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후 6주로 추정되는 줄무늬냥이. 이번 사연 속 아깽이 5마리 중 하나다. 동화책에서 튀어나온 듯 너무나 귀엽다. 지구 뿌셔...전봇대 뽑아...이하 제보자 제공

[개st하우스]는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담는 공간입니다. 즐겁고 감동적인 동물 이야기가 고플 때마다 찾아오세요.

경남 창원의 어느 원룸촌. 수영강사인 제보자는 3개월 전 이 동네로 이사왔다고 합니다.

초면에 온몸을 비비고 배를 뒤집는 넉살 좋은 동네 고양이들 덕분에 캣대디에 입문했다고 하네요.

봄기운이 따뜻한 이달 초, 제보자에게 새로운 냥이가 찾아옵니다.

갈색, 흰색, 검은색이 어우러진 삼색이입니다. 깡마른 녀석은 첫 만남부터 제보자를 졸졸 따라오더니 드러눕고, 배를 발라당 까고 온갖 애교를 부립니다. 제보자는 주택가에서 1km 정도 떨어진 외딴 곳에 삼색이의 밥터를 마련했죠. 이웃 민원이나 기존 고양이들의 텃세를 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

"한숨 자고 가겠다냥. 불만있냐옹?" 제보자가 이사오자마자 다가와준 고양이 중 하나. 밥만 주던 사이었는데 정신 차리고 보니 집에 들어왔다고. 이래 보여도 4남매를 키우는 엄마냥이.

챙겨준 지 2주일쯤 지난 어느날. 삼색이의 행동이 이상하더랍니다.

제보자를 어딘가로 데려가려는 듯 밥터로 향하는 1km 내내 제보자의 앞을 가로막고, 앞서다가도 되돌아와 제보자 주위를 빙글빙글 맴돌았다고 합니다.

‘거기가 아니라 이쪽이야, 인간!’

마치 이렇게 속삭이듯이 말입니다.

앞길을 가로막는 삼색냥이. 녀석은 1주일 동안 집요하게 제보자의 앞길을 방해했고 마치 '따라오라'는 듯이 주위를 맴돌았다고 한다.

뭔가 심상치 않다고 느낀 제보자는 가다, 멈추다를 반복하는 삼색이를 따라나섰습니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2층짜리 주택. 1층은 누가 살고 있지만 2층은 창고로 쓰는지 텅 비어있었습니다. 삼색이는 익숙한 듯 계단을 훌쩍 뛰어 올라갔습니다. 뭐가 그리 급한지, 엄청 서두르더랍니다. 제보자도 숨을 헐떡이며 따라 올라갔습니다.

맙소사. 어두컴컴한 그곳에는 솜뭉치 같은 새끼냥이들이 바글대고 있었습니다.

털색깔은 각양각색이었습니다. 옅은 노랑빛인 치즈, 흰색에 노란 얼룩무늬, 흰색에 검정 무늬 냥이가 1마리씩, 흰색 털에 회색·검은색 줄무늬가 섞인 고등어 냥이가 2마리. 이렇게 총 5마리였습니다. 한 가족인데도 이만큼이나 알록달록하네요.

낯선 사람의 등장에 아깽이들은 후다닥, 이라고 하기에는 비틀비틀, 잡동사니 틈새로 몸을 숨겼습니다.

제보자는 혹시나 싶은 마음에 챙겨온 라면 박스와 사료로 급한 대로 고양이 쉼터를 만들었습니다.

잠시 뒤 “까드득 까드득” 아기냥이들의 사료 씹는 소리가 빈 창고에 울려 퍼졌죠. 세상 행복한 소리였습니다.

삼색이가 데려간 2층 창고의 모습. 화살표는 5마리 아기냥이들. 무척 배가 고플텐데 아깽이 두 마리는 사다리 뒤에 숨어 있다.

다음날 오전, 반가운 마음으로 다시 찾은 그곳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고양이 박스도 아기 고양이들도 감쪽같이 사라졌습니다. 밤새 무슨 일이 일어난 게 틀림없었습니다. 생존에 위협을 느끼면 어미냥이는 새끼들 목덜미를 물어 한 마리씩 대피시킵니다. 대체 어디로 떠났을까.

창고에서 나오다 제보자는 1층의 집주인과 마주쳤습니다. 플라스틱 빗자루를 거머쥔 아주머니는 기다렸다는 듯이 호통을 쳤습니다. “왜 도둑고양이들 밥을 줘서 귀찮게 꼬이게 하느냐?”

제보자는 풀이 죽었지만, 금세 정신을 차리고 아깽이들이 숨어있을 만한 곳을 샅샅이 살폈습니다. 그렇게 헤매기를 4시간여. 체념한 제보자 곁으로 슬쩍, 삼색이가 다가왔습니다. 마치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천연덕스럽게 말입니다.

허겁지겁 따라가보니 코앞 1층 창고에 아기냥이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더랍니다. 이번 창고는 쌀포대, 녹슨 철근 같은 잡동사니가 가득해서 고양이들이 숨기에 훨씬 좋아보였습니다.

