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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한 미술] 흉물 논란 딛고 100억대 복덩이로

9. 프랭크 스텔라 작 포스코센터 ‘꽃이 피는…’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센터 정문 앞에 설치된 프랭크 스텔라의 '아마벨'. 야간조명을 받아 거대한 붉은 장미가 활짝 피어난 것처럼 보인다. 포스코 제공

1996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포스코센터가 발칵 뒤집혔다. 포항제철(현 포스코)은 제철소가 있는 경북 포항 본사에 이어 서울에 제2사옥격인 포스코센터 신축을 마친 뒤였다. 그러곤 정문 앞에 야외 조각을 설치하기로 하고 국제적 명성이 있는 당시 60세의 미국 작가 프랭크 스텔라(Frank Stella․84)에게 작품 제작을 의뢰했다.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에 설치된 프랭크 스텔라의 '꽃이 피는 구조물- 아마벨'. 권현구 기자

작가에게 지급한 비용은 180만 달러(당시 환율 17억5000만원). 그때까지의 환경조각물로는 국내 최고가였다. 작가는 한국으로 재료를 공수해와 현장에서 작품을 제작했다. 그런데 도로 근처 사옥 앞에 야적해둔 스테인리스 스틸 재료를 고물상이 고철인 줄 알고 가져가 버린 것이 아닌가. 경찰이 긴급 수배에 나섰고, 용광로에서 녹아 없어질 운명에 처해지기 전에 되찾을 수 있었다.
'아마벨' 부분.

현장에서 제작한 ‘장소특정적 미술’

포스코센터 앞 프랭크 스텔라의 야외 조각 ‘꽃이 피는 구조물(Flowering Structure)’은 한국 공공 조각 흑역사의 상징이다. 공공미술이 어떠해야 하는지, 즉 예술이 미술관이 아닌 거리로 나왔을 때 대중과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에 대해 우리 사회가 처음으로 성찰하게 된 분기점이 된 작품이다.

최근 이곳을 찾았다. 가로 세로 높이 각 9m의 거대한 입방체 꽃 모양 구조물 밑으로 쓰윽 들어갔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고물 장수 일화가 떠올라서였다. 멀리서 보면 꽃의 형상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까이서 보면 부식되고 찌부러지고 구멍이 숭숭 뚫린 고철 덩어리 자체였다.

그러나 고철을 이어 붙여 만든 것 같은 이 작품은 실상은 작가가 스테인리스 스틸 주조법으로 수백 개의 주물을 뜬 뒤 조형미를 생각해서 정교하게 용접 접합해 만든 조각이다. 스테인리스 스틸은 무겁지만 강철과 달리 녹이 잘 슬지 않아 내구성이 강하다. 이 주물들이 연결되면서 만들어내는 조형적 긴장감은 작품에 생명을 불어넣는다. 그리하여 회오리치듯 거대한 꽃을 만들어낸 이 조각을 두고 미술평론가 성완경씨는 “마치 고목과도 같은, 혹은 다른 시간의 바다로부터 인양된 문명의 폐허 같은 고전적 깊이가 느껴진다”고 평한 바 있다.
프랭크 스텔라 '전설 속의 철의 섬-마르보티킨 둘다(Marbotikin Dulda)', 1997년 작, 캔버스에 아크릴릭, 1100x500cm.

스텔라의 작품은 포스코가 철을 다루는 기업이라는 점, 신축 유리 건물과의 조화 등을 고려한 이른바 ‘장소특정적 미술’이다. 작가는 작품이 제작되는 기간에 지인의 딸이 비행기 사고로 죽자 이를 추모해 비행기 부품의 일부를 작품 재료로 사용하기도 했다. 딸의 이름 아마벨을 작품 부제로 붙여 지금은 아마벨이란 이름으로 더 알려져 있다. 작품 속에는 인간의 삶과 죽음에 대한 통찰, 휴머니즘이 녹아 있기도 한 것이다.

공공미술 흑역사의 아이콘

당시 세계철강협회(WSA) 회장사였던 포스코는 국제적 기업으로서의 위상과 최첨단 인텔리전트 빌딩 이미지에 부합하는 야외 조각을 할 작가로 스텔라를 낙점했다. 스텔라는 앞서 1993년 일본 후쿠오카현 신일본제철의 야하타제철소에 높이 5m에 달하는 비슷한 구조물을 세운 게 크게 작용했다. 그는 한 해 전에는 룩셈부르크의 하이포 은행에도 비슷한 조형물을 제작한 바 있다.
프랭크 스텔라. 리안갤러리 제공

스텔라는 미니멀리즘 회화의 선구자다. 처음엔 잭슨 폴록의 추상표현주의에 영향을 받았으나 점차 벗어나서 캔버스 화면에서 어떤 이미지도 떠올리게 하지 않는 이른바 ‘검은 회화’를 창안했다. ‘변형 캔버스 회화('U'자, 'T'자 등 다양한 모양의 캔버스에 그린 회화)’ ‘부조 회화’ 등 회화의 영역을 확장하는 다양한 작업을 통해 현대미술사에 획을 그었다. 최태만 국민대교수는 “아마벨 같은 입방체 조각은 스텔라의 작업 세계에서 전환이 된 중요한 작업”이라고 평가했다. 중견 조각가인 정현 홍익대 교수는 “한국에서 빌딩 밖에 나와 있는 공공 미술 가운데 최고”라고 평했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미술계의 평가일 뿐이었다. 그가 세계적인 작가이거나 말거나 대중은 ‘고철 덩어리로 만든 흉물’ ‘혐오감을 준다’ 등 비난을 퍼부었다.

