라고 하는 출세코스로 발령 받고 나서 가지 않겠다고 사표를 낸 것, 그리고 2년 뒤 2019년 1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구속될 쯤 내가 판사로서 생명이 끝났다고 생각하고 법관직을 내놓은 것. 어떻게 그게 타임머신처럼 거슬러 올라가서 1년 전 결정이 정치적 활동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사법개혁을 위해 제도권 정치에 뛰어들었지만 사법개혁만큼 국회개혁이 필요하단 걸 깨달았다. 그는 “권력기관 개혁이라고 하는 것을 국회가 주도해야 한다고 평소에 주장을 해왔는데, 그것을 진짜 현실에서 구현하려고 하면 국회 신뢰도가 높아야한다. 국회개혁에 굉장히 관심을 많이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그에게 1호 ‘과업’은 여전히 사법개혁이다. 사법농단 비위 법관들의 탄핵, 개방적 사법개혁기구 설치부터 전관예우 금지법, 현대판 장발장 방지법, 양형절차 개혁법 발의 등 구체적인 청사진도 그리고 있다.

아직은 예비후보자 신분이지만 4년 임기를 마친 뒤 어떤 정치인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과업에 집중했던 정치인, 그때 그때 필요한 일에 집중했던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 또 남을 이해하고 마음을 같이 하는 정치인, ‘남이 아니었던 사람’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용인=이가현 기자, 영상=최민석 기자 hyu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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