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나서 반갑습니다. 직접 한국어로 인사하고 싶었습니다.”

‘미움받을 용기’의 저자 기시미 이치로(64)를 최근 전화로 인터뷰했다. 행복하려면 남의 시선으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도록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라고 독려한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는 2014년 국내에 출간돼 지금까지 160만부가 팔렸다. 오스트리아의 정신의학자 알프레드 아들러의 심리학을 바탕으로 한 책은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51주 연속 1위라는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고, 알라딘에서는 20년간 가장 많이 팔린 책 2위에 오를 만큼 대단한 인기를 누렸다.

신간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를 펴낸 기시미 이치로. 19편의 한국영화 주인공들과 행복, 사랑, 가족 등 인생의 여러 문제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 형식의 책이다. 기시미 이치로 제공

2016년부터 한국어 공부를 시작했다는 기시미는 지난 2월 한국 독자들만을 위해 신간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를 출간할 정도로 한국에 대한 애정이 각별하다. 새 책은 19편의 한국영화 주인공들이 그에게 삶의 고민을 털어놓으며 상담을 청하는 형식이다. ‘리틀 포레스트’의 혜원(김태리)이 행복과 성공에 대해, ‘마더’의 혜자(김혜자)가 가족의 의미를 묻는다. 그의 한국어 선생님이자 도쿄예대 대학원에서 영화를 전공한 이환미씨가 함께 기획한 책으로, 인터뷰의 통역도 이씨가 맡았다.

“용기는 인생 대부분 문제 해결의 열쇠”

-코로나19 와중 어떻게 지내십니까? 한국에는 코로나19 때문에 우울감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저는 원래 집에서 글을 쓰고 외손녀를 돌보는 게 중요한 일과였는데, 외부 강연이 취소돼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더 많아졌습니다.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하거나 신경쓸 때 우울감이 오게 되죠.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구분해야 합니다. 위기상황일수록 오늘 하루를 무사히 보낸 것에 감사하고 기쁨을 느꼈으면 합니다. 오늘 하루는 오늘을 위해서 쓰고, 내일 일을 예상할 수 없다고 오늘을 불안 속에서 지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선생님의 책을 보면 미움받을 용기 외에도 ‘버텨내는 용기’ ‘행복해질 용기’ ‘늙어갈 용기’ ‘나답게 살 용기’ ‘나를 사랑할 용기’ 등이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많은 용기가 필요한가요?
“인생을 살아내면서 생기는 여러 문제와 과제를 마주할 용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계속 강조합니다. 인생 대부분의 문제는 타인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아들러의 분석입니다. 행복감도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느낄 수 있지요. 다른 사람에게서 상처 입는 것을 두려워하고, 인간관계 속으로 들어가려는 용기가 없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겁니다. 모든 문제를 용기로 해결할 수 있는 건 아니지만 인생에 접근하는 태도로써의 용기는 문제해결의 열쇠가 될 수 있지요.”


-코로나19 극복에는 어떤 용기가 필요할까요.
“과도하게 심각해지지 않을 용기라고 할까요. 진지하되 심각해지진 말자는 겁니다. 아들러는 제1차 세계대전 때 군의관으로 참전해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습니다. 그 경험을 통해 아들러가 내린 결론이 ‘공동체 감각’ 이론입니다. 내가 혼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과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타자가 적이 아니라 친구이자 동료라는 것입니다.

‘팬데믹’의 어원이 그리스어 ‘판데모스(pandemos)’인데, ‘모든 사람들’이라는 뜻이지요. 코로나19에 한 국가, 한 개인으로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세계인으로서 맞닥뜨려 싸워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봅니다. 지금까지는 서로 경쟁하며 살아왔지만 코로나 사태는 모든 인류가 국경을 넘어 함께 극복해야 하는 위기입니다.”

“능력이 부족한 게 아니라 용기가 부족한 것”

-아들러는 마음만 먹으면 성격, 인간관계, 인생까지도 바꿀 수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과거의 경험이나 외부 세계의 자극에 휘둘리는 연약한 존재가 아니다’라고 했고요. 인간을 과대평가하는 것은 아닌가요.
“사람이 변하지 않는다면 교육과 카운슬링 자체가 필요 없겠죠. 프로이드처럼 지금 문제의 원인이 과거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있다고 생각하면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가지 않는 한 문제를 바꿀 수 없으니, 괴로운 상황에서 벗어날 수도 없습니다. 부모가 가난해서, 어릴 때 아버지가 나를 때려서…. 태어나면서 주어진 것을 바꿀 수는 없지만 주어진 것을 이용하는 방법은 내 힘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우리는 능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용기가 부족한 겁니다.”


