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자동차는 최근 일주일에 하루 정도 평택공장 1라인과 3라인을 세운다. 유럽에서 엔진 부품을 만드는 공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멈춘 탓에 부품 수급이 원활하지 않아서다. 앞서 코로나19가 중국에서 확산됐을 때는 와이어링(배선뭉치)을 제때 공급받지 못해 공장 가동에 어려움을 겪었다. 현대·기아자동차도 지난 2월 중국에서 부품을 공급받지 못해 생산에 차질을 겪었다. 쌍용차 관계자는 “자동차에 들어가는 부품이 수만개인데 어떤 자동차 회사도 스스로 부품을 100% 조달할 수는 없다”고 말했다.

글로벌 제조업체들은 이익 극대화를 위해 국제적 분업을 추구해왔다. 소재와 부품 조달부터 조립, 유통에 이르기까지 최소 비용으로 최고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곳에 일을 분산시키는 서플라이 체인(공급 사슬)을 구축했다.


코로나19 사태는 이러한 공급 사슬이 한순간에 무력화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전문가들은 코로나19 사태로 기업의 공급 사슬에 조정이 불가피해졌다고 말한다. 사람과 물자의 이동이 언제든 제한될 수 있는 상황에서 국제적 분업은 기업에 오히려 리스크가 될 가능성이 커졌다. 로빈 니블렛 영국 왕립국제문제연구소 소장은 지난달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폴리시에 “이제 세계는 ‘상호 이익을 증진하는 세계화’라는 신념을 다시 갖기 어려워진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이미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한다는 여론이 장거리 이동을 요하는 기업의 공급 사슬에 의문을 제기해왔다”고 했다.

공급 사슬의 약화는 20세기 후반부터 가속화된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가 후퇴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경제적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가치관에 변화가 있을 수 있다는 얘기도 된다. 코로나19 사태의 학습 효과로 안전과 환경의 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있다. 공급 사슬의 약화는 기업의 이익을 감소시켜 인원 감축과 연쇄 도산 등 경제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다만 고용 측면에서 긍정적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시각도 있다. 기업이 공급 사슬의 중심축을 해외에서 국내로 옮길 경우 해당 국가에서 일자리 증가를 기대할 수 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공급 사슬이 재편되면서 해외로 나갔던 공장들이 국내로 돌아오면 세계화로 생긴 소득 격차가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전 세계 공급 사슬이 바뀌면서 우리나라 산업 전반의 구조가 어떻게 바뀔 것인지에 관한 걱정도 있다”고 말했다.

경제 질서의 개편은 정치·외교 관계에도 영향을 미쳐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진행 중인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있다. 개방보다는 폐쇄에, 협력보다는 단절에 무게를 둔 새로운 국제 질서가 형성될 수 있다. 한국무역협회는 지난 1일 ‘코로나19 변수와 미국 통상정책의 향방’ 보고서를 내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중국 관련 안보 위협을 코로나19와 연계해 부각시키고 무역 장벽을 높이는 등 기존 보호무역 기조를 유지하는 데 총력을 다할 것으로 전망된다”고 밝혔다.

전망은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코로나19가 확산되자 3M과 GM 등 미국 기업에 국방물자생산법을 동원해 수출 제한을 명령했다. 자국 내 의료진과 응급요원에게 우선 필요한 장비를 제공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국경을 봉쇄하는 전략도 강화하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 10일 자신의 트위터에 멕시코 국경에 장벽을 짓는 사업을 언급하며 “중국 바이러스가 세계로 전파되면서 우리가 국경을 통제하면 미국은 기회를 갖게 될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보다 장벽이 필요한 순간”이라고 적었다. 그는 22일(현지시간) 미국으로의 이민을 일시 제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영국은 지난 1월 5G 사업에 중국 화웨이의 장비를 일부 허용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코로나19 확산 이후 이를 재고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지면서 번복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반면 위기에서 글로벌 연대가 중요하다는 목소리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코로나19의 빠른 확산은 오히려 세계가 긴밀히 연결돼 있음을 보여준다는 논리에서다. 코로나19 사태가 세계화의 방향 자체를 바꾸기 어려울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김중백 경희대 사회학과 교수는 “보호주의는 일부 우파 세력이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이며 고도로 연결된 현대 사회에서는 절대 세계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했다. 키쇼어 마부바니 싱가포르국립대 석좌교수도 최근 포린폴리시 글에서 “코로나19 사태는 미국 중심 세계화에서 중국 중심 세계화로의 이동을 가속할 뿐”이라고 말했다.

