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5일 젊은 부부와 자녀들이 함께 장을 보고 있다.

한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확진자가 세계에서 두번째로 많았던 도시. 하루에도 수백명씩 확진자들이 쏟아져 나오던 곳, 온라인과 모바일 SNS를 통해 ‘한국 31번째 확진자’가 사는 곳….

2월 중순부터 지난달까지 대구는 코로나19 패닉 상태였다. 암울했던 이 도시가 이제 길고도 어둡던 터널을 빠져나오고 있다.

도로마다 만개한 벚꽃처럼, 대구시민들의 불안과 공포는 서서히 안도와 희망으로 바뀌고 있다. 여전히 모두의 얼굴엔 마스크가 씌워져 있지만, 코로나19 패닉이 집어삼켰던 때와는 다른 표정이 느껴질 정도다.

5일 낮 12시 대구서문시장. 전국 최대규모의 전통시장인 이곳엔 휴장일인데도 문이 열린 가게가 꽤 많았다. 인적조차 찾아보기 힘들던 몇주 전보다 손님도 훨씬 많았다. 어린 자녀를 데리고 온 젊은 부부는 시장 분식집 앞을 지나며 “뭐 먹을까”를 진지하게 상의하고 있었다. 옷가게를 운영하는 상인은 “한참 코로나19가 심할 때를 생각하면 조금씩이나마 손님이 찾아오니 다행“이라며 웃었다. “원래는 쉬는 날인데예, 언제 손님이 올지 몰라서 문 열었심미더.”

동성로도 예전 모습을 회복해간다. 두달 가까이 문을 닫았던 카페 식당 팬시점 등이 하나둘씩 문을 열었다. ‘임시휴업’이란 안내문을 셔터에 붙여놨던 카페에는 예쁜 글씨의 ‘영업재개’ 팻말이 붙었다. 모자상점을 운영하는 신모(67)씨는 “확실히 오가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많아졌다”고 했다. 여전히 물건이 잘 팔리는 건 아니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대구도 정상으로 돌아갈 수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경상감영공원에선 어르신들이 마스크를 쓴 채 삼삼오오 모여 4월 총선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장모(71)씨는 “요즘은 지인들과 코로나19보다 선거이야기를 더 많이 한다”고 전했다.

혹독한 코로나19 시련에 시민들은 ‘잘 길들여져’ 있다. 누가 뭐라 하지 않아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확실하게 지키고, 두명이상 모이는 곳엔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하며, 밀집 다중시설엔 최대한 방문을 자제한다. 수칙 아닌 수칙이 생활습관이 된 것이다.

현재까지 6768명의 확진자가 발생했지만, 완치자가 4854명(71.7%)에 이른다. 이날 추가 확진자는 7명에 불과했다. 가장 많은 하루 확진자(741명)가 쏟아져 나왔던 2월 29일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시당국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양성소’와 다름없던 신천지 교인들에 대해 전수조사를 끝냈고, 콜센터 요양·정신병원 등 집단감염 취약지대에 대해서도 전수조사를 마쳤다. 이젠 쪽방촌, 외국인체류자 밀집지역 등 다른 취약지구에 대해서도 전수조사에 나선다. 전국, 아니 전 세계적으로 대구처럼 취약지대를 전수검사한 사례는 없다.

대규모 지역감염이 쏟아져 나왔음에도 정부와 시당국은 ‘강제적’ 도시봉쇄 조치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시민들의 ‘자발적’ 격리에 전적으로 의존했고, 이 전략은 성공을 거뒀다. 집안에 가두지 않아도 시민들은 방역당국의 통제에 질서정연하게 따랐다. 전시상황처럼 얼어붙은 미국 뉴욕, 이탈리아 밀라노 같은 유수 도시들과 비교하면 유례가 없는 일이다.

대구시청 인근 택시주차장에서 만난 택시기사 이모(66)씨는 이렇게 말했다. “인자 온데 소독약 뿌리고 손소독제 바르는 거는 생활습관 아인교. 차안에 손소독제 떨어지면 내 돈으로 사서 채웁니더.”

동구에 사는 시민 최모(41)씨는 “재택근무가 풀려 2주 전부터 출근한다”며 “건물에 들어갈 때마다 발열체크를 하는데 일상이 되니 되레 편하다”고 했다. 그는 “회사 근처 식당에 가면 테이블마다 칸막이가 쳐져 있는데, 없으면 이상할 것 같다“고도 했다.

긴장이 느슨해진 모습이 발견되기도 한다. 수성못 등 대구의 대표적인 명소에 사람들이 다시 북적이고, 번화가 주점에 사람들이 늘어서다.

시당국은 아직 감염 예방의 고삐를 풀어선 절대 안된다고 경고하고 있다. 달성군 제2미주병원, 한사랑요양원, 대실요양원 등 집단감염 징후가 다 해소되지 않았고, 해외입국자에 의한 바이러스 역유입도 경계해야 하기 때문이다.

“시민 여러분, 조금만 더 참읍시다.” 시청에서 만난 채홍호 행정부시장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막바지 고비를 더 잘 넘겨야 한다”고 했다.

대구=최일영 기자 mc102@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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