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장님, 저희 놀이동산 다녀오겠습니다!”

지난 21일 목요일 오전 10시. 회사 아닌 놀이공원에 가기로 했어. 평일 오전에 놀이기구라니. 신난다.

원래는 서울 구파발역에서 버스를 탈 생각이었어. 그런데 배차 간격이 1시간이 넘더라. 휴, 택시 타자. 미터기가 1만5000원을 돌파하자 두리랜드가 보였어. 가슴이 뛰었지만 애써 침착하려고 했지.

‘심장아, 나대지 마. 일하러 온 거야.’


“동심, 얼마면 돼?”

우리는 3개월 차 인턴들이야. 매일 오전 9시 까만 컴퓨터 가방을 멘 채 축 처진 어깨로 국민일보 건물에 들어서는 게 우리 일상이야. 근데 어쩌다 이 화창한 봄날, 놀이공원에 가게 됐을까.

모든 건 다 ‘꿍딴지’ 때문이지 뭐야. ‘꿍딴지’는 국민일보 인턴 꿍미니들이 쓰는 새 기획이야. 우리들은 휴게실에 앉아 ‘꿍딴지’ 아이디어를 찾아헤매고 있었어. 그러다 누군가 이런 말을 하게 된 거야.

“배우 임채무씨 두리랜드 알아? 거기 입장료 받기 시작한 게 이슈네.”
“요새 왕채무라고 불린대. 빚이 많아서.”

배우 임채무. 연합뉴스

임채무씨는 30년 전 경기 양주시에 놀이공원 두리랜드를 지었어. 아이들이 안전하게 놀기를 바라면서.

지금껏 200억원 정도가 들었대. 흠, 200억, 우리 월급 몇 배지? 생각하다 금방 관뒀어. 너무 큰돈이잖아. 임채무씨는 사비를 털어 무료로 놀이공원을 운영했는데 대출 이자와 인건비까지 감당하기 벅찼다는 거야. 당연한 일이잖아.

수십년 동안 무료로 운영되던 두리랜드는 지난달 30일 3년 만에 재개장하면서 입장료를 받기로 했어. 근데 곧장 비난이 터진 거지. 돈독이 올랐다느니, 위선자라느니. 물론 반대 목소리도 만만찮아. 임씨가 자선사업가도 아닌데 입장료를 받는 걸로 왈가왈부할 수 없단 거지.

“입장료 때문에 말들이 많다는 거지?”
“그럼 우리가 한번 가볼까?”

세상은 말해. 두리랜드 입장료가 비싸다고 혹은 싸다고. 그래서 꿍미니는 물었어. 동심, 얼마면 돼?

이제 우리가 출동할 시간이야. 왕채무씨네 두리랜드가 왜?

21일 두 인턴기자가 찾은 두리랜드

두리랜드 입성기

“오늘은 큰 아이들이 왔네.”

두리랜드에서 처음 들은 말이야. 매표소 앞에서 인자한 직원분이 그러더라. 이때 생각했어. ‘여기선 나도 아이인가. 편견이 없군. 그나저나 내 동심아, 너 아직 거기 있니?’

“이 종이를 꼭 쥐고 있다가 표 살 때 보여주면 돼요.”

직원분이 덧붙였어. 어릴 때 용돈 쥐여 주던 할아버지가 생각나는 친절한 신신당부. 선착순 100명에게 주는 5000원 조조할인 쿠폰이래. 덕분에 인당 1만5000원에 입장했어. 참고로 정가는 소인 2만5000원, 대인 2만원이야. 아이들 놀이시설에서는 어른들 티켓값이 더 싸대.

이제 잠들었던 동심의 기지개를 켜보자. 우리 오늘만큼은 9살이다.

‘두리랜드에서 제대로 일, 아니 놀아볼게요’

일찍 일어나는 인턴이 조조 할인을 잡는다.

두리랜드 체험기(실내 편)

어디부터 갈까. 명색이 체험인데 몸 좀 풀어야지. 첫눈에 들어온 트램펄린. 평일 오전이라 그런가, 노는 아이가 없더라고.

신나게 뛰었어. 한 10분쯤 방방 대다 보니 ‘아, 이러다 키크는 거 아닌가’ 싶었어. 더 신이 나더라. 오늘 밤 성장통이 오진 않을까, 1㎝ 정도는 클 수 있을까, 기대감 뭉게뭉게. (막상 밤이 되니까 성장통은 모르겠고 온몸이 얻어맞은 듯 쑤시는 중.)

