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으로 예방백신과 치료제 등 신종 감염병 연구개발(R&D)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다.
국제 공중보건 위기 상황에서 지속 가능한 감염병 연구를 위한 든든한 돈줄이 되고 있는 글로벌연구기금에 대한 관심도 높아졌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과 노르웨이 일본 독일 등이 기금을 출연해 2017년 세운 전염병대비혁신연합(CEPI)이 대표적이다. CEPI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에서 백신 개발을 주도하고 있다. 직접 연구를 수행하기보다는 적합한 연구기관이나 기업에 자금을 후원한다.

우리나라에도 CEPI와 비슷한 일을 하는 민관협력 연구기금이 있다. ‘라이트 펀드(RIGHT: Research investment in Global Health Technology fund)’가 그것이다. 한국 정부와 5개 국내 생명과학기업, 그리고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참여해 2018년 7월 설립했다.

서울대 캠퍼스 내 국제백신연구소(IVI) 건물에 입주해 있는 라이트펀드의 문창진(사진) 이사장을 최근 만나 코로나19 현황과 감염병 연구 지원에 대해 들어봤다. 문 이사장은 보건복지부 차관과 식품의약품안전청장(2006~2007년)을 지내고 라이트펀드 초대 이사장을 맡고 있다.

문 이사장은 “중국에서 발원해 미국 유럽을 휩쓴 코로나19가 아프리카와 남미로 옮겨가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 코로나19가 통제되지 않으면 결국 부메랑이 돼 돌아올 것”이라며 “개발도상국의 감염병 통제를 돕는 게 선진국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또 “올해 코로나19를 포함한 신종 및 풍토성 감염병 연구에 최소 100억원을 지원할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감염병 연구기금 왜 필요한가.
“코로나19 사태에서 보듯 감염병 대응 기술은 필수적이나 대부분 기업이 적극적으로 연구개발에 나서지 않는다. 유행이 끝나면 시장성이 사라지기 때문에 연구개발 의지가 옅어진다. 감염병 치료제는 전체 신약 개발의 약 1%에 그친다는 연구결과가 이를 뒷받침한다. 감염병 치료제도 고혈압 당뇨 암 등 비감염성 질환 치료제와 마찬가지로 연구개발에만 10년 이상, 수억 달러의 비용이 소요된다. 기업이 상업성을 확보하지 못해 감염병 대응 기술 연구에 자금을 쏟기 어렵다면, (국제)사회가 같이 그 책임을 나눌 필요가 있다. 라이트펀드나 CEPI 같은 글로벌 민관협력기금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로 지속적인 감염병 연구의 중요성이 커졌다.
“코로나19 이후에도 새로운 감염병이 다시금 닥칠 수 있다. 그에 맞서기 위한 정부의 예산은 그때 그때 시류를 많이 탄다. 확 늘어날 수도, 0원이 될 수 도 있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이 가능한 안정적 기금이 있어야 한다. 한국이 감염병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게 라이트펀드는 감염병 연구가 멈추지 않고 지속해 나갈 수 있게 하는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라이트펀드는 무슨 일하나. 7월이면 설립 2돌을 맞는데.
“라이트펀드는 보건복지부와 5개 생명과학기업(SK바이오사이언스, LG화학, GC녹십자, 종근당, 제넥신),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공동 출자해 설립한 국제민관협력 비영리재단이다. 국제백신연구소도 재단 설립에 기여했다.
개도국의 감염병 문제 해결이 주요 목표다. 2018년부터 2022년까지 500억원(매년 100억씩)을 지원한다. 복지부 50%, 5개 기업 25%,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이 25%를 부담한다. 한국의 우수한 보건의료 R&D기술을 활용해 개도국에서 발생하는 감염병의 치료제, 백신, 진단기기 개발을 지원한다. 아울러 한국의 감염병 대응 역량 강화와 국가 이미지 제고, 국내 기업의 국제 보건시장 진출 확대에도 기여한다. 코로나19로 세계적 주목을 받은 ‘K-방역’을 개도국 공적원조개발사업(ODA)의 한 형태로 지원할 수 있다.”

