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아닌디야 바핀 바타차리야(왼쪽)씨가 미국 시각장애인 복지관 라이트하우스에서 데프블라인드 전문가로 일하고 있는 아내 최숙희씨와 촉수화로 대화하고 있다. 바타차리야 제공

미국에서 헬렌 켈러와 설리번 선생님의 이야기는 한 차례로 끝나지 않았다. 감동적인 스토리는 교육 제도에 스며들어 그 뒤 여러 ‘헬렌 켈러’와 ‘설리번’을 낳았다. 어린 시절 불운으로 데프블라인드(Deaf-Blind) 장애가 생겨도 사회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돕는 교육이 체계적으로 자리 잡았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사는 아닌디야 바핀 바타차리야(50)씨. 그는 인도 콜카타에서 30㎞ 떨어진 시골 마을에서 청각장애인으로 태어났다. 9살 때 사고로 망막이 완전히 손상돼 양쪽 시력을 잃으면서 전혀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게 됐다. 26년 전 중입 검정고시에 합격했지만 지금은 시설에서 자기만의 세계에 갇힌 이관주(51)씨와 비슷한 상황이었다. (국민일보 6월 2일 보도 참고)

바타차리야(오른쪽)씨가 아들과 카드게임을 하고 있다. 바타차리야 제공

관주씨와 달리 바타차리야씨는 현재 직장에서 일하며 가정을 꾸리고 살고 있다. 데프블라인드 지원 기관인 ‘국립 헬렌켈러 센터’에서 다른 시청각장애인에게 의사소통을 위한 컴퓨터와 점자 기구 사용법을 가르친다. 한국인 여성과 결혼해 11살짜리 아들을 키우고 있다. 아내는 시각장애인 복지관 라이트하우스에서 데프블라인드 전문가로 일하는 최숙희 교사다.

바타차리야씨가 독립적인 사회의 일원이 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본인의 노력, 부모의 헌신과 함께 미국의 특수교육 체계가 있다. 그의 인도인 부모는 중복 장애가 생긴 아들을 미국 퍼킨스 맹학교에 보냈다. 헬렌 켈러와 설리번이 몸담았던 곳으로 최고의 데프블라인드 교육 기관 중 한 곳이다. 학비가 부족했지만 아버지는 학교에 편지를 보내 장학금을 받았다.

바타차리야씨에 따르면 퍼킨스 맹학교의 데프블라인드 프로그램에서는 각 교실마다 교사 1명과 학습도우미 여러 명, 그리고 학습 능력이 다른 시청각장애 학생 4~5명이 배치됐다. 교사가 각 학생의 수준에 맞게 특정 과목을 가르치는 동안 학습도우미들이 학생들을 도왔다. 학교는 독립적인 생활을 위한 에티켓도 가르쳤다. 바타차리야씨는 맹학교와 사립 고교졸업 이후 대학(아칸소대 리틀록 캠퍼스)에 진학했다. 그는 자신의 홈페이지에서 “교육은 내가 (시청각장애인으로서) 성취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일들을 가능하게 해줬다”고 말했다.

바타차리야(오른쪽)씨가 미국 시청각장애 전문 학교인 퍼킨스 맹학교에서 처음 만난 캐롤 크룩 교사와 촉각 수업을 하고 있다. 바타차리야 제공

바타차리야(왼쪽)씨는 퍼킨스 맹학교 과정을 마치고 미 보스턴 교외에 있는 벨몬트 힐 사립고등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졸업 후에도 퍼킨스 맹학교로부터 장학금과 촉수화 통역사를 지원 받았다. 바타차리야 제공

이에 비해 한국은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위한 특수교육 프로그램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공교육 시스템에서는 시각이나 청각 중 하나의 감각에 특화된 교육만 시행된다. 헬렌 켈러도, 설리번도 나올 수 없는 구조다.

국립서울농학교 6학년인 안모(13)군은 시각과 청각장애를 다 갖고 있다. 선천성 난청으로 왼쪽 귀에는 인공와우 수술을 받았고 오른쪽 귀에는 보청기를 착용하고 있다. 시력도 중증 장애(좋은 눈의 시력이 0.06 이하) 판정을 받았을 정도로 좋지 않다. 안군이 다니는 농학교는 주로 수어 프로그램을 통해 교육을 한다. 시각장애를 함께 가진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위해 마련된 별도 프로그램은 없다. 안군이 어떤 환경에서 교육을 받으면 좋을지 고민하는 것은 온전히 교사의 몫이다. 담임인 이정심 교사는 자체적으로 맞춤형 교육을 하고 있다. 저시력 교과서를 교재로 활용하고 점자를 배울 수 있게 돕는다.

데프블라인드 학생으로는 처음으로 지난해 연세대에 입학한 김하선(20)씨도 두 가지 장애를 갖고 있지만 맹학교에서 시각장애 위주의 교육을 받았다. 김씨는 “청각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스스로 대처해야 한다고 여겼는데 대학에서 수업 시간 속기사 지원을 받아보니 (두 장애 모두를 위한) 환경에 따라 다른 삶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시청각장애를 갖고 있는 안모(오른쪽)군이 코로나19로 등교 수업이 어려워지자 화상 수업을 하고 있다. 김유나 기자

정부는 그동안 데프블라인드 학생의 교육에 크게 관심을 쏟지 않았다. 교육부는 특수학교에 재학 중인 데프블라인드 학생 숫자(36명) 정도만 파악하고 있다. 장애 유형에 따른 교육 방법은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국립특수교육원이 올해 처음 ‘중도중복장애 학생 현황 분석 및 유형별 지원 방안’ 연구를 시작했을 뿐이다. 교육부 관계자는 “아직 시각과 청각 중복 장애에 대한 정책 연구는 진행 중”이라며 “잔존 감각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지도하고 있는데 완전히 감각이 사라질 때를 대비해 교육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국내에선 데프블라인드 학생을 가르칠 전문가를 찾아보기 어렵다. 퍼킨스 맹학교의 데프블라인드 교육 프로그램 책임자인 마사 메이저스는 46년간 이 분야에서 학생을 가르쳤다. 한국에서 청각장애 학교 교사를 지냈던 최숙희 교사도 20년째 라이트하우스에서 근무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조기 교육과 전문가 양성이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최 교사는 취재팀과 메신저 인터뷰에서 “데프블라인드 아동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교육을 받게 해야 하고, 중간에 데프블라인드가 된 사람들에게도 의사소통 교육과 보행 훈련, 취업 훈련을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청각장애 및 시각장애 교육을 모두 전공하고 아동발달, 의사소통법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그 아동에게 맞게 교육을 할 수 있다”며 “한국도 그런 전문가가 양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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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탐사2팀 권기석 김유나 권중혁 방극렬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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