-용기를 내기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게는 뭐라고 이야기해주십니까.
“‘당신은 바뀌기 어려운 게 아니라 바뀌기 싫은 거네요’라고요. 카운슬링할 때도 실천을 주저하는 사람에게 앞으로 일주일간 한번만이라도 지금과 다른 행동을 해보라고 합니다. 한번도 시도하지 않으면 앞으로도 절대 못하겠지요. 그러나 한번 시도한 일은 두번세번 계속 할 수 있습니다.”

-선생님은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위해서 남에게 인정받으려는 ‘인정욕구’를 버리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SNS 때문에 타인의 시선이 전 세계로 확대되면서 그게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습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할지 신경 쓰다가는 내 인생을 살 수 없습니다. 내가 아무리 애써도 나를 미워하고 싫어하는 사람은 반드시 있게 마련입니다. 남을 신경 쓰다 보면 자기가 할 말까지 바뀌고 맙니다. SNS의 ‘좋아요’에 연연하면 ‘좋아요’가 달릴만한 말만 쓰게 되지 않습니까.”

“인생은 힘들어, 그렇다고 죽지는 말아줘”

-한국에서는 온라인에서 댓글로 공격받은 유명인들이 상처를 받고 목숨을 버리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제 SNS도 악플로 넘쳐났던 때가 있었습니다. 얼마 전 ‘인생은 힘들어, 그렇다고 죽지는 말아줘’라는 제목으로 책을 냈습니다. 같은 말을 해주고 싶습니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가족과 이웃에게 공헌하고 있는 거라는 걸 잊으면 안 됩니다. 댓글로 괴로움을 겪는 분들은 제게 메일을 주세요.”

-존재 자체가 공헌이라고요.
“공헌감은 내가 타인에게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감각입니다. 제가 13년 전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적이 있습니다. 중환자실에 누워만 있는 스스로가 아무 가치 없는 존재라고 여겨졌습니다. 그런데 어느날 제 가족이나 친구가 이렇게 쓰러졌다면 제발 살아있기만 해달라며 병원으로 달려왔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살아있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에게 기쁨이 되고 공헌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때 깨달았습니다. 특별한 일을 해야 공헌이고, 그래야 행복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 김태리. 기시미 이치로는 이 영화를 통해 ‘소확행’을 다루며 ‘작은 행복과 대비되는 큰 행복이란 없다’고 했다.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현재는 미래를 위한 리허설 아닌 행복을 누릴 본무대”

행복은 그의 주된 테마이다. 새 책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는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주인공을 통해 ‘소확행’을 다룬다. 배우 김태리가 연기하는 주인공은 공무원 시험에 떨어지자 고향으로 돌아와 안정을 찾는다. 그러면서도 마음은 늘 서울을 향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소확행에 대해 ‘작은 행복과 대비되는 큰 행복이란 없다. 큰 행복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행복이 아니라 성공이다’라고 썼다.

-‘소확행’에 대한 생각이 인상 깊었습니다.
“제게 인생의 목표가 뭐냐고 묻는다면 행복이라고 답합니다. 그런데 ‘미래’에 행복해지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서’ 행복해야 한다는 거지요. 저는 영화 속 주인공에게 시골에서 사는 게 서울로 돌아가기 위한 리허설이 아니라, 지금 현재가 본무대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굳이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시골에서 농사를 짓는 행복을 맛보는 것도 좋지 않겠어요? 일류 대학, 대기업에 취직하는 성공이 아니더라도 지금 이 자리에서 내가 행복하다고 느끼는 게 소확행 아닐까요. 일상의 소소한 행복이 중요하다는 것을 코로나19 때문에 점점 더 실감하게 됩니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의 한 장면. 메가박스㈜플러스엠 제공

“부모 병간호·육아 11년… 내겐 성공보다 가족”

기시미 이치로는 성공과는 관계없어 보이는 인생경로를 밟아왔다. 교토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마쳤지만 학위는 받지 못했다. 25세 때 어머니가 뇌경색으로 쓰러지면서 병간호를 위해 학업을 1년 중단했고, 결혼 후에는 7년 동안 남매의 육아를 맡았으며,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를 3년간 간병했다. 정규직이었던 적 없이 강의와 카운슬링을 하며 글을 쓴 끝에 독일 호주 프랑스 등 30여개국에 책이 출간된 베스트셀러 저자가 됐다. 인생은 하나의 선이 아닌 무수한 ‘지금’의 연속이고, 오늘 하루를 춤추듯 즐겁게 살다 보면 언젠가 원하는 삶을 살 수 있으리라던 아들러의 말을 자신의 삶으로 보여준 셈이다.