쫓겨난 삼색이 식구는 1층 창고로 이사왔다. 아깽이들이 숨을 곳이 많지만 그만큼 구조 난이도는 훨씬 높아졌다. 저 잡동사니들을 언제 다 치운담.

얼마나 매몰차게 쫓겨났던 걸까. 하루새 아기냥이들의 경계심은 부쩍 높아져있었습니다. 5마리 중 3마리는 제보자를 보자마자 미로 같은 고물더미 속으로 숨었습니다. 하지만 치즈와 고등어는 탈진한 듯 멀뚱멀뚱 앉아있었죠.

“두 마리의 건강상태는 좋지 않았어요. 치즈는 눈도 못 뜨고, 고등어는 서 있지도 못하고요.”

도움을 주고 싶어도 쉽게 다가가지는 못했습니다. 사람 냄새가 배면 어미가 아깽이를 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구조된 치즈와 고등어.

치즈

그런 마음을 알아준 것일까요. 삼색이는 제보자를 가만히 지켜봤다고 하네요. 침착한 삼색이를 보고 용기를 얻은 제보자는 가장 약해보이는 두 마리, 치즈와 고등어를 품에 안고 병원으로 달려갑니다.

진료 결과 아깽이들은 영양실조와 면역력 감퇴로 결막염을 앓고 있었습니다. 사료를 씹어 삼킬 힘도 없어 불린 사료를 먹여야 했고요. 이후 제보자는 원룸의 절반을 냥이 쉼터로 개조했습니다.

아기냥이들의 집으로 개조된 제보자의 원룸.

그 후 구조된 두 마리의 아깽이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되게 잘 지내고 있어요. 치즈는 먹성이 좋고 탁구공 같아요. 아주 축구선수예요.”
“눈도 못 뜨던 고등어는 발톱을 세우고 저를 암벽등반하듯 기어오르고요.”

제보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듣기만해도 행복하고 따스운 일상이네요.

무척 활발한 치즈냥이.

이제 남은 것은 경계심 강한 새끼 3마리입니다. 새끼들은 구석구석 숨는 통에 포획이 보통 어려운 게 아니라네요. 성격 좋은 삼색이는 새끼를 돌봐야 하므로 맨 나중에 구조할 예정입니다.

때마침 행운이 찾아왔습니다. 인근 카페의 사장, 직원까지 3명이 구조작업을 돕기로 했다네요. 창고 주인도 구조작전을 허락했고요. 제보자는 “창원에는 도움을 요청할 동물단체도 없는데 세 분이 도와줘서 천만다행”이라며 “창고 물건을 먼저 정리하고 그 다음으로 숨은 새끼들을 구조할 계획”이라고 했습니다.

제보자는 공간도 돈도 한계가 있어 구조 후에는 입양을 고민하고 있다고 합니다. 고양이 여섯 식구를 받아들이기에 제보자의 7평 원룸은 너무나 좁기 때문입니다. 다행히 치즈와 고등어는 부산의 한 부부에게 입양됐습니다. 삼색이는 제보자가 입양하기로 마음을 먹었답니다.

아기냥이 어디어디 숨었나? 숨은 냥이찾기? 남은 아기냥이 3마리가 숨은 장소. 제보자는 분명 창고라고 했는데, 이건 뭐 거의 공사 현장이 따로 없다.

아깽이들의 우당탕탕 소리에 아침을 맞이하는 제보자는 아직도 모든 것이 어리둥절합니다. 낯선 동네로 이사와서 생전 처음 고양이를 만나고, 캣대디가 되고, 구조에 나서고…. 모든 일이 고작 석달 동안 벌어진 일이라는 게 믿기시나요?

“도움을 청하는 것 같던 삼색이의 눈빛, 나를 안내하던 발걸음과 몸짓, 모든 것이 너무도 간절해보였습니다.”

아깽이들을 돌보려면 많은 사랑과 정성이 필요합니다. 요즘 제보자는 거의 고3 수험생처럼 하루 서너시간마다 잠에서 깹니다. 4시간에 한 번씩 아깽이들 눈병 나으라고 안약을 넣어주고 고름을 닦습니다. 아깽이들은 갓난아기처럼 돌봐야 하기 때문이죠. 새벽 2~3시에 한번, 또 새벽 5~6시 다시 한번 일어나 먹이를 챙겨줍니다.

그런 보살핌 덕에 아깽이들은 이렇게나 토실토실해졌답니다.

"그동안 신세 많았다냥" 두 아깽이는 곧 이웃집으로 입양간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유행하는 바람에 수영강사인 제보자는 5개월째 휴직 중입니다. 물론 수입도 끊겼습니다. 하지만 제보자는 코로나19가 고맙답니다. 삼색이를 만나게 해줬으니까요.

“이런 게 아이러니일까요. 코로나는 우리나라나 전세계에는 불운이잖아요. 그런데 덕분에 저는 아깽이들의 세상을 구할 수 있었네요.”




영상, 글=이성훈 기자, 변정연 인턴기자 tellm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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