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형제복지원 운영자료집

부산시가 진행한 형제복지원 피해자 첫 공식 실태조사에서 형제복지원 수용 이후 산산조각 난 피해자들의 삶이 적나라하게 확인됐다. 끔찍한 과거는 평생을 발목 잡았다. 피해자들은 “내 자신이 깨져버려서 그게 너무 허망하다” “가정과 인생이 뒤죽박죽이 됐다”고 고백했다.

부산시 설문조사는 피해자 149명을 대상으로, 심층조사는 설문 참여자 21명과 정신병원 등 시설에서 생활하고 있는 재원 피해자 9명, 유가족 9명 등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조사 대상자 절반 이상이 1회 이상 자살을 시도했다. 평생 트라우마에 고통받다 극단적 선택으로 목숨을 잃은 사례도 여러 건 나타났다. 형제복지원 사건을 겪은 뒤 정신병원, 정신요양시설 등을 전전하는 등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다시 시설에서 여생을 보낸 피해자도 많았다. 형제복지원 퇴소 후 다시 43년간 정신요양시설에서 지낸 피해자도 있었다.

형제복지원에 수용됐던 피해자들은 가난의 굴레에 빠져 있었다. 응답자 절반 가까이인 45.0%(67명)가 현재 기초생활보장수급자인 것으로 파악됐다. 신청을 했다가 탈락한 경우까지 포함하면 53%에 달한다. 끔찍한 만행을 겪은 뒤에도 국가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 절망과 가난 속에 평생을 지낸 사람이 많다는 의미다.


복지원 이후에도 빈궁한 삶

피해자 31.3%는 ‘달방’으로 불리는 보증금 없는 월세 방에 살고 있었다. 이들을 포함해 55.1%가 월세 생활자였다. 조사자 32.6%는 지난 1년간 집세를 연체한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17.8%는 집세 미납으로 이사를 한 경험도 있었다. 13.4%는 고시원이나 쪽방 등 주택 이외 공간에서 거주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29.2%는 건강보험료 연체로 건강보험 자격이 정지된 경험을 토로했다.

피해자 32.9%는 현재 장애가 있다고 답했다. 복지원 입소 전 장애가 있었다고 답한 비율은 4.7%에 불과했다.

지금의 열악한 경제적 상황은 형제복지원 생활에서 비롯됐다는 게 연구팀 분석 결과다. 심층 면접에 응한 한 피해자는 “한창 배울 나이에 배우지 못한 게 한탄스럽다. 배움이라도 있었으면 이렇게 힘들게 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피해자도 “청소년 시기에 배운 게 없어서 할 수 있는 것들이 없었다. 도둑질을 하거나 교도소를 들락거렸다”고 했다.


구체적인 수용 경위는 경찰(56.4%), 형제복지원(16.1%), 모르는 사람(12.8%) 순으로 조사됐다. 대다수가 영문도 모른 채 경찰이나 기관 사람들에 의해 강제 수용된 것이다. 한 수용자는 “양부모님이 계신다고 했는데도 파출소 순경들이 막무가내로 끌고 갔다. 지금도 왜 나를 끌고 가는지, 나는 왜 따라 갔는지 도무지 모르겠다”고 떠올렸다. 또 다른 수용자는 “모르는 아저씨 둘이 와서 차에 싣고 가 버렸다. 내려 보니 형제복지원이었다”고 기억했다. 1차 수용기간은 평균 약 3년(1109.4일)이었다.

박숙경 경희대 후마니타스 칼리지 교수는 “조사를 마치고 부산역을 보는데 그곳이 괴물의 아가리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형제복지원 수용 기간 동안 사망자를 본 적이 있거나 사망 소식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는 응답률은 83.2%에 달했다. 한 참여자는 “시신을 매장한 것을 죽을 때까지 비밀로 해야 하며, 말이 밖으로 나올 시 손과 발을 자른다는 협박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어린 아동들에 대한 성학대도 만연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응답자의 58.4%가 성적 모욕을 겪었고, 33.6%는 성학대 위협을 당했다고 답했다. 성추행(38.3%)과 강간(24.8%)을 당했다는 응답도 많았다.


첫 공식조사지만 강제조사권 없어 한계도 노출

형제복지원 관련 진상규명은 줄곧 민간 차원에서만 이뤄져왔다. 그동안 피해자와 인권단체 등으로 구성된 형제복지원피해대책위원회에서 조사해왔지만, 공권력이 없어 정확한 피해 규모를 확인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번 연구는 부산시 차원에서 진행한 첫 공식조사로 ‘형제복지원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국가 책임을 묻기 위한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공식조사임에도 조사의 강제력이 없어 한계를 드러냈다. 수용자들의 전원 기록이 대표적이다. 연구팀은 형제복지원 이후 다른 시설로 전원 조치된 현황을 파악하고자 각 기관으로부터 제대로 된 답변을 듣지 못했다. 강제성 있는 조사의 근거가 될 수 있는 과거사법(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 기본법) 개정안이나 형제복지원 특별법 등 관련 법 논의는 진전이 없다. 20대 국회는 별 다른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음 달 임기를 마친다.

실태조사를 총괄한 남찬섭 동아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26일 “사망자에 대한 기록조차도 제대로 확보하기 어려운 게 현실”이라며 “하루빨리 국회에서 과거사법 개정안이 통과돼 온전한 진상규명을 위한 밑거름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웅빈 김판 임주언 박세원 기자 im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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