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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바닥 다큐소설] 청계천 빈민의 성자(12): 대구 청년

우상과 맞선 한 성자의 눈물: 한국 교회는 왜 권력이 됐는가

註: 예수와 같은 헌신적 삶을 살고자 1970년대 서울 청계천 빈민들과 함께한 노무라 모토유키 목사와 빈민운동가 제정구 등이 겪은 ‘가난의 시대’. 그들의 삶을 통해 복음의 본질과 인류 보편적 가치 그리고 한국 교회의 민낯을 들여다볼 수 있는 다큐 소설이다.

냉차 행상을 하면서 신문을 읽고 있는 청년은 내게 무척 인상적이었다. 한국 어디를 가나 사람들은 표정이 없었고 슬픈 얼굴이었다. 어디서곤 활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내가 만난 한국의 청년들은 어딘가 불안해 보였다. 꿈이나 희망을 자신 있게 이야기하기보다 주변의 눈치를 먼저 살폈다. 박정희 대통령의 정권 강화가 계속되면서 사찰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라고 산업 선교를 하는 어느 목사가 귀띔해주었다.

청년 일태는 어려운 가운데서도 뭔가 생기가 넘쳤다. 헤진 흰 셔츠를 입긴 했으나 산뜻한 모양새와 자세가 인상적이었다. YMCA호텔에 묵으면서 자주 그 청년의 냉차 구르마 앞을 지났는데 그때마다 콘사이스 아니면 신문, 더러는 ‘데미안’과 같은 고전을 읽었다.

1970년대 초 서울 종로2가 YMCA호텔 앞 버스정류장. 현 서울YMCA 건물이다. ⓒ 노무라 모토유키

그 청년을 눈에 담고 지나면서 “주님, 저 청년을 축복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그날 내가 그 청년에게 냉차를 주문했을 때 자신이 신문을 읽고 있었던 게 미안했던지 발딱 일어나 손님에 대한 예를 갖췄다.

조일태.
경상도 대구라는 곳에서 어릴 적 상경해 성북천 옆 용두동에 살았었다고 했다. 6·25전쟁 상이군인이었던 아버지가 부상의 후유증을 이기지 못해 그가 어렸을 때 일찍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이런 얘기를 하던 일태는 가끔 한 번씩 하늘을 보며 슬픈 기색을 내지 않으려 애썼다. 콘사이스 영어이면서도 미국에서 공부한 나보다 발음이 좋을 정도로 정확한 경우도 있었다. 주어, 동사, 목적어, 보어 등을 간결하게 사용했는데 대화가 아주 어렵지 않았다.

이 청년은 초등학교 학력이 전부였다. 홀어머니 밑에서 3형제가 자라다 보니 중학교에 들어갈 형편이 못됐다고 했다. 어머니가 행상으로 형제를 키웠다.

하지만 무작정 상경 농민들이 개천 옆 저지대에 무허가 판잣집을 마구 지어 전세를 주었는데 그 청년 가족의 전셋집이 강제철거 되면서 도시 외곽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그 무렵 내가 아는 서울의 재야 목회자들이 도시 빈민을 위해 투쟁하고 있었다. 1967년을 기준으로 23만 여동의 무허가 주택과 127만여 명의 주민들이 서울시 밖으로 강제 이주됐다고 했다.

일태 군 가족 역시 용두동 무허가 주택 철거와 함께 광주대단지로 쫓겨나야 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 가운데 힘을 주신다네. 사막에 버려진 이들도 챙기는 하나님이시네.”

그는 다소 당혹스러운 빛을 띠기도 했으나 외국인과의 대화이므로 최대한 이해하려 들었다.

“저도 꼬마 때 크리스마스 때 사탕 받으러 예배당에 가곤 했습니다. 북 치고 장구 치는 전도대 따라 골목을 누비기도 했고요. 그래서 예수님이 참 좋은 분이시라는 건압니다.”

일태 군이 나를 배려하며 이야기하는 것이 고마웠다. 그날은 일정이 있어 그렇게 일태 군과 헤어졌다. 외로웠으리라. 나는 청년 일태를 보며 그런 마음이 들었다.

<계속>

작가 전정희
저서로 ‘예수로 산 한국의 인물들’ ‘한국의 성읍교회’ ‘아름다운 교회길’(이상 홍성사), ‘아름다운 전원교회’(크리스토), ‘TV에 반하다’(그린비) 등이 있다. 공저로 ‘민족주의자의 죽음’(학민사), ‘일본의 힘 교육에서 나온다’(청한)가 있다.

전정희 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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