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교안 미래통합당 총괄선대위원장이 1일 서울 양천구 목동동로 방송회관에서 열린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호기심에 n번방에 들어간 사람들에게는 판단이 다를 수 있다”고 한 황교안 미래통합당 대표의 발언에 연일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다. 공개적 비난은 주로 정치권에서 폭발했지만 비판 여론이 정가에만 있는 건 아니었다. 여성계에서도 ‘공당 대표가 사안을 파악조차 못했다’는 비판이 이어졌다. 이들은 한국 정치가 성 문제를 다루는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는 지적도 했다.

국민일보는 2일 n번방 사건을 처음 폭로하고 끝까지 추적한 ‘추적단 불꽃’ 및 여성단체 관계자 3명과 전화 인터뷰를 가졌다. 이들은 황 대표의 ‘n번방 호기심’ 발언이 왜 잘못됐고, 어떤 문제를 갖고 있으며, 그 배경에 어떤 잘못된 인식이 자리잡고 있는지 조목조목 지적했다.

①n번방 폭로한 ‘추적단 불꽃’

“그런 사람에게는 입(발언권)이 없어져야 한다. 사건의 본질을 파악하지도 못한 사람이 어떻게 정당 대표의 자격을 갖고 발언을 할 수 있는 건지 모르겠다. 여전히 남성 중심 기득권층의 인식은 바닥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국민을 대변하는 정치인이라는 사람이 그런 말을 당당하게 할 수 있다는 사실이 참담하다. 대국민이 분노한 사건에 고작 일반론적 해법밖에 못 내놓는다는 것도 참 안타깝다.”

②신성연이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활동가

“황 대표가 이렇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n번방 사건을 제대로 모르기 때문이다. 텔레그램에서 성 착취가 얼마나 조직적, 구조적으로 이뤄지고 온라인 조직범죄로서 기능하는지 그간의 역사나 현실을 모르는 편한 말이다. 사실 잘 모르는 문제에 대해서는 말하지 말아야 한다. 그게 가장 현명한 판단이다. 가장 문제가 되는 사회현상에 대해 가장 안일한 태도를 보이는 사람이 공당 대표라는 것은 한국 정치가 지금 어느 지점에 와있는지를 선명히 보여주는 단면이다.

사실 황 대표는 성 착취 사건에 대해서 말할 자격이 없다. 2015년 서울 남부지검에서 근무하던 김모 전 부장검사와 진모 전 검사가 후배 여검사를 성희롱·성추행했다는 의혹이 불거졌을 때 법무부장관이 황 대표다. 당시 진상조사를 해놓고서도 감찰 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가해 검사의 사표를 수리하는 선에서 사건이 마무리됐다. 자기가 맡아서 해결해야 하는 성폭력 문제에서도 해야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은 분이 본인의 자리에서 할 수 없는 발언을 한 것이다.

더 큰 문제는 황 대표의 발언이 가해자들의 논리라는 점이다. 사회적 권위를 가진 인사이기 때문에 n번방 문제를 해결해나가는 데 이 발언이 해악적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누가 이 발언을 실질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 n번방의 회원일 때, 자신을 조금 봐주거나 호기심으로 치부해주길 바라는 사람들에 의해서 이 발언이 더 널리 퍼질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가해자들의 얘기를 들을만한 상황이 아니다. 가해자 변명은 충분한 처벌 뒤에 들어도 된다. 아직 어떤 처벌도 안 이뤄졌고, 사이버 성범죄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이 바뀌어야 하는 기점이 되는 이 순간에 공당의 대표라는 사람이 이렇게 얘기하는 것은 성 착취 문제를 해결하려는 흐름을 거스르는 것이다.

텔레그램 성 착취 문제가 처음 국회에 법안으로 상정이 됐을 때 의원들 사이에서 일일이 어떻게 처벌하냐, 개인 작품활동으로 볼 수 있지 않냐는 등의 얘기가 많이 나왔다. 그런 인식을 가지고 있으니 사이버 성폭력 문제가 법 제도 안에서 제자리걸음할 수밖에 없고, 사회문제로 불거지면서도 자꾸 무시되거나, 기소된 사건에서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것이다. 참 안타까운 마음이다.”

③이미경 한국성폭력상담소 소장

“황 대표가 갖는 공인으로서 무게가 있다. 얼마나 엄중한 사안인데 이렇게 ‘호기심’이라는 단어로 가해자 옹호적 발언을 할 수 있는지 실망스럽고, 공분하지 않을 수 없다. 온·오프라인을 오가며 100만원이 넘는 돈을 넣고, 여성의 성을 착취하고, 인권을 침해한 사건에 대해 어떻게 이 정도로 가볍게 생각할 수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 황 대표 한 사람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민 상당수가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발언이기도 하다. 매우 우려스럽다.

나는 박사가 괴물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 사회가 ‘조주빈이 괴물’이라며 딱 뽑아내 버리면 끝나는 문제가 아니다. 그가 이렇게 행동할 수 있었던 배경에 26만명이 있었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어떤 식으로든 동조하고 함께 영상을 본 사람들이다. 엄중한 대처가 없으면 또 이런 사람들은 생겨날 것이고, 또 다른 사건으로 터져 나올 것이다.

사실 1990년대만 해도 이런 범죄를 생각지도 못했다. 앞으로 인공지능 시대에 또 어떤 범죄가 새롭게 나올지 걱정된다. 그때가 되면 눈앞에 있는 여성과 마음대로 다룰 수 있는 기계를 과연 구별할 수 있을까. 성매매 남성이 돈을 주고 성을 사는 것과 컴퓨터 모니터 안에 보이는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는 것이 뭐가 다를까. 똑같다. n번방에 가담해 동조했던 이들이 함께 책임을 져야 하는 이유다. 동조자가 없었다면 이러한 성 착취가 일어날 수 있었겠나.”

④김도연 한국데이트폭력연구소 소장

“공분을 살만한 발언이다. 성에 대한 국민적 인식 재고가 필요한 시점에서 n번방 사건을 가볍게 다룬 것 자체가 문제다. 특히 가해자들을 처벌해달라는 사회적 목소리와 청원이 얼마나 많이 있었나. 국민들은 지금도 어떻게 사건이 처리되고 있는지에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다. 공당 대표이자 다양한 고충을 처리해야 하는 정치 지도자인 그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성범죄 이슈에 얼마나 깊이 공감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많은 걱정이 들게 만든다. 또 황 대표가 관련 문제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공감대나 인식 수준이 여실히 드러났다.

현재 수사가 한창인데도 n번방은 되레 활성화되고 있다. 영상이 재판매되고, 다른 사이트를 통해 유통된다. 가해자들의 각성이 없고, 성 인식도 심각하게 훼손되고 있다. 누군가는 호기심에 n번방에 들어왔다고 해도 그 안에 있는 내용은 성적 학대나 트라우마를 유발할 수 있다. 피해자의 고통이 그대로 드러난 성 착취 영상이기도 하다. 이런 상황에서 단순히 호기심으로 치부하기 시작하면 범죄를 합리화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이러한 발언과 인식을 토대로 처벌이 약해질 우려마저 있다. 상당히 신중했어야 하는 발언이다.”

박장군 기자 general@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