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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만원이면 어때, 난 행복한 걸!” 샤넬런의 소비심리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의 가격 인상 소식에 지난 13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백화점 본점 명품관 앞에 샤넬백을 구매하려는 시민들이 줄을 서고 있다. 연합뉴스

아이 둘을 키우며 직장에 다니는 이모(37)씨는 지난 12일 6시간 대기 끝에 오래전부터 마음에 담아뒀던 샤넬백을 구매했다. 이달 초 황금연휴 기간에 이틀을 추가 근무했던 이씨는 ‘오픈런’(매장이 오픈하자마자 뛰어가 줄을 서는 것)에 동참하기 위해 하루 휴가를 냈다. 이씨는 “평소 제가 아이들 위주로 소비하는 걸 잘 아는 남편이 ‘갖고 싶었던 걸 용돈 모아 사면서 다른 사람 눈치 보지 말라’고 하더라”며 “더 비싸지기 전에 얼른 가서 사라고 해서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다”고 말했다.

‘샤넬 오픈런’이 최근 온·오프라인을 뜨겁게 달궜다. ‘샤넬런’으로 요약되는 이 현상은 지난 14일 프랑스 명품 브랜드 샤넬이 주요 제품 가격을 인상한다는 소문이 돌면서 벌어졌다. 가격이 오르기 전에 샤넬백을 사려는 소비자들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으로 사회적 거리두기가 한창인 상황에서도 백화점 오픈 시간 전부터 길게 줄을 서면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기도 했다.

2030이 명품을 사는 이유…과시 아닌 ‘자기만족’

최소 500만~600만원에 판매되는 샤넬백을 사기 위해 오랜 시간 기다림을 마다않고 오픈런을 하는 2030세대를 보며 ‘사치스럽다’며 비판하는 의견이 적잖았다. 하지만 유통업계에서는 ‘합리적인 소비 행태’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IT기업에서 근무하는 김모(29)씨는 소소하게 명품을 사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 김씨가 사는 품목은 액세서리, 스카프, 지갑, 신발 등이다. 한참 바쁠 시기엔 집과 회사 외에는 갈 곳이 없는 김씨가 명품을 사는 건 ‘과시욕’ 때문은 아니다. 김씨는 “누구에게 보여주려고 명품을 사는 게 아니다”며 “하루의 12~18시간을 회사에서 일하면서 보내는데 소소한 즐거움이 필요하다. 나에게는 그게 명품”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가치소비’에 의미를 두는 MZ세대(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Z세대를 통칭)의 특성이 나타난 소비 행태라고 분석하기도 한다. 주어진 예산 안에서 식비나 의류, 잡화 등엔 가성비를 따지며 소비를 줄이고, 명품백처럼 가치를 두는 제품엔 아낌없이 투자하는 ‘자기만족적 소비 행태’가 나타난다는 설명이다.

이런 소비 트렌드는 몇 년을 거쳐 견고해지다가 코로나19를 계기로 명확해지고 있다. 고인곤 강남대 글로벌경영학과 교수는 “모든 소비자는 복수의 의사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다. 상황에 따라 별도의 체계를 발동시킨다”며 “지난해부터 경기가 좋지 않았는데 코로나19를 계기로 더욱 경기가 나빠지면서 양극화된 소비행태가 더욱 명확하게 드러난 것”이라고 설명했다. 경기가 악화되면서 줄어든 예산을 나름대로 합리적으로 사용하려다 보니 가성비를 따지는 소비와 명품을 구매하는 ‘플렉스’(FLEX·많은 돈을 쓰면서 자랑한다는 뜻의 신조어)가 동시에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다만 MZ세대는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명품 가운데서도 형편에 맞게끔 비교적 저렴한 상품군을 사는 경향을 보이고 있다. 롯데멤버스가 지난해 말 발표한 ‘트렌드Y 리포트’에 따르면 20대의 명품 구매 건수는 2019년 3분기에 2017년 동기 대비 7.5배 급증했다. 구체적인 내역을 보면 이들의 소비가 ‘무리’가 아니라는 것도 알 수 있다. 반지갑(34.2%), 카드지갑(25.1%), 운동화(23.1%) 등 비교적 저렴한 상품을 주로 구매해 작은 명품을 사고 만족감을 느끼는 것으로 확인됐다. 전형적인 ‘가심비’ 소비다.


명품도 사지만 가성비도 따진다

MZ세대는 유행에 민감한 의류, 잡화 등은 최대한의 가성비를 따져 구매하는 성향이 있다. 앞선 리포트에 따르면 20대 명품 구매자들은 명품을 구매하면서도 가격이 저렴한 제조·직매형 의류(SPA) 브랜드를 함께 착용했다. 의류와 잡화 등을 저렴한 가격에 파는 온라인 쇼핑몰들을 한 곳에 모아 보여주는 ‘에이블리’ ‘지그재그’ 등의 애플리케이션(앱)이 고공행진을 이어가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볼 수 있다.

에이블리에서는 정장세트 3만9800원, 트렌치코트 2만9900원, 가방을 1만9700원에 구매할 수 있다. 모바일 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아이지에이웍스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에이블리 앱 방문자가 역대 최고치인 130만명을 돌파하고, 코로나19가 발생한 지난 1~2월에도 130만명 내외를 유지했다. 또 최근 여성 쇼핑몰 모음 서비스 지그재그가 국내 패션 앱 최초로 누적 다운로드 2000만회를 기록했다. 값비싼 명품과 저렴한 의류 및 잡화의 구매가 동시에 이뤄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MZ세대의 ‘나심비’(나의 심리적 만족을 위한 소비) 경향과 ‘플렉스’ 문화의 영향이라고 분석한다. 플렉스하며 심리적 만족을 느낄 수 있는 소비를 위해 다른 쪽에서는 기꺼이 가성비를 따져가며 아낀다는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 역시 온·오프라인 패션 시장에서 펼쳐지고 있는 ‘소비 양극화’가 단순한 트렌드에 멈추지는 않을 것으로 내다본다. 한 업계 관계자는 “브랜드의 가치소비를 중시하는 명품 소비와 빠른 트렌드를 즐기는 일반 소비 양대 축을 중심으로 패션 시장이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업계의 또 다른 관계자는 “패션 소비의 양극화를 소득의 양극화와 연관지어 보는 건 지나친 발상”이라며 “지금은 버는 대로 쓰는 시대가 아니라 쓰고 싶은 걸 형편껏 쓰는 시대다. 소비의 양극화는 그런 면에서 대중적인 마케팅 전략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진영 문수정 기자 yo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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