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4일 벌어진 홍콩 시위 장면.AFP연합뉴스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에서 홍콩 국가보안법이 처리되자 자유와 인권 침해를 우려한 홍콩인들의 해외 이주 바람이 확산되고 있다.

홍콩 내에서 부동산 매각이나 해외 이민 문의가 급증하는 데다 대만에 이어 영국도 홍콩인에 대한 시민권 부여 범위를 확대키로 하는 등 홍콩인을 돕기 위한 국제 공조도 잇따르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지난 22일 중국 전인대에서 홍콩 보안법 초안이 발표된 뒤 이민 알선업체들에 상담 전화가 쏟아지고, 해외 부동산 매입이나 홍콩 내 부동산 매각 문의가 급증하고 있다고 31일 보도했다.

이민 컨설팅 회사인 앤렉스의 앤드루 로 최고경영자는 “홍콩 보안법이 전인대에서 제안된 다음 날 우리는 100통 이상의 전화를 받았다”며 “안절부절못하며 곧바로 떠날 수 있느냐고 묻는 사람이 많았다”고 말했다.

센타라인의 데이비드 후 상무는 “홍콩인들 사이에서 해외 부동산 투자 시장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고 있다”며 “이번 주에 100건의 투자 요청을 받았는데, 앞으로 더 많은 홍콩인이 해외 부동산 매입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홍콩 부자들은 자산을 런던이나 싱가포르, 대만 등으로 분산 이전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골든비자 포르투갈’ 창업자인 제이슨 길럿은 1월부터 지금까지 50명의 이민을 성사시켰다며 “한 고객은 거액을 포르투갈로 이전해 달라고 요청하고 곧바로 착수금을 지불했다. 이런 건 처음이다”라고 전했다.

티나 청 미드랜드부동산 국장은 올해 1~4월 대만에 이주 신청을 한 홍콩인은 2400명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의 948명에 비해 배 이상 증가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시작된 송환법 반대 시위 영향으로 지난 한해 대만으로 떠난 홍콩 시민은 5585명으로 2018년보다 41.1% 증가했다. 특히 지난해 10월에는 대만으로 이주한 홍콩인이 1243명에 달했다.
홍콩 보안법 초안이 발표된 지난 22일 전인대 모습.신화연합뉴스

대만 외 아일랜드, 캐나다, 호주 등 영어권 국가들도 공통 언어와 양질의 교육 시스템, 전문적 기회 등으로 홍콩인이 이민을 떠나
는 주요 지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민 알선업체 ‘존 후’ 관계자는 “최근 상담 사례가 4~5배 정도 증가하고 있다”며 “홍콩인 사람들은 어떤 비자의 처리시간이 가장 짧은지 문의하는 등 절박하게 이민을 하려 한다”고 말했다.

미드랜드 관계자는 “이번 주 마욘산에 있는 한 아파트 소유자는 이민을 서두르면서 은행 평가액보다 15만 홍콩달러 낮은 가격에 아파트를 내놨다”고 전했다.

대만이 홍콩인이 거주 지원책을 내놓기로 한 데 이어 영국도 홍콩인의 영국 시민권 획득을 확대하는 등 각국의 홍콩인 돕기 아이디어도 잇따르고 있다.

영국 정부는 홍콩보안법이 강행될 경우 과거 BNO 여권을 가졌던 모든 홍콩인이 영국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방안을 검토키로 했다고 가디언 등이 30일 보도했다.

1997년 홍콩 반환이전에 300만명의 홍콩주민은 영국에서 거주할 권리까지 보장하는 ‘영국부속영토시민’(BDTC) 여권을 소지했으나, 이후 거주나 노동의 권리는 박탈된 ‘영국해외시민’(BNO) 여권으로 대체됐다.

도미닉 라브 영국 외무장관은 지난 28일 BNO 여권 소지자가 영국 입국시 체류 기간을 현재 6개월에서 12개월로 연장하고 추후 시민권을 획득할 수 있는 길을 제공하겠다고 설명했다.

영국 내무부는 다음날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대상을 BNO 여권 신청 자격이 있는 모든 이들로 확대할 수도 있다고 밝혔다.

홍콩 반환이전에 홍콩에서 태어나 BDTC 여권을 보유했던 이는 모두 290만명으로 추정되며, 이 중 255만명은 갱신을 하지 않아 현재 BNO 여권 소지자는 35만명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중국에 부담을 주는 정책으로 홍콩인에게 영주권을 주자는 아이디어를 내놓기도 했다.

WSJ는 30일(현지시간) 사설에서 “홍콩은 중국식 독재 모델과 서구 자치모델 간 대결의 최전선”이라며 “홍콩 주민에게 미국에서 거주하면서 일할 수 있는 영주권을 제공하자”고 주장했다.

신문은 ‘홍콩 특별지위 박탈’ 등 대중국 압박조치에 대해 “베이징의 가해자보다는 홍콩의 무고한 주민에게 압박이 가해질 수 있다”면서 “홍콩 시민에게 미국으로 피신할 길을 열어주는 게 더 좋은 아이디어”라고 강조했다.

신문은 이어 “영주권을 부여받을 수 있더라도 대부분의 홍콩인은 그들의 터전인 홍콩에 남을 것”이라며 “하지만 (미국 영주권은)전체주의 중국에서 벗어나 갈 곳이 있다는 새로운 자신감을 홍콩인들에게 주고, 젊은이들에게는 베이징에 저항할 용기를 부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베이징=노석철 특파원 schroh@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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