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에서 30일(현지시간) 흑인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에 항의하는 시위대가 행진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흑인 조지 플로이드(46)가 경찰의 강압적인 제압으로 숨진 사건이 미국을 분노의 소용돌이에 빠뜨렸다. 사건이 벌어진 미네소타주는 물론 미 전역에서 경찰의 폭력을 규탄하는 시위가 벌어져 25개 도시에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CNN방송 등 미국 언론들은 시위가 계속해서 확산되면서 31일 오전(현지시간) 기준 캘리포니아·콜로라도·플로리다·조지아·일리노이·켄터키·미네소타·뉴욕·오하이오 등 16개주 25개 도시에 통행금지령이 발령됐다고 보도했다. 백악관이 있는 워싱턴DC와 12개 주에는 주 방위군이 투입됐다.

전날 워싱턴DC에서는 시위대가 대통령 비밀경호국(SS)의 차량 3대를 파손하고 차 위에 올라가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정의 없이는 평화도 없다’ 등의 구호를 외쳤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서는 경찰이 시위대를 해산시키려 하는 과정에서 무력 충돌이 벌어졌고, 텍사스주 오스틴에서는 시내 중심가 도로가 폐쇄된 상황에서도 시위대가 주의회 의사당과 경찰서를 향해 행진했다.

시카고 시내에서도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한 뒤 시민들이 망가진 경찰차 위에 올라타는 모습이 SNS를 통해 퍼졌고, 필라델피아에서는 시위대가 시 청사 앞에 있는 전 시장의 동상을 밧줄로 묶고 불을 붙였다. 경찰차를 비롯한 여러 대의 차량이 불길에 휩싸이기도 했다. 인디애나폴리스에선 시내에서 벌어진 시위에서 1명이 사망하고 3명 이상이 총상을 입었다.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사망한 플로이드가 체포됐던 자리에 사람들이 모여 헌화하고 길바닥에 추모 그림을 그리며 집회를 했다. 미네소타주 교통국은 30일 오후 7시부터 미니애폴리스로 진입하는 주요 도로들을 폐쇄했다.

로스앤젤레스(LA)에서는 경찰이 시위대의 행진을 막아서면서 충돌이 빚어져 경찰이 시위대에 곤봉을 휘두르고 고무탄을 발사했다. 폭력사태가 계속되자 LA시는 캘리포니아 주 정부 차원의 비상사태 선포와 주 방위군 700명 지원을 요청했고 개빈 뉴섬 주지사가 즉시 승인했다. 주 방위군이 주둔 중인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이날 오전 5시까지 통행금지령이 내려졌다.

플로리다주 탬파에서는 전날 경찰에 돌을 던지는 등 폭력행위를 시도한 여러 명의 시위대가 체포됐다. 미 연방수사국(FBI)은 “29일 캘리포니아 오클랜드에서 시위를 지켜보던 국토안보부의 계약직 보안 요원 1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면서 이를 ‘국내 테러 행위’로 규정했다.

시위가 약탈과 방화 등 폭력 사태로 번지는 양상을 보이면서 시민들의 협조를 호소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런던 브리드 샌프란시스코 시장은 “국가와 도시가 어려운 상황에 직면했다”면서 “당국의 지시를 따라주길 바라며, 모두가 안전해지기 위한 우리의 노력을 지지해주길 요청한다”고 말했다.

민주당의 유력 대선 후보인 조 바이든 전 부통령은 성명을 내고 “그런 무자비한 행위에 맞서는 것은 옳은 일이며, 필요한 일”이라면서 “그것이 바로 미국식 대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하지만 지역사회를 불태우고 불필요한 파괴를 일삼는 것이나 폭력으로 생명을 위협하는 일, 사업장을 파괴하는 행동은 (미국식 대응이) 아니다”고 시민들의 자제를 촉구했다.

빌 드블라시오 뉴욕시장은 “뉴욕경찰(NYPD)이 끔찍한 일들을 겪었다. 일부 시위대가 경찰을 해치고 공격했다”면서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경고했다. NYPD는 29일 밤 경찰관 4명이 타고 있던 경찰 승합차에 화염병을 투척한 사람을 포함해 화염병 사건에 연루된 시위 참가자들이 기소될 것이라고 밝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시위대에 강경한 태도를 보이며 군대의 무력 제압 가능성을 내비쳤다.

트럼프 대통령은 전날 플로리다주 케네디우주센터에서 첫 민간 유인 우주선 발사를 축하하기 위한 연설에서 “(시위는) 정의, 평화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면서 “플로이드 추모가 폭도와 약탈자, 무정부주의자에 의해 먹칠을 당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또 “무고한 이들에게 테러를 가하는 안티파와 급진 좌파 집단이 폭력과 공공기물 파손을 주도하고 있다”면서 “정의는 성난 폭도의 손에 의해 결코 달성되지 않고, 나는 이를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29일엔 트위터를 통해 미니애폴리스 시위에 대해 “폭도의 80%는 주 외부에서 왔다. 폭력을 선동하기 위해 주 경계선을 넘는 것은 연방 범죄”라고 비판하면서 민주당을 겨냥해 "자유주의 주지사와 시장은 훨씬 더 강경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그렇지 않을 경우 연방정부가 개입해 해야 할 일을 할 것”이라면서 “이는 우리 군대의 무한한 힘을 활용하는 것과 대규모 체포를 포함한다”고 경고했다.

미 언론들은 유색 인종 차별 등 문제의 핵심을 들여다보기보단 성난 대중을 계속해서 자극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식에 비판을 쏟아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팬데믹 가운데서도 거리로 쏟아져나간 사람들의 좌절감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은 별 말이 없었다”면서 “대신 사람들을 비방하고 거칠게 말하는 평소의 리더십을 유지했다”고 비난했다.

CNN의 정치분석가 데이비드 거건은 “이번 주 미국엔 비극에 비극이 겹쳤다”면서 “이번 주 미국은 코로나19 사망자가 10만명을 넘어서는 우울한 이정표를 세웠고, 잔인하게 죽임을 당한 조지 플로이드로 인해 대규모 시위가 촉발됐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우리의 대통령은 트위터로 대중과 다투고, 홍콩 문제에 대해 중국을 비난하고, WHO와의 관계를 파탄내는 등 다른 일들로 바빴다”면서 “동시에 그는 팬데믹과 유색인종 차별 문제에 대해서는 숨죽이고 있다. 이 두 가지는 지금까지 그의 재임기간을 통틀어 가장 민감한 이슈”라고 꼬집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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