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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위기는 기본으로 돌아가게 한다 : 사명(Mission) 편


박계문 목사
전 이랜드 사목
캐나다 트리니티 웨스턴대학교(Trinity Western Univerty) 박사(D.min.) 과정

본문 : 고린도 전서 1장 2절

2절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글로벌 바이러스 대유행(Global pandemic)를 겪으면서, 뉴욕의 맨하튼의 거리가 차 한 대도 없다는 것이 현대 사회에 가능한 일인가? 되 묻습니다. 또한 국가 재난으로 여겨 전시 상황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도저히 합리적인 선택을 할 수 없을 정도로 혼미 합니다. 예측 불가입니다.

여름에 퀴어 축제(Queer Culture Festival) 할 만 큼 희망이 있다고요? 거의 마무리 단계라고요? 여름에 있는 올림픽도 연기한다고 한 상태인데요. 우리가 언제부터 빨까 벗고 놀아 났습니까? (아무튼 가릴 것은 가린 듯) 고대 중국의 문헌들이 용납했나요?

대한민국도 임진왜란과 병자 호란 등 대 혼란에서 나라를 구한 분이 왕이었나요? 왕은 도망가고, 관군은 오합지졸이었고, 고관 대작들은 당파 싸움으로 신속한 의사 결정을 못했고, 의병들이 일어나 마지막 이 나라의 희망을 던진 분들이라고 역사에 써있던 것 아주 예전에 배운 기억이 납니다.

지금은 전 세계가 재난입니다.

재난(Disaster)이란 라틴어 어원은 Dis(없는)+Astro(별)입니다. 밤 하늘에 별을 전혀 볼 수 없는 칠흑 같은 밤이며, 방향도 찾지 못한 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복음(1장)의 기록에 보면 세례 요한도 그의 사명의 시작은 불곰과 사자의 맹수가 도사리고 있는 광야(사막)이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는 사막에서 외쳤습니다.

요셉도 억울한 누명을 쓰고 인생의 사막인 감옥에서 3년이라는 세월이 칠흑 속에서 그의 영성이 빛을 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의 고난은 어떻습니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드리라는 말에 순종하고 그 광야(사막)의 칠흑 길을 삼 일 동안 모리아 산을 향해 걸었습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익숙한 일상(routine)에서 새로운 광야(사막)의 길은 말 그대로 칠흑이었습니다. 모세를 따라 강도 넘고, 사막에서 오아시스도 만났지만, 그들은 사명(mission)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은 임무(mission)를 발견합니다. 성경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에는 그들이 각 지파와 개인이 해야 할 사명(mission) 이 주어집니다.

그 밖의 무수히 많은 성경을 인용 할 수 있습니다.

밴쿠버는 지금 코로나 바이러스가 시작인듯합니다. 급격히 확진 자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한인 인구 56,000명(공식 통계)에 한인 교회가 약 300개 정도 있습니다. 그 중 80% 이상이 50명이 안 되는 열악한 교회의 현실입니다. 목회자들은 90% 이상이 Two jobs를 합니다.

대부분 현지 교회와 학교 체육관을 빌려 주일 예배를 드립니다. 지난 주부터 갑자기 정부 행정조치로 체육관도 사용을 금지하고 50명 이하 집회도 금지 하여 온라인 예배 혹은 각자 가정 예배로 전환 한 상태입니다. 기한은 없는 듯합니다. 영적으로 이러한 조치로 신음하고 있습니다.

이 재난의 칠흑에서 모든 크리스천들이 재 발견 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사명(mission)입니다.

지금 칠흑의 멈춤에서 나는 제대로 가고 있는가? 이것이 하나님의 길이었나? 영적인 점검 시간입니다 .

그럼 사명(Mission)이 천국의 이야기 입니까? 아닙니다. 이 세상의 이야기입니다.

천국과 이 세상과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8장 3절을 보면, 어린 아이와 같지 않으면 천국을 갈 수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어린 아이가 무엇이기에 예수님이 그를 모델로 삼으시고 앞에서 대놓고 말씀을 하셨을까? 히브리 인들의 밑바탕과 다른 고대 사회에서 조차도 어린이들은 “힘이 없는 자들” 이라고 정의 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 말씀을 놓고 고민 할 때, 한 권의 책을 읽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막스 뮐러의 “독일인의 사랑”에서 어린 아이와 어린 아이가 아닌 것을 구분 하는 기준은 내 것, 네 것을 구분 할 수 있을 때, 어린이가 아니라고 표현을 합니다.

그렇다면 천국 가기 위해서는 이 땅에서 소유를 버리라는 말인가? 염세주의적인 크리스천이 되라는 말인가? 자기들만의 평안을 위해서 공동체를 이루면서 살라는 말인가? 어쩌면 하나님은 격리(quarantine)하시는 이유가 분명히 있습니다. 갑자기 바벨탑 사건의 전말이 생각납니다. (창세기 11장)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 땅에서의 소유를 이미 인간에게 위임 하셨습니다. 창세기 1장 28절에 인간에게 이 땅에 있는 모든 생물체들과 자연을 다스리고, 지배하고, 정복하라 하십니다.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천국에서 아파트 매매 할 일없습니다. 어디에 투자 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천국에서는 하나님이 알아서 관리 해준답니다. 천국에서 무엇을 할 것인가 Second Bible이 없습니다.

