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열린 리처드 용재 오닐과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공연은 국내 처음으로 무대 위 거리두기가 적용됐다. 다만 출연자가 13명이어서 무대 활용에 문제는 없었다. 크레디아tv 유튜브 동영상 캡처

서울시향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감염 확산 억제를 위해 국내 오케스트라 최초로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한다. 서울시향은 오는 29일 오스모 벤스케 음악감독이 지휘하는 무관중 온라인 공연에서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무대에 서는 단원의 수가 평소의 절반인 50명 아래로 줄어드는 만큼 프로그램 역시 변경될 예정이다. 한국 클래식계를 대표하는 오케스트라인 서울시향의 이번 조치는 공연 취소에 이어 ‘객석 거리두기’로 수익을 낼 수 없어 휘청대는 국내 공연계에 새로운 파장을 일으킬 전망이다.

지난 22일 관객이 입장한 상황에서 진행된 비올리스트 리처드 용재 오닐 리사이틀 ‘당신을 위한 기도’는 국내 클래식계에서 처음으로 무대 위 거리두기가 적용된 콘서트다. 하지만 오닐과 함께 출연한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 멤버의 수가 12명이어서 무대 위 거리두기에 따른 프로그램 변경은 필요하지 않았다.

무대 위 거리두기는 공연장에서 관객 간 거리를 두기 위해 좌석을 지그재그로 활용하는 것처럼 연주자들 사이에 일정한 거리를 두는 것이다. 코로나19 방역에 성공적인 편인 한국에서는 질병관리본부의 ‘생활 속 거리두기’ 실천 행동수칙으로 공연장의 좌석 거리두기 규정을 권고하고 있지만 무대 위 거리두기에 대해서는 아예 언급이 없다. 하지만 합창단의 집단감염이 발생하고 오케스트라 단원 가운데 사망자가 나왔던 구미에서는 무대 위 거리두기에도 엄격하다.

독일 보건당국은 앞서 오페라나 뮤지컬 등의 반주를 위해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비좁게 앉을 수 밖에 없는 무대 아래 오케스트라 피트를 아예 사용하지 말 것과 무대 위에서 단원(연주자) 간 간격을 1.5~2m 유지하면서 악보 보면대를 혼자 사용하라고 권유했다. 또 비말이 많이 튀는 성악가를 비롯해 관악기 단원들은 다른 단원들로부터 5m 이상 떨어지는 것은 물론 악기 주변에 덮개를 둘 것을 권고했다. 물론 단원들이 무대에 오르지 않을 때 마스크 착용은 필수다.

서울시향의 이번 무대 위 거리두기는 벤스케 감독의 강력한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미네소타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인 벤스케 감독은 29일 정기공연을 앞두고 미국에서 내한해 2주간의 자가격리를 막 끝낸 상태다. 당초 관객이 입장하는 대면공연으로 기획했던 29일 정기공연은 최근 이태원 클럽발 코로나19 확산 사태에 비대면 온라인 공연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당초 프로그램인 엘가의 ‘수수께끼 변주곡’, 힌데미트의 ‘베버 주제에 의한 변용’, 본 윌리엄스의 ‘탈리스 주제에 의한 환상곡’ 등도 전면 재조정하기로 결정했다.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하면 무대에 서는 연주자 숫자가 제한되기 때문에 선보일 수 있는 곡 역시 한정된다. 예를 들어 교향곡의 경우 50명 안팎이면 충분한 모차르트나 하이든의 작품은 괜찮지만 100명 정도가 필요한 말러나 차이콥스키 등은 불가능하다. 서울시향은 소규모 편성 곡으로 교체한 29일 공연의 프로그램을 곧 발표할 계획이다.

방역당국의 세부지침이 없는 상황에서 서울시향이 무대 위 단원 간 거리를 얼마로 정할지는 미지수다. 다만 벤스케 감독의 고국인 핀란드나 현재 활동하는 미국의 상황을 고려할 때 구미 클래식계가 주로 참조하는 독일 방역당국의 권고사항을 따를 가능성이 높다. 앞서 오닐과 디토 체임버 오케스트라의 경우 무대 위 거리두기를 적용했지만 비말이 많이 튀는 관악 연주자나 성악가가 출연한 것이 아니어서인지 연주자간 간격이 1.5m가 채 안됐다.

물론 마스크를 쓴 관객이 가만히 앉아있는 객석보다 출연자들의 비말이나 땀이 튀는 무대가 상대적으로 감염위험이 큰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국내 공연계에서는 지난 3월 31일 배우 2명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이 전해지며 2주간 공연을 중단했던 내한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을 제외하곤 공연장이 코로나19 감염의 원인을 제공한 사례가 없었다. ‘오페라의 유령’의 확진 배우마저 자신의 고국에서 감염된 채 들어온 것이었다. 오히려 한국 공연계의 방역 체계에 대한 해외 찬사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한동안 문을 닫았던 공공극장도 대형 공연과 함께 재가동의 시동을 걸고 있는 상태다. 오는 6월 10~1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는 국립발레단이 대면 공연으로 코로나19 이후 첫 스타트를 끊고,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는 6월 11일 뮤지컬 ‘모차르트’가 개막해 두 달간 공연에 들어간다.

국내 클래식계에 미치는 영향이 큰 서울시향의 행보는 ‘지그재그 좌석제’에 이어 정부나 지자체 차원의 추가적인 방역지침 강화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이와 관련해 클래식계의 여러 관계자들은 “국내에서 유럽처럼 무대 위 거리두기를 한다는 게 다소 당황스럽다”면서 “최근 국내에서 여러 오케스트라가 이미 안정적으로 공연을 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울시향의 결정은 과하다는 느낌이 든다”고 입을 모았다. 실례로 최근 KBS교향악단은 지난 21일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에서 드보르자크의 교향곡 ‘신세계로부터’ 등 대편성의 작품을 대면 공연으로 치렀으며, 무관중 온라인 공연이었지만 국립오페라단의 ‘나부코’ ‘1945’ 공연에서 반주를 맡은 코리아 심포니 오케스트라는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의 오케스트라 피트에 들어가 연주했다. 심지어 서울시향도 앞서 지난 4월 온라인 공연으로 대편성인 베토벤의 ‘운명’ 교향곡을 특별한 문제 없이 선보였다.

박진학 공연예술경영협회 부회장 겸 공연기획사 스테이지원 대표는 “서울시향의 무대 위 거리두기 공연은 세금을 받아 운영되는 공공 예술단체로서는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민간은 불가능하다”고 잘라 말했다. 이어 “코로나19 이후 협회의 500여개 공연 기획사 중 수익이 나는 곳이 단 1곳도 없다”면서 “무대 위 거리두기를 한다면 작은 실내악이나 독주회 등으로 공연이 한정돼 민간의 운신 폭은 더 줄어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시향은 6월 중 기자회견을 열어 무대 위 거리두기 등 코로나19 시대 오케스트라의 운영과 방향성 등에 대한 입장을 밝힐 예정이다.

강경루 기자 roo@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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