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검열(조선 시대 역사의 기록과 왕명의 대필을 맡았던 정9품 관직)에 임명되었을 때 두창이 한양에 널리 퍼져 있었으므로 당초에 네가 병들었다고 올라오지 못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왕명이 집에 도착했는데 병을 핑계로 마음대로 편한 대로 한다는 것이 분수와 의리 면에서 바르지 못한 것 같았다. (중략) 나는 너를 잃고 난 이후 인간세상에 아무런 미련이 없구나.” (정경세, '우복집' 중)

조선 시대에도 역병은 창궐했다. 가장 무서운 건 온역(티푸스성 감염병), 홍역, 두창(천연두) 세 가지였다. 특히 두창은 1879년 지석영이 일본에서 천연두 치료제인 종두법을 배워와 보급할 때까지 내내 선조들을 괴롭힌 질병이었다.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역병을 이겨냈을까. 특히 국가는 재앙에 어떻게 대처했을까. 국립중앙박물관이 긴급 기획한 테마전 ‘조선, 역병에 맞서다’에서 그 답을 찾아볼 수 있다.

홍역과 천연두 구분한 것은 정조 때 와서야!

조선 중기 판서를 지낸 정경세가 두창으로 죽은 아들을 애도하는 제문을 비롯해 두창으로 죽은 동생을 기리는 제문, 아이들이 두창에서 회복된 것을 기뻐한 시 등의 문헌 자료를 통해 역병 때문에 울고 웃었던 조선 시대의 삶을 들여다볼 수 있다.

영조 50년인 1774년. 현직 관리를 대상으로 한 특별시험 ‘등준시무과’ 합격생 18명의 초상화를 담은 ‘등준시무과도상첩’이 제작됐다. 얼굴이 실린 18명 중 3명에게 마마 자국으로 불렸던 천연두 흉터가 있다. 그만큼 천연두는 조선 시대 내내 사람들을 괴롭혔고 살아남아도 그 흔적을 얼굴에 간직해야 했다.
'등준시무과도상첩' 속 김상옥 초상화(부분). 얼굴에 천연두로 인한 곰보 자국이 그대로 표현돼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그런 천연두와 홍역이 전혀 다른 질병임이 밝혀진 것은 18세기 정조 때 와서였다. 정조는 홍역으로 왕세자를 잃었다. 그런 개인적인 아픔까지 겹치며 국가적 차원에서 질병 분석 노력이 있었고, 그 결과 증상이 비슷했던 홍역을 마진(麻疹), 천연두를 마마(媽媽)로 구분할 수 있기에 이르렀다. 또 정조는 어의 강명길에게 명해 이런 성과를 총정리한 종합 의서 ‘제중신편’을 편찬하게 했다. 제중신편은 전염병 별로 증상 등을 기록했는데, 천연두는 ‘마진 편’에 수록됐다.

과학 정신으로 무장했던 실학자 관료들도 질병 연구에 힘을 보탰다. 정조의 총애를 받았던 정약용이 대표적이다. 정약용은 본인 스스로 홍역을 앓았고, 또 두 아들을 두창으로 잃었다. 그러나 슬픔을 슬픔으로만 흘려보내지 않고, 질병을 연구해 1798년 ‘마진( 홍역)에 관한 의서를 편찬했다. 이 책은 우리나라 마진학의 최고봉이라는 평을 듣는다.

정경세가 아들을 잃고 쓴 제문에선 소명 의식과 개인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하는 공직자의 모습을 훔쳐볼 수 있다. 결국, 공직자로서의 본분을 다한 끝에 그의 아들은 목숨을 잃었다. 코로나19사태가 장기화하는 가운데 휴일도 없이 일하는 의료진의 헌신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 시대에도 질병 매뉴얼 있었다

흥미로운 것은 조선 시대에도 질병 매뉴얼은 있었다는 사실이다. 1613년 광해군의 명으로 허준은 ‘신찬벽온방’(보물 1087호)이라는 의서를 편찬했다. 이 책은 1612년부터 10여 년에 걸쳐 온역이 창궐하자 조정에서 백성에게 보급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지침서다. 온역에 걸리면 어떤 증상이 있는지, 어떻게 섭생을 해야 하는지, 이웃에 전염을 막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방역 수칙이 담겨 있다.
'신찬벽온방'. 국립중앙박물관 제공

질병으로 부모를 잃은 어린이들을 취한 국가적 구제 제도도 있었다. 정조 7년인 1783년에는 흉년과 전염병으로 버려진 아이들에 대한 긴급 구호명령인 ‘자휼전칙(字恤典則)’이 제정됐다. 예컨대, 행걸아는 진휼청(賑恤廳)에서 구호해 옷을 주고 병을 고쳐주어야 하며, 날마다 1인당 정해진 분량의 쌀·간장·미역을 지급하게 하였던 것이다. 이런 제도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을 줄이고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정부가 전 국민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한 조처를 연상시킨다.

전시를 기획한 유새롬 학예사는 “코로나19가 주는 공포는 무엇보다 백신이 개발되지 않아 예방법과 치료제가 없다는 데서 온다. 지금은 아무것도 아닌 홍역, 천연두 등이 조선 시대에는 그런 질병이었다”면서 “전염병의 공포에 맞서 개인뿐 아니라 국가가 나서 공동체가 함께 극복했다는 사실은 코로나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던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손영옥 미술·문화재전문기자 yosoh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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