또 하나는 나를(하나님) 보고는 살 자가 없다고 모세에게 충고 하십니다. (출33: 20)

하나님께서 천국이시기에 절대로 이 땅에서는 보여 주실 수 없는 신비한 모습(mysterious position) 을 취하셨습니다. 이 땅에 있는 동안에는 천국? 백 날 이 땅에서 설명해도 이해 불가한 곳이야! 그냥 내가 알려 준 대로(Bible-성경 전체의 주체는 이 땅의 일로 구성) 만 하고 있다가 믿고 천국에 와!

아브라함이 갈 바를 알고 갔나요? (히브리서 11장)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이 땅에서 있어야 할 인간의 모습은 무엇인가? 히브리서 11장에 잘 나와 있습니다. 앞에 “믿음”이라는 표현을 씁니다. 그리고 행동을 취합니다. 이러한 것을 “신성한 행동”(divine action) 이라 말하고 있습니다.

신비한 모습(mysterious position) 과 신성한 행동(divine action)의 차이는 무엇인가?

전자는 빛 자체인 태양이라면, 후자는 빛을 받아서 반사하는 달과 같은 것입니다. 달은 빛이 아닙니다. 마찬 가지로 인간은 빛 차제가 아닙니다. 빛을 비추어 주는 반사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 하실 때,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을 인간에게 주었습니다.

Steve W Lemke는 말하길, “하나님의 형상(The image of God)이란 하나님의 본질의 유사성과 비슷함과 투영(거울) 이다” 라고 했습니다.

그럼 사명(mission) 으로서 신성한 행동을 위해서 찾아 봐야 할 성경 두 곳이 있습니다.

1. 마태복음 5장에도 인간을 너희는 세상의 빛이고 소금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 세상에서 신성한 행동(divine action)을 해야 할 의무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사명(mission) 입니다.

오늘 본문 2절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입니다.

주어진 사명(mission)은 두 가지, 복음(Gospel-사도행전 20장 24절) 과 직분(Stewardship-고린도전서 9장 17절) 를 말합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하는 것이 신성한 행동으로 직분을 담당하는 것인가요? 너무 협소한 애기죠.

여기 직분(STEWARDSHIP, 청지기)은 교회 용어가 아닙니다. 원래 고대에서는 통치적인 개념을 가지고 있지만, 바울이 이 용어를 사용할 때는 봉사와 섬김의 용어로 바꾸어 사용하고 있습니다.

2.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나옵니다. 주인인 돈 주고 뭐 사와라 하지 않고, 단지 각각의 능력만 주었을 뿐입니다. 그 능력을 달란트로 비유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business 종자돈입니다. 이 달란트를 가지고 어디에서 일 하라는 말입니까? 교회에서 일터에서?

교회에 성도들을 매달아 끌고 가야 성령의 역사가 일어나고 신성한 행동입니까?

그럼 내가 직장에서 일하고, 돈 버는 것은 신성하지 못한 것이라 달란트 수익으로 간주하지 않는 것인가요?

평신도들이 세상에서 열심히 굿 진 일 다하고, 능욕까지 당하며, 헌금하고 십일 조 하는 것은 세속적인 돈이라서 헌금하면 안 되는 것이겠네요?

그럼 교회에서 벌어서 헌금해야 깨끗한 나라 헌금이네요?

이러한 이원론(dualism)과 이분법(dichotomy)이 우리의 영적인 삶에 혼돈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크리스천들이 구별 하는 지혜는 없고, 분리하는데 너무 익숙합니다. 좀 추한 것 보면, 비위가 상합니다. 동굴에 있는 자신이 박쥐처럼 살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이제는 신성한 행위(divine action)를 교회에서 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서 어떻게 하는가? 함께 나누고 말씀을 통해서 찾아야 합니다.

교회는 진정한 일터 사명자(marketplace missionary)를 양성해야 합니다. 교회 직분자가 아닙니다.

세상에서 이기는 법을 가르쳐야 하는데, 교회는 너무 교회 봉사에 집중하여, 다양한 프로그램을 돌리고 교인들을 동원하는 듯 하지 않았나 반성할 필요도 있습니다. 이제는 세속적인 일(일터) 과 거룩한 일(교회 봉사)이라는 등식을 탈피 해야 합니다.

복음의 DNA를 성도들의 사고에 정착 시키고, 청지기(stewardship)의 삶을 살도록 가르쳐야 합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내 놓고 술 취한 사람 봤습니까? 다 신령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교회 안에서 오히려 구분이 안됩니다. 이제는 제자 훈련도 교회 안에서 만 직분 자를 세우기 위한 훈련이 아니라, 일터(marketplace) 선교와 연결이 되어야만 합니다.

성도는 어디에서나 성도입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다니는 일터(marketplace)에서는 하나님이 숨어 있어서 나도 숨어 있나요?

하나님은 어디에서나 언제나 계신 분입니다.

바로 이러한 것이 사명(Mission)입니다.

지금 위기의 시점에 다시 한번 나는 무엇을 소유하고 있는가? 돌아 보고 점검 해야 합니다.

시편 127: 1절에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 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 쉽게 말해서 한방에 훅 갈 수 있다 그런 말입니다.

천국은 소유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땅에서는 사는 동안에는 소유권을 허락하시고, 위임하셨습니다. 우리는 잠시 위임하신 소유들을 관리해야 할 대리 책임이 있습니다. 다들 축복은 받으려고 기를 쓰지만, 하나님 앞에 결산 하는 데는 너무 무지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작농입니다. 이 땅에 주인이 아닙니다. 죽으면 모든 소유의 유가 증권 귀중품, 땅문서의 내 이름은 사라집니다.

지금은 공포(panic)의 상태가 아니라, 사명(mission)을 찾는 시간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계획을 가지고 계십니다. 소망을 결코 잃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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