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코로나19) 진정 후 신흥국을 중심으로 금융 불안과 식량 부족, 인플레이션 문제를 겪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진단됐다.

한국은행 아태경제팀은 31일 공개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신흥국 리스크 점검’ 보고서에서 금융 불안 재현, 식량 수급 악화, 인플레이션 확대를 코로나19 사태 후 신흥국에서 발생 가능한 리스크로 꼽았다.

이들은 선진국 중앙은행과 국제기구가 그동안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막대한 규모로 공급한 유동성을 거둬들이는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신흥국의 금융 불안을 유발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007년 세계 금융위기 극복 과정에서 미국이 유동성을 일부 회수하는 동안 주가 급락 같은 금융 불안이 빈발한 바 있다. 2009년 말부터는 유럽 각국에서 재정 위기가 잇따랐다.

아태경제팀은 “코로나19 확산 및 대응 과정에서 신흥국의 기초 경제 여건과 재정 상황 등이 악화됨에 따라 향후 금융 불안 재현 시 신흥국의 대외건전성 악화 우려는 현재보다 확대될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재정 여건이 취약했던 일부 신흥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한 재정지출을 확대하면서 재정건전성이 더 나빠진 상황이다. 특히 정부부채 비율이 높은 신흥국은 경기 위축과 유가 급락에 따른 재정수입 감소로 부채 규모가 확대될 것으로 전망된다.

브라질과 남아프리카공화국은 지난해 각각 1.0%, 2.3%였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규모가 올해 5.2%, 8.6%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측됐다. 올해 브라질의 GDP 대비 정부부채 비율 전망치(98.2%)는 100%에 육박한다. 남아공(77.4%) 인도(74.3%) 멕시코(61.4%) 말레이시아(63.0%) 등도 국제통화기금(IMF)이 제시한 재정건전성 기준(40%)을 크게 웃돌 것으로 전망됐다. 재정수입 40% 정도를 원유와 가스 판매에 의존하는 러시아는 유가 급락과 함께 재정 적자 국면에 진입했다.

신흥국은 코로나19 대응에 재정 여력을 쏟아 부은 만큼 금융 불안이 나타났을 때 과감한 경기부양책을 펴기 어렵다. 게다가 채무 부담이 커진 터라 정부와 기업이 빚을 제대로 갚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내년 3월까지 신흥국 내 투기등급 회사채의 디폴트(채무불이행) 비율이 최대 13.7%에 이를 것으로 예상했다.

코로나19 확산에도 식량 수급은 대체로 안정적이지만 세계적 봉쇄 조치로 향후 식량 생산이 감소하는 상황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아태경제팀은 “코로나19에 대응한 각종 봉쇄조치로 농업인력이 부족한 데다 육가공 등 식품처리공장이 폐쇄돼 금년 하반기 중에는 식량 수확량 및 식품공급이 감소할 우려가 있다”고 기술했다.

현재 미국과 서유럽은 각각 멕시코와 북아프리카·동유럽에서 넘어오는 외국인 노동자가 줄어 인력난을 겪고 있다. 인도는 이주노동자 이동 제한으로 중북부 곡창지대 경작에 차질을 빚었다.

물류 이동을 제약하는 공급망 훼손으로 세계 식량 수급망이 교란될 우려도 있다. 각국이 식량 수급을 우려해 식량안보 차원에서 수출을 제한하거나 재고 비축을 늘리면 수급 불일치가 더욱 커진다.

가뭄과 비료가격 상승 등으로 농산물 작황이 나빠진 2007~2008년 인도 브라질 러시아 등은 자국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면서 식량 불안을 유발한 바 있다. 올해도 코로나19 확산 단계에서 인도 러시아 베트남 등이 농산물 수출을 제한하자 쌀과 밀을 비롯한 주요 농산물 가격이 급등했다.

농산물 가격 상승으로 식료품을 제외한 제품과 서비스 소비가 줄면 주요 신흥국의 경제 회복은 지연될 수밖에 없다. 식량 부족 심화와 식량 가격 급등은 누구보다도 취약계층의 어려움을 가중시켜 사회불안으로 이어질 소지가 있다. 2007~2008년 수출 제한 등으로 식량 가격이 급등했을 때 인도네시아와 방글라데시에서는 대규모 시위나 폭동이 발생했다.

신흥국은 물가 수준이 상대적으로 높아 식량 부족을 비롯한 공급 측 애로가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개연성이 크다. 경기 회복 과정에서 수요가 급등하는 데 반해 공급이 지체되면 물가 불안이 나타날 수 있다. 농산물은 봉쇄 조치 등에 따른 생산량 감소가 현실화하면 가격변동성 확대로 물가 불안의 주요 요인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신흥국은 자국 통화가치 하락으로 환율이 크게 오를 경우 수입물가 상승으로 국내 물가가 자극을 받을 수 있다.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유동성 공급을 크게 늘린 각국은 신속하게 통화정책 기조를 전환하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이 경우 외환시장 불안과 인플레이션 압력이 가중된다.

아태경제팀은 단기간에 위기가 발생할 가능성은 높지 않은 것으로 본다. 일부 취약 신흥국을 제외하고는 외환·금융 부문 리스크가 낮은 편인 데다 은행 부문의 손실흡수 능력도 대체로 충분한 수준인 것으로 평가했다. IMF 등 국제기구의 적극적 자금 지원 가능성도 높다.

이들은 “최근 우리나라 및 일부 선진국에서 코로나19 확산이 진정되는 모습을 보임에 따라 경제활동이 재개되고 있으나 이후 신흥국에 현실화될 수 있는 리스크에 대해서도 예의 주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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