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범죄자 최초’ 박사 신상공개 돼야 하는 이유들

텔레그램을 통해 미성년자의 성 착취물을 유포한 혐의를 받는 조모씨가 19일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고 있다. 국민일보 DB

서울지방경찰청 사이버안전과는 20일 오전 텔레그램 단체대화방 ‘박사방’ 관련 브리핑을 열었다. 착취물을 유포해 거액의 범죄수익을 올린 조모씨와 공범 4명 등 5명을 구속하고 나머지 공범 9명을 대상으로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특히 네티즌들의 눈길을 끈 건 ‘박사’로 불리는 피의자 조모씨 신상공개 여부였다. 경찰은 ‘박사 신상공개는 어떻게 진행되나’라는 질문에 “신상정보 공개위원회를 구성해야 하고 위원회 결정에 따라서 결정될 것 같다. 다음 주 초쯤에는 결론이 나올 것 같다”고 답했다. 만약 조씨의 신상이 공개되면 성범죄자 피의자로서는 처음이다. 과연 박사의 신상은 공개될 수 있을까.

피의자 신상 공개는 어떤 법에 근거하나

강호순 연쇄살인사건 이후 국민의 알 권리에 대한 요구가 커지자 2010년 특정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특강법)이 제정됐다. 이 법이 제정되면서 특정 강력범죄를 저지른 피의자의 신상을 공개하는 법적인 근거가 마련됐다.

피의자 신상 공개는 특강법 8조 2항에 근거해야 한다. 우선 ①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특정강력범죄사건이어야 하고 ②피의자가 그 죄를 범하였다고 믿을 만한 충분한 증거가 입증돼야 하며 ③국민의 알 권리 보장, 피의자의 재범방지와 범죄예방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성이 소명되고 ④피의자가 만 19세 이상일 경우에만 신상이 공개된다. 구체적인 판단은 경찰과 변호사, 정신과 의사 등 7명으로 구성된 지방경찰청 내 심의위원회가 한다. 이 조항에 근거해 10년 동안 피의자 22명의 신상이 공개됐다.

n번방 피의자들이 저지른 범죄가 법 조항을 모두 충족하나

경찰은 조씨와 공범에게 적용되는 혐의가 아동청소년성보호법상 아동음란물제작과 형법상 강제추행, 협박, 강요, 사기에 개인정보보호법(개인정보제공)과 성폭력처벌법(카메라등 이용 촬영) 위반 등 모두 7개에 달한다고 밝혔다. n번방 피의자들이 받는 혐의 중 강제추행은 특정강력범죄사건에 포함된다. 게다가 피해자도 많다. 현재까지 경찰이 확인한 피해자들만도 무려 74명, 이중 미성년자가 16명이나 된다. ①에 해당하는 범행수단이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가 발생한 범죄사건이라고 판단할 만하다.

조씨의 신상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글이 20일 오후 5시 20분 기준 42만 5000여명을 돌파했다. 국민청원 캡쳐

②번 사유는 조씨가 자신이 박사라고 시인한 만큼 비교적 쉽게 충족될 수 있을 전망이다. 법원이 구속영장을 발부한 점도 유리한 정황이다. 법원은 19일 조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하면서 “아동과 청소년을 포함한 여성 수십 명을 강요한 뒤 음란물을 제작하고 유포해 막대한 이득을 챙기고 왜곡된 성문화를 조장했다는 점에서 사안이 엄중하다”며 “불법으로 취득한 개인정보를 이용해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위해를 가하겠다고 고지하는 등 위해 우려가 있고, 증거인멸 및 도주 우려도 있다”고 밝혔다.

③공공의 이익을 위한 필요성도 소명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n번방 피의자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사회적 목소리는 거세다. 조씨 신상 공개를 요구하는 국민청원 글은 20일 밤 11시 10분 기준 64만 2000명을 돌파했다. ④나이도 걸림돌은 아니다. 조씨의 나이는 확인되지 않았지만 미성년자가 아닌 20대인 것은 분명하다.

문제가 되는 것은 가장 결정적인 ①번 사유 증 특정강력범죄 부분이다. 강제추행이 특강법이 정한 특정강력범죄인 것은 맞지만 핵심 피의자인 박사 조씨가 아니라 조씨의 사주를 받은 공범에게 적용된 혐의다. 따라서 조씨의 신상공개 여부를 결정하는 것과는 무관하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가 20일 CBS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에서 “이 사람(조씨)은 특강법에 적용이 안 된다. (신상공개에) 어려움이 있을 것 같다”고 말한 이유다.

물론 다른 의견도 있다. 김준우 변호사는 19일 mbc ‘이승원의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에 출연해 “굉장히 흉악한 범죄인 경우에만 제한적으로 신상공개를 하는데, (이 사건은) 의심의 여지가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잔인하고 중대한 피해 발생’에 초점을 둔다면 여지는 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모텔 손님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해 한강에 유기한 혐의로 구속된 장대호(38)가 지난해 8월 21일 오후 경기 고양경찰서에서 조사를 마친 뒤 차량으로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성폭력 피의자 신상이 공개된 적이 있었나

성폭력범죄 혐의로 피의자의 신상이 공개된 적은 없었다. 한강 몸통 시신 사건 용의자 장대호,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 용의자 고유정 등 피의자 신분에서 신상이 공개됐던 범죄자들은 모두 살인 혐의를 받았다.

하지만 살인 등 흉악한 범죄를 저지른 혐의를 받은 피의자들의 얼굴이 공개되지 않은 경우도 더러 있었다. 2016년 신원영(7)군을 끔찍한 학대 끝에 숨지게 한 계모와 친부의 신상은 공개되지 않았다. 원영이 누나의 인권이 침해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해 이른바 ‘강남역 살인사건’ 피의자로 체포된 김모씨의 신상도 공개되지 않았다. 정신질환자인 데다 범죄예방효과가 크지 않다는 이유였다. 만약 조씨의 신상이 공개되면 성폭력처벌에관한법률 위반을 근거로 삼은 첫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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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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