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모(19)씨가 'n번방' 가입자로 지목된 지난 22일부터 전화, SNS로 받은 메시지들. 원씨 제공

“네가 그 유명한 n번방 가해자냐?”

원모(19)씨는 지난 22일부터 문자메시지 폭탄에 시달리고 있다. 낯선 번호로 날아든 문자메시지는 “텔레그램 n번방의 가해자가 맞느냐”고 추궁하거나 다짜고짜 욕설을 늘어놓고 있었다. 영문을 몰랐던 원씨는 재학 중인 대학교 커뮤니티 사이트에 자신의 신상 관련 글이 올라와 있는 것을 발견했다. ‘n번방 계정을 지워드린다’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에서 원씨를 사칭한 누군가가 대화한 글이 올라와 있었고, 이를 근거로 원씨를 n번방 가해자로 지목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원씨에겐 텔레그램 계정조차 없었다. 그는 26일 “누가 나를 사칭한 것인지 모르겠다”며 “n번방에는 들어가본 적도 없다”고 억울해했다. 문자와 SNS로 자신을 욕하는 수백통의 메시지에 시달리던 원씨는 결국 자신을 n번방 가해자로 지목한 글을 올린 사람들을 경찰에 고소했다.

텔레그램 ‘n번방 사건’에 가담한 회원들도 신상을 공개하고 처벌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무분별한 ‘n번방 신상털이’라는 부작용도 나타나고 있다. 온라인에서 이뤄지는 ‘인민재판’에 원씨처럼 무고한 피해를 입는 사람이 생기는 것이다.

실제 확인되지 않은 n번방 가입자 목록은 SNS,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확산되고 있다.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게시된 ‘n번방 신상 정리’라는 글에는 일반인 남성 10여명의 전화번호, 사진, SNS 주소 등 개인정보가 공개돼 있다. 인스타그램 등 SNS에도 ‘n번방 신상’ ‘신상 박제’라는 키워드로 일반인 남성들의 사진,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다수 공개돼 있다. 그러나 대부분 증거 없이 n번방 가입자로 지목하고 있거나, ‘n번방 신상을 지워드린다’는 카카오톡 오픈채팅방의 대화 내용만을 근거로 들고 있다.

전문가들은 일시적인 마녀사냥 대신 성착취 범죄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개인정보를 공개하는 감정적인 대응 대신 피해자를 보호하고 ‘제2의 n번방 사건’이 일어나지 않도록 우리 사회의 왜곡된 성의식을 근절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윤호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도 “일반인 신상을 공개하는 것은 또 다른 범죄 행위”라며 “현행법상 성범죄 처벌 수위가 낮다고 여기는 여론이 많지만, 사적으로 처벌할 것이 아니라 국민의 법 감정과 일치하도록 법을 개선해 가해자들을 적법하게 처벌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애 기자 amor@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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