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그냥 포르노가 아니다” n번방 방지 공약 먹힐까

이현숙 대표·서랑 활동가의 여야4당 디지털 성범죄 공약 평가

(좌)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 (우)‘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랑 활동가. 국민일보

최근 국민일보의 ‘n번방 추적기’를 통해 폭로돼 전 국민을 충격에 빠트린 텔레그램 n번방은 새로운 사건이 아니다. ‘박사방’ 조주빈 역시 마찬가지다. 인터넷 문화가 시작된 이래 소라넷, 다크웹, 웹하드 등을 거치며 변신을 거듭한 디지털 성범죄의 연장선에서 탄생한, 등장이 예고된 괴물이었다.

n번방의 충격파는 컸다. 정치권에서 쏟아진 각종 대책들만 봐도 알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미래통합당·정의당·국민의당은 4·15 총선을 앞두고 여성 표심을 잡을 n번방 근절 공약들을 앞다퉈 내걸었다. 하지만 쏟아지는 물량에 비해 제대로된 평가는 없었다. 정치권이 선거를 겨냥해 내놓은 진단과 처방은 과녁을 제대로 맞춘 것일까.

국민일보는 지난 8~9일 이틀에 걸쳐 ‘탁틴내일’의 이현숙 대표와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서랑 활동가를 만나 여야 4당의 디지털 성범죄 관련 공약에 대한 평가를 들었다.





n번방 등 디지털 성범죄가 발생하는 원인은

이현숙(숙): n번방 사건이 워낙 충격적이고 극악한 형태이긴 하지만 사실 유사한 범죄는 늘 있어왔다. 온라인상에서 아동들에 대한 성적인 착취는 오래 전부터 존재했고, 그런 범죄들이 철저하게 비밀이 보장되는 텔레그램의 조건과 맞아 떨어져 현재의 n번방 성착취가 생겼다. 성 착취 영상을 포르노 중의 하나라며 가볍게 생각하는 그릇된 문화가 있지 않나. 또 인터넷에서 여성들을 놀이의 도구로 삼는 문화들이 있고, 이런 환경이 디지털 성범죄를 확산시키는 데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서랑(서): 촬영을 이용한 성폭력이 새로운 주제는 아니다. 소라넷이나 웹하드 카르텔이라든지, 정준영 단톡방 사건, 다크웹, 그 다음 텔레그램 성착취까지 유사사건들이 계속적으로 반복돼왔다. 이런 사건들의 기저에는 불법촬영물을 보고 싶어하는, 그것을 갖고 싶어하고 소비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의 존재가 있다. 또 성 착취물을 소비하는 것을 당연시 여겨왔던 한국적인 문화가 있기 때문에 이런 일들이 반복된다고 생각한다.

피해는 심각한데 형량이 낮은 이유는

서: 2017년 당시 피해자 지원 활동을 할 때도 지금처럼 말도 안 되게 가벼운 형량들이 많았다. 지금은 예전보다는 낫다지만 아직도 굉장히 미약한 처벌 수준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디지털 성범죄 양형기준이 제대로 마련되지 않았다는 점이 가장 큰 원인인 것 같다. 하루빨리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숙: 디지털성범죄를 바라보는 인식 문제도 있다. 성착취물을 이용하는 사람들을 포르노를 본 사람으로 가볍게 생각을 한다든지, 물리적으로 폭력이 발생하지 않았기 때문에 피해가 덜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런 인식들이 n번방 사건을 통해서 많이 바뀌어야 한다. 또 가해자들에게는 높은 형량을 부과해 “함부로 하면 안 되는 범죄구나”라는 심각성을 일깨워줘야 한다.

여야4당의 디지털성범죄 관련 공약을 평가한다면

숙: 더불어민주당의 경우 디지털성범죄에 대한 근절 대책이 공약에 나름대로 잘 반영됐다고 생각한다. 정의당은 양적으로 많은 정책들을 제안하는 등 힘쓰고 있다. 눈에 띄는 건 국민의당의 ‘그루밍 방지조항 신설’과 ‘스위티프로젝트 추진’ 공약이다. 아동성범죄와 관련해서 그루밍을 범죄화한다는 점은 굉장히 중요하다. 그리고 범죄 모의 단계를 제대로 수사할 수 있게 위장수사(스위티프로젝트)도 전향적으로 검토하면 좋겠다. 반면 미래통합당의 경우 공약의 수도 제한적이고 그동안 나온 일반적인 이야기들이더라. 깊이 고민하지 않은 것 같다.

서: 여야4당이 공통적으로 내세운 ‘성착취 영상물 구매 소지 처벌 강화’ 공약이 눈여겨 볼만하다. 이는 21대 국회에서 꼭 이뤄내야 되는 주요 정책이다. 미래통합당의 ‘영상물 유포 협박 행위도 성폭력 처벌대상에 포함한다’는 공약도 중요하다. 현재 피해자들은 촬영물 유포 협박을 받아도 성폭력 피해자로서의 권리를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유포 협박을 한 것 자체로 성폭력 처벌 대상에 포함해야 한다. 다만 디지털 성폭력 이슈가 정책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지만 전반적으로 각 정당들 내부에서는 깊게 팔로우업되지 않은 것 같아서 아쉽다. n번방 사건을 계기로 앞으로 각 정당별로 중요한 이슈를 뽑아내고 이행 목표를 세울 수 있었으면 한다.

공약 중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숙: 좀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다. 현존하는 성폭력 법들은 과거의 오프라인 범죄를 중심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디지털 성범죄의 특성을 반영하기가 굉장히 어렵다. 이러한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 법률을 재정비했으면 좋겠다. 디지털 성범죄 전담 수사기구를 설치해 수사 인력이나 기술력을 확보하는 방안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

서: 실효성에 대한 부분이다. 미래통합당이 ‘초소형카메라 관리제 도입’을 내세웠는데 방향 자체는 동의하지만 실효성이 있으려면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초소형카메라 판매자 및 구매자 정보를 어떻게 관리감독할 것인지, 등록자 기준은 어떻게 만들 것인지 등 디테일이 필요하다. 더불어민주당의 ‘AI도입을 통한 영상물 삭제 정책’도 마찬가지다. AI를 도입하더라도 이 프로그램을 적용하겠다고 선택한 플랫폼에서만 작동되고 있다. 경찰 및 디지털 성착취물 삭제 지원 센터에서 일하는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많이 반영해 실효성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야 한다.

김유진 인턴기자, 영상=차인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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