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칸딘스키와 몬드리안 사이.’

빨강, 파랑, 노랑, 보라 등 원색의 선들이 무심하게 그어져 있다. 캔버스 가장자리를 둘러싼 회색 톤의 붓질도 무심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샌정, '무제', 2019년 작. 캔버스에 유채. OCI미술관 제공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작업하는 서양화가 샌정(57) 작가가 서울 종로구 OCI미술관에서 개인전 ‘베리 아트(very art)’를 갖고 있다. 전시장에 나온 작품들은 이 무심해 뵈는 원색 선들과 회색톤의 가장자리가 다양한 방식으로 조합돼 있다. 유화 물감을 사용했는데도 화선지에 그린 문인화 같다. 사대부가 그리는 문인화는 직업화가인 화원들의 정교한 그림과 달리, 내면을 표출하듯 마음 가는 대로 붓질한다. 일부러 서툴게도 그린다. 그런 동양화가 주는 무심함과 함께 작가 특유의 애틋함의 정서가 샌정의 작품에서 받는 인상이다.

작가는 화면에 최소한의 선만 긋는다. 때로는 사선으로, 때로는 원의 형태로, 때로는 네모 형태로 그은 선은 낙서처럼 불규칙하다. 그는 또 붓으로 칠하고 닦아내기를 반복하며 유화 물감이 만들어내는 두께를 거세한다. 여기서 추상화 작가 샌정만의 방식을 보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선과 도형, 색상으로 세상 풍경을 기본적인 요소를 추출하지만, 선의 불규칙성에서 오는 리듬감이 있다.

여기서 우리는 추상화 아버지로 불리는 몬드리안의 질서와 칸딘스키의 리듬을 동시에 떠올리게 된다. 최근 전시장에서 만난 작가는 “제 작품은 몬드리안과 칸딘스키 사이에 있다”고 요약했다. 그는 여기에 또 다른 전략을 구사한다. 바로 ‘마이너스의 붓질’이다. 그는 “유화는 일정한 두께로 물감을 칠해서 그림을 완성한다. 저는 그걸 원하지 않기에 마티에르가 느껴지기 전에 여러 번에 걸쳐 닦아낸다”면서 “그래선지 수묵화의 농담 같은 효과, 동양화의 대기감이 주는 효과가 나온다”고 했다.

말하자면 샌정의 추상화는 서양에서 발원한 추상화의 동양적 번안이라고 할 수 있다. 작가는 홍대 서양화과 출신으로 독일 뒤셀도르프 쿤스트아카데미에서 마이스터슐레(석사) 학위를 받았다. 전시는 5월 16일까지.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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