-CEPI와 비슷한 일을 하는 것 같다.
“인류가 감염병에 대응할 기술을 개발하는데 연구기금을 지원한다는 면에서 유사하다. CEPI는 전세계에서 코로나19 같은 감염병 유행을 예방할 백신 R&D에 기금 지원을 집중한다. 라이트펀드는 백신을 비롯해 치료제, 진단장비 개발에도 기금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신종 감염병은 의료자원이 부족한 저개발국에 치명적이기 때문에 더 시급히 풀어야 할 숙제다.”

-빌게이츠재단이 공동 출자해 이목이 집중됐다.
“빌&멜린다게이츠재단은 국제 보건의료 확대와 빈곤 퇴치를 목적으로 운영된다. 한국의 우수한 R&D 역량을 바탕으로 개도국의 질병 퇴치에 기여하기 위해 투자를 결정한 걸로 알고 있다. 감염병으로 고통받는 개도국 국민들의 삶에 실질적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데 한국 정부와 뜻을 같이 했다고 본다. 라이트펀드가 글로벌 공중보건 향상에 기여할 모델이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 것 같다.”

-최근 지원액을 배 이상 늘리겠다고 했는데.
“지난 4월 중순 빌 게이츠 재단 이사장이 문재인 대통령과 전화통화에서 라이트펀드의 지원 금액을 배 이상으로 늘리겠다고 했다. 게이츠 이사장이 코로나19에 대응하는 한국의 방역 역량, 이른바 ‘K-방역’에 깊은 인상을 받은 것 같다. 한국이 코로나19에 잘 대처하고 다른 나라에도 교훈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이다. 코로나19로 감염병 대응의 시급성을 느꼈고 한국의 잠재력을 그만큼 높이 평가한 것 같다. 전화통화 이후 한국 정부와 게이츠재단이 대화 채널을 열어놓고 증액 관련 후속 작업을 진행하는 걸로 안다.”

-올해 연구 지원 달라지는 게 있나.
“지금까지는 우리 생명과학기업의 강점인 의약품 제형 개발과 제조 기술 등 중대형 R&D과제에 기금을 집중 지원해 왔다. 말라리아, 결핵, 에이즈(HIV), 장티푸스, 콜레라, 뇌수막염, 하부호흡기감염질환(LRIs), 소외 열대질환(NTD)을 포함한 전염성 질환의 감염, 진행, 확산을 방지하고 완화하기 위한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치료제, 백신, 진단키트 개발이다.
올해는 코로나19를 포함한 신종 및 풍토성 감염병 연구를 위한 단기간의 소규모 과제 지원에 최소 100억원의 기금을 지원할 계획이다. 3월에 1차 공모를 시작해 심사가 진행 중이다. 공모 제안서 중 코로나19 관련 연구가 전체의 60%에 달했다. 백신 개발 프로젝트가 전체의 83%, 치료제 75%, 진단기기가 42%를 차지했다. 관련 연구가 원활히 진행될 수 있도록 발 빠른 심사와 지원을 해 나가겠다. 투자와 관련된 모든 결정은 개도국의 공중보건 향상과 성공 가능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할 것이다.”

-기금 규모가 아직은 작은데.
“감염병이 발생했을 때의 경제적 타격을 감안하면 생명과학기업 이외 기업들도 감염병 연구에 기금을 지원해 미래 경제 위기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필요가 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로 항공업계 등 산업 전반에 악영향을 받고 있다.
빌 게이츠재단이 일본 정부와 2015년 조성한 글로벌헬스기술진흥기금(GHIT)에는 제약기업 뿐 아니라 항공, IT기업 등의 후원이 많이 이뤄지고 있다. 1000억원으로 시작한 펀드 규모는 5년 만에 2120억원으로 늘어났다. 라이트펀드에도 이런 비생명과학기업들의 후원 참여가 절실하다. ”

-선진국간 백신·치료제 개발 경쟁이 심하다.
“미국과 중국, 유럽 등 선진국 중심으로 코로나19 백신과 치료제 개발이 유래없이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지만 실제 언제가 될지, 상용화 시기도 예측이 힘들다. 백신과 치료제가 개발되면 접근성 문제로 인한 건강 불평등과 인권 이슈가 부각될 것이다. 특히 개도국은 높은 가격으로 인해 공급에 어려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빌 게이츠가 얘기했듯이 백신은 글로벌 공공재로 전 세계에 동등하게 공급돼야 한다. 특히 개도국에 저가 공급을 위한 글로벌 협력과 연대가 어느 때 보다 필요하다.”

민태원 의학전문기자 twmi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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