30여분을 촐랑대다 마침내 현실 자각 타임이 왔어. 어릴 땐 트램펄린에서 실컷 노는 게 소원이었는데 지금은 나 혼자 여길 차지했는데도 갑자기 그만 타고 싶더라. 철없는 어른이지만 그렇게 보이고 싶진 않은 혼자만의 눈치싸움이랄까.

두리랜드 3층


바로 옆은 발 마사지 체험공간이었어. 공원에 가면 할머니가 굳이 걸어보시던 조약돌 길을 상상하고 올라갔지. 그런데 발바닥이 아닌 심장이 저릿.

바닥이 투명했어. 동공 지진과 함께 찾아온 혼란. 내가 내려다보는 것이 3층 바닥인가, 2층 바닥인가, 아니면 내 용기의 밑바닥인가. 마사지 체험공간이 느닷없이 평균대 체험이 됐어. 동심은 용감한 것인가, 용감한 것은 동심인가, 아니다, 괜한 생각이 많아지기 전에 내려가자.

안정이 필요해진 나는 볼풀장으로 끌리듯 다가갔어. 구슬 아이스크림 비주얼. 5살 때 이후로 들어간 기억이 없는데. 그땐 볼풀장에 멋지게 다이빙하는 게 중요했지만 오늘은 얌전하게 입장.

구슬과 나, 물아일체의 현장.

내가 구슬이고 구슬이 곧 나다. 물아일체. 한 알의 구슬이 된 김에 같이 간 인턴 동기에게 말했어.

“내가 공을 멋지게 던질 테니 슬로모션으로 찍어줘. 광고 느낌 알지?”

이 녀석, 알긴 뭘 알아. 결과적으로는 완벽한 실패였어. 고백하자면 일단 내가 멋지지 못했던 거 같아. 공을 던지고 나서는 맞을까 무서워 눈을 질끈 감았거든. 자신 있게 카메라를 켰던 동기도 알고 보니 사진만 연신 찍었대. 슬로모션이 언제부터 사진이었지? 광고 느낌도 안 났지만 그래도 만족이다. 20대의 불풀장이라, 제법 좋은 추억이랄까.

나와서 실내 이곳저곳을 살펴보니 엄청 넓었어. 여기 모든 것을 다 해보려면 온종일 부지런을 떨어도 모자랄 거 같았어. (참고로 두리랜드 실내 시설에는 시간제한이 없어.) 그동안 어른들은 뭘 하면 좋겠냐고 묻는다면 명쾌한 답을 하나 줄 수 있어.

안마의자와 인턴. 주의 노는 거 아님, 절대 아님.

2층과 3층에 안마의자가 있더라. 20분간 누워봤어. 체험기를 쓰려는 것이지 노는 게 아니야(절대 그렇다. 아무튼 그렇다). 안마의자 옆에는 ‘20분씩 사용하면서 서로 배려해달라’고 쓰여 있었어. 이건 꿀팁. 여기 누우면 경기 양주의 푸른 산이 보일 거야.

조카를 데리고 왔다는 한눈에도 지루해보이는 외삼촌과 이모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했어. “아이랑 엄마랑 여기 온다길래 저희는 따라왔어요. 입장료를 냈지만 안마의자가 있어 큰 위안이 됐어요(웃음). 같이 시간 보내기 괜찮았습니다.”

참고로 우린 3층에서 임채무씨를 만났어. 듣던 바와 비슷했어. 아이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친근하게 사진도 찍더라.

만약 기자들이라면 임채무씨를 붙잡고 인터뷰를 했겠지? 하지만 우린 아니야. 오늘은 체험하러 간 거니깐(사진은 찍었어. 연예인이잖아).

두리랜드 4층

각종 오락기와 놀이기구들

두리랜드 체험기(야외 편)

이제 밖으로 나가보자. 야외 놀이기구는 따로 탑승권을 사야 해. 앞서 입장료를 냈지만 그와 별개. 우린 1만6000원을 내고 ‘대인 BIG 5’를 샀어. 놀이기구 탑승권 다섯 장을 주더라.

“출발하려는데 더 타실 분, 더 타실 분 계십니까. 어서 오세요.”

여기선 어떤 놀이기구든 금방 탈 수 있어. 직원의 방송을 듣고 ‘호다닥’ 달려가도 돼. 우리는 두리랜드 ‘보스 몬스터’ 기세를 뿜는 바이킹부터 깨기로 했어. 탑승자는 세 명뿐. 인턴 둘, 초등학생 하나. 이때까지만 해도 자신 있었지.