분명한 점은 세계 정치 질서에서 미국과 유럽의 영향력이 약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미국과 유럽의 코로나19 대응은 한국,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국가에 비해 미흡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위기가 계속될 경우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어느 정도 수용하는 ‘아시아 모델’의 매력이 커지게 된다. 미국의 여러 주와 이탈리아, 스페인 등은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특정 지역을 봉쇄하고 사람들의 이동을 제한했다. 아시아 모델을 일부 받아들였다고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한국의 의료 및 사회 체계에 관한 주목도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용석 카이스트 문술미래전략대학원 교수는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우리가 선진국이라고 생각했던 미국의 민낯이 확연하게 드러났다. 더 이상 선진국 따라가기가 아니라 우리가 무언가를 하면 선진국이 따라오는 국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 전문가 전망 ▒▒▒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장·전 외교부 차관
“‘세계 공장’ 중국 무너져…인간 안보 강조될 것”

글로벌 공급 사슬이 축소·재편되면서 세계 공장으로서의 중국은 급격하게 무너질 것이다. 각국은 협력을 통해 세계화의 이득을 나누기보다 마스크 같은 주요 재화를 직접 생산하고자 할 것이다. 달라진 국제질서 하에서 미국과 중국은 자신의 가치와 자원을 총동원해서 미래를 선점하려는 경쟁을 치열하게 벌일 수밖에 없다. 누가 기술적 우위를 바탕으로 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느냐가 중요한 포인트다. 보건·안전 이슈가 강조되면서 청와대는 전통적인 국가 안보뿐 아니라 인간 안보까지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 단기적으로는 국가 간 갈등이 심해지며 애국주의·국수주의가 득세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다시 협력하는 방향으로 조정될 것이라 본다.

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연구부장
“효율성과 세계화에 기반한 세계 경제 질서 재편…미국 쇠퇴할 수도”

효율성을 최고의 가치로 삼았던 세계 경제 질서가 코로나19로 심각한 타격을 받았다. 효율성에 기반해 세계화와 국제적 분업을 추동한 결과로 구축된 글로벌 가치 사슬(GVC)이 지역, 국가 차원으로 축소·재편될 것이다. 단순한 효율성보다는 감염병 같은 재난과 위기에 대응 가능한 복원력이 중요해질 수밖에 없다. 특히 마스크나 병상 같은 가치재의 중요성이 부각돼 국가가 적극적으로 공급에 나설 것이다. 각국이 고립주의와 보호주의를 앞세우면서 글로벌한 협력은 줄어들 전망이다. 특히 미국과 중국은 더욱 국경을 높이며 갈등을 심화할 것이다. 미국은 상대적으로 일찍 회복세에 접어든 중국을 압박하겠지만, 도리어 미국의 쇠퇴가 가속화될 수도 있다.

신광영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
“가치관 격변하며 환경·생태·안전 문제가 대두될 것”

매우 큰 가치관의 변화가 올 것이다. 지금까지 등한시됐던 생태, 건강, 안전 문제가 중요한 가치로 부각되면서 기존의 기후 변화와 생태계 파괴 문제가 본질적인 가치로 대두될 것이다. 경제 성장 위주 행위의 취약점이 논의되면서 세계를 움직이는 가치관이 크게 변화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는 미국과 유럽이 정치적, 경제적, 문화적으로 누리고 행사했던 힘이 급격히 약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면서 기존의 신자유주의적인 시장 중심의 통합이 가져온 한계에 관한 성찰이 이뤄질 것이고 방역 중심이나 안전을 모색하는 새로운 형태의 세계화가 대두될 수 있다.

홍성욱 서울대 생명과학부(과학사) 교수
“다른 종들과 공생 위해 삶의 형태 바뀔 듯”

중세 이후 유럽에 페스트가 돌면서 성곽 경비를 강화했는데, 페스트가 사라진 뒤에도 이 관습이 계속 이어졌다는 얘길 접한 적이 있다. 비슷한 상황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지금 대학이 원격 수업을 하고 있는데 이 중 일부가 계속 진행이 돼 원격 수업이 3분의 2, 강의실을 이용한 토론이 3분의 1로 변하면 지금과 같은 넓은 캠퍼스가 필요 없게 된다. 가장 중요한 가능성은 사람들이 동물과의 접점에 대해서 더 주목하고 다른 종들과 공생하는 방식으로 삶의 형태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덜 쓰고, 덜 죽이고, 덜 먹고, 덜 버리는 쪽으로 바뀐다는 것이다. 이는 자동적으로 되는 것은 아니고 이번 사태에서 교훈을 얻어 이런 방향으로 사회를 바꾸자는 합의가 있고 노력을 해야 가능하다.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spri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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