-가족을 위해 커리어를 희생한 측면이 있는데, 아쉽지 않으셨나요.
“젊을 때는 교수가 되고 싶었고 명예를 꿈꾸기도 했으니 처음엔 아쉬움이 컸지요. 철학자 미키 기요시는 ‘성공과 행복, 실패와 불행을 동일시하게 된 이후로 인간은 진정한 행복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없게 됐다’고 했습니다. 저는 성공을 추구한 사람이 아닙니다. 다른 아버지들은 아이가 제일 예쁠 때 회사에 있었지만 저는 그 시간을 아이들과 보냈고, 부모님의 마지막을 함께할 수 있었으니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기시미 이치로(오른쪽)와 '나쁜 기억을 지워드립니다'의 공동 기획자 이환미씨. 기시미 이치로 제공

“철학으로 사람과 세상 바꾸는 변혁가 꿈꿔”

-그럼 무엇을 목표로 하십니까?
“스티브 잡스가 매킨토시를 선보인 게 1984년이었나요? 철학가는 아날로그적일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저는 애플 초창기부터 컴퓨터로 글을 썼습니다. ‘컴퓨터는 모든 사람들의 것’이라는 잡스의 말에 공감했습니다. 저도 모든 사람을 위해 철학하는 사람이 되고자 했습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어려운 용어를 쓰는 철학자는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힘들어 하고 고민하는 사람들과 생각을 나누고, 사상으로 세계를 바꾸고 싶은 거지요.”

-잡스 같은 변혁가를 꿈꾼다는 말인가요?
“그렇습니다. 아들러 이론을 이해하면 사람들이 바뀌고, 사람들의 실천을 통해 사회가 바뀔 수 있습니다. 저는 아들러 심리학의 연구자가 아니라 실천가이고자 합니다.”

취미로 시작한 사진 찍는 재미에 푹 빠졌다는 기시미 이치로. 나이 예순에 시작한 한국어 공부도 그가 좋아하는 소설가 김연수의 에세이를 일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수준에 올랐다고 한다. “나이 든다고 현명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인간은 언제까지나 성장할 수 있는 존재이므로 계속 노력하려고 한다”고 했다. 기시미 이치로 제공

-마지막으로, 한국은 곧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습니다. 유권자들에게 외면 받는 출마자들이 많은데, 용기가 과한 사람들 같습니다.
“정치가는 미움받을 용기를 가져서는 안 됩니다. 자신과 다른 의견을 들어야 하고, 국민의 기대를 만족시켜야 하는 사람이니까요. 코로나19 사태에서는 상황을 정확하게 설명하고 어떤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을 제대로 얘기해야 합니다. 아베 총리는 그렇지 못하고 있죠. 제대로 된 기자회견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잘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 하는 건 자만심을 연출하는 것이고, 그 안에는 열등감이 자리잡고 있을 겁니다.

미움받을 용기가 필요한 쪽은 국민입니다. 정치가가 말한 것에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해야 하니까요. 일본 사회는 관료들이 정치인 눈치를 많이 봅니다. 관료들이 미움받을 용기를 가지고 의견을 주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까운 일이지요.”

-그럼 어떤 인물을 뽑아야 할까요.
“미움받을 용기가 미움받게 행동해도 괜찮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오해하는 사람들은 인생의 목표를 성공으로 잡은 사람들입니다. 아마 몇몇 후보들은 남보다 뛰어난 사람이 되고 싶고, 그것으로 인정받고 싶어하는 굴절된 인정욕구에 휩싸인 사람일 겁니다. 무엇 때문에 정치를 하려는지 알 수 없는 사람들을 가려내면 답이 나오지 않을까요.”

권혜숙 인터뷰전문기자 hskwon@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