하지만 바이킹이 솟아오르자 인턴1은 금세 목청이 터졌어. “와∼아아악!!! 뭐야!! 왜 무섭냐아악!!!?!” 양주에서 득음을 하려나. 그 옆에 앉은 인턴2도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꾹 참았어. 반대편에 앉은 초등학생은 피식, 피식, 웃더라. 오직 그만이 항해를 즐기고 있었어. ‘진정 즐길 줄 아는 네가 이 나라의 챔피언.’

바이킹

이번엔 터덜터덜 내려 범퍼카로 갔어. 불끈 타오르는 승부욕. 내가 여기 짱 먹어야지. 범퍼카란 원래 그런 것 아닌가. 생전 처음 보는 사람과의 난폭한 박치기가 용인되는 합법적 장소.

그래도 형, 누나가 미안해. 너무 신났지 뭐야. 이렇게 현실 자각 타임이 오면 급 머쓱. 전후좌우 사방 어느 쪽을 살펴봐도 20대는 우리뿐이라.

과연 그는 이 구역의 짱이 됐을까.

야외에는 어린아이들이 탈 만한 놀이기구가 많더라. 알록달록하고 작아서 귀여웠어(사실은 거기에 탄 꼬마들이 더 귀엽다). 회전목마나 우주전투기 같은 놀이기구는 색감이 좋아서 사진을 찍어도 잘 나올 것 같아.

그렇게 내면의 동심을 하나씩 꺼내 햇빛 쪼이다보니, 어느덧 오후 6시. 벌써 폐장시간이야.

회전목마

우주전투기

두리랜드를 떠나며

떠나기 전에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봤어. 돈을 낸 쪽과 받는 쪽. 조금씩 의견은 달라도 이건 똑같더라. “어른이 아닌 아이 입장에서 생각해야지.”

한 어머니는 “가성비가 나쁘지 않다”고 평했어. 다른 키즈카페들은 대개 2시간에 2만원 정도를 받는대. 그런데 두리랜드는 더 넓고 시간제한도 없으니 아이들 입장에서 더 좋을 것 같다고 그래.

두리랜드 관계자는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을 하나 알려줬어. 무료 입장일 때는 5층짜리 실내 시설이 없었대. 이번 재개장 때 문을 열었다는 거야. 그러니까 따져보면 최근 생긴 입장료는 새로 문을 연 키즈카페에 내는 비용인 셈이야. 그렇게 따지자면 절대 비싼 건 아닌 거 같아.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아이들을 위해 새 공간을 지은 거다. 이걸 잘 모르시면 오해할 수 있다. 그럴 때 좀 속상하다”고 털어놓았어.

꿍미니 후기

이제 우리의 최종 영수증을 공개할게. 우리는 조조할인을 받아 1인당 총 2만3000원씩, 2인 4만6000원을 썼어. 놀이기구 5개와 실내 시설 9개를 체험했어. 놀이기구는 바이킹 2명, 범퍼카 2명 탔고 티켓 한 장이 남길래 혼자서 우주전투기도 탔어. 실내 시설은 미로·야외놀이터·정글짐·방방·타잔·볼풀장·발마사지체험·안마의자·백설공주 포토존에서 사진찍기 이렇게 9개 정도를 하고 놀았어.

밥 먹고 쉬었던 잠깐을 빼고 7시간쯤 20대 체력의 한계까지 놀았으니까 이 정도면 비싼 거 같지는 않아. 우리 둘 다 그렇게 합의했어. 하지만 판단은 하지 않을게. 무엇이 싼지 비싼지, 혹은 얼마나 만족스러운지는 주관적인 거잖아.

그냥 두리랜드에 다녀온 두 인턴의 소감으로 글을 맺을게.

서지원: 아이들 웃음소리에 기분이 좋아지는 것 같았어. 이런 행복을 위해 임채무씨가 지금껏 두리랜드를 지켜온 건 아닐까. 조심스레 짐작해봐.

유승혁: 어릴 적 방방(트램펄린)에서 놀던 첫사랑이 떠올랐어. 이게 동심 아닐까 싶어. 1층부터 5층까지 아이들을 위한 맞춤 공간이잖아. 아이들은 행복감을, 어른들은 추억을 얻는 곳인 거 같아.

서지원, 유승혁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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