외환위기 당시인 1998년 12월 김대중 정부의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포스코로부터 업무보고를 받을 때 고가 매입이라며 추궁하기도 했다. 이걸 신호탄으로 이듬해 내내 흉물 논란에 시달렸다. 급기야 포스코는 작가와의 협의 끝에 작품을 현 위치에서 철거하기로 결정했다. 포스코는 서울시의 건축물미술장식제도 1%법과 상관없이 거액을 투자해 조각품을 설치했지만, 여론의 뭇매에 두 손을 들었던 것이다.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야외 조각 공원으로 이전하는 방안도 흘러나왔다.

공공미술은 어떻게 대중과 소통해야 하는가

철거 방침이 알려지자 격렬한 찬반 논쟁이 벌어졌다. 한 미술 평론가는 모 신문에 기고한 글에서 “흉물스럽다는 것은 정직한 느낌일 것이다. 조형물은 미술계 관계자가 아니라 사회와 대중을 배려해야 한다”며 철거를 주장했다.

성완경씨는 “졸속퇴출은 위험한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그는 “대중이 이해하기 쉬운 내용의 상투적인 조형물보다는 그 형식과 내용이 심오하고 미학적으로 진지한 작품”이라며 철거 신중론을 주문했다. 이 작품은 작가가 아마벨 설치 후인 1997년 로비 2층에 제작한 가로 11m 대형 회화 ‘마르보티킨 둘다(Marbotikin Dulda, 전설 속의 철의 섬)’과 대구를 이루는 것이라며 철거하려면 이것도 옮겨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목할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절차적인 문제를 지적한 대목은 중요하다. 성씨는 애초 공공적 논의를 배제한 것이 화를 자초했다고 강조했다. 또한 포스코가 작품 설치 후 재산적, 물리적 관리는 했을지라도 작품이 대중에게 사랑받을 수 있도록 홍보, 교육, 이벤트 등 문화적 관리를 위한 노력을 게을리해온 점을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논란 끝에 아마벨은 살아남았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은 테헤란로의 명품 공공미술로 인식되고 있다. 그 사이 포스코가 기울인 노력이 일조했다. 포스코는 2012년부터 조형물에 야간 조명을 투사해 아마벨이 밤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2010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에 현대미술 작가들을 초청해 야외 조각 전시를 했다. 2011년 한 작가가 아마벨을 스크린 삼아 영상을 투사한 작업을 선보였는데, 이것이 호평을 받은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야간 조명을 받은 아마벨을 찍은 사진은 블로그 여기저기에서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흉물 논란을 딛고 대중의 사람을 받는 야외 조각으로 거듭난 것이다.

역사상 이름 있는 조각가의 작품이 흉물 논란에 시달린 것은 서구에서도 있었다. 프랑스 조각가 오귀스트 로댕이 문학의 거장 오노레 드 발자크를 형상화한 ‘발자크상’도 그로테스크한 형상 때문에 수모를 겪었다. 1898년 이 기념상의 모형이 전시됐을 때 주문자인 프랑스문학가협회가 이를 거부해 파리시는 원래 세우기로 했던 장소였던 루브르 궁전 옆 광장에 놓는 것을 취소해야만 했다. 1981년에는 미국의 미니멀리즘 조각가 리처드 세라가 뉴욕시에 세운 조각품 ‘기울어진 호’가 소송 끝에 철거․폐기되기도 했다.

공공 조각물을 둘러싸고 예술성과 대중성 사이에서 갈등은 늘 있다. 아마벨 흉물 논란은 애물단지는 아마벨이 아니라 공공미술 전반임을 한국 미술계에 호소한 사건이었다. 흉물 지탄을 받은 아마벨이 한국 사회에 끼친 가장 큰 기여는 현대미술 작품은 아름답지 않다는 걸 대중에게 인식시킨 데 있다. 우리는 일그러진 것에서도 어떤 숭고한 감동을 느낀다. 현재 가치와 관련, A갤러리 대표는 “신작 3∼4m 조각이 400만 달러한다. 아마벨은 높이가 9m로 배가 넘는데다 구작이니 100억원 대는 족히 할 것”이라고 말했다. 포스코의 복덩